우린 괜찮아
니나 라쿠르 지음, 이진 옮김 / 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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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마린"이라고 하는 여자 아이가 부모를 잃고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손에 자라나

외로움과 혼란, 두려움과 공허함을 안고 살며

어린 십대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상과 자신의 생각을 잘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외롭다는 말이 좀 더 정확한 단어였으면, 외롭다는 말은 훨씬 덜 아름답게 들려야 한다.

우린 괜찮아 p.16

니나 라쿠르가 마린을 통해 전한 것처럼, "외롭다"는 말은 굉장히 볼품없고 쓸쓸해야한다. 그래야 실제로 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더 정확하고 솔직하게 그것을 마주 대할 수 있다.

외롭다는 표현은 그 의미 자체로 표현되기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가보다.

그래서 우리는 외로움을 찬양하고, 그것을 꾸미며, 화려하게 수식하는 음악과 작품들을 만나나보다.

마린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를 고립하기로 작정한다.

그녀는 너무 어릴 때부터 그녀의 마을 사람들과 할아버지에게 "상실"을 기억나게 하는 존재였다.

그녀를 보면 바닷가에 서핑하던 사람들은 꼭 '엄마를 닮았다며' 그녀에게 조개를 전해주거나 또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그녀의 엄마에 대한 말을 아꼈고,

엄마의 사진과 유품들을 자신과 공유해주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그녀의 유일한 피붙이였으나,

가장 사랑하고 가까운 사람인 것 같으면서도 가장 먼 사람.

같은 공간에 살지만 서로의 공간은 철저하게 구별되며

개인의 공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는 모르는 체, 또 서로 묻거나 확인하지 않은 채

상실의 순간들을 알게모르게 공유하는 관계.

마린은 자라나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성장하지 못한 느낌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볼 때 언제나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고,

그렇게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추억과 연민에 소비되었다.

그래서 그녀의 독백과 생각들을 조용히 읽어내려가다 보면,

마음 속에 웅크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녀를 만날 수 있다.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들어가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의 방,

자신의 기숙사 방인데도 한나만큼 자유롭게 꾸며놓지 못한 벽,

사무치게 외롭고 두려운데도 선뜻 자신의 단짝이자 연인이었던 친구의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그 마음.

소설에선 여러 표현들을 통해 그녀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얼마나 확신이 없는지,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의 존재로 여기는지 느낄 수 있다.

할아버지가 꽤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고개를 돌려 날 보지 않을 것 같아서 부르지 않기로 했다. 갑자기 밀려든 파도가 불시에 할아버지를 덮쳤지만 할아버지는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바지가 무릎까지 젖었는데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우리 곁을 지나쳤다..(중략)..

두려움이 밀려들었고, 죄책감은 더욱 깊어졌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떨쳐내려 애썼던 기억을 내가 끌어낸걸까?

우린 괜찮아 p.81

나는 주로 책을 읽기 전에 그 글을 쓴 작가나 읽을 내용에 대해서 미리 알아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후기나 작가 소개는 내가 읽을 이야기에 미리 조미료를

많이 얹어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주로

내용에 대한 아무 clue 없이 먼저 읽고, 그 다음에 작가에 대한 글이나

그 작품에 대한 서평, 후기들을 읽는 편이다.

이 책은 그래서 내게 엄청난 반전이 있었다.

책 표지의 서있는 뒷모습이 "마린"인지, 또는 "메이블"인지 나는 글을 절반까지 읽으며

마린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의 애정표현과 사춘기 사랑의 이야기가

새로운 반전으로 다가왔다.

와-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우리가 십대 때 느끼던 사랑의 감정을 떠올리며 공감하도록,

그렇게 쓸 수도 있구나. 철없이 어린 나이에 느꼈던 그 감정들 속에 혼란, 불안함, 설레임, 수줍음 등을

그대로 느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울, 상실, 슬픔을 소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에 너무 깊이 공감하게 되면 그 작품을 소비하는 나의 기분에도 먹구름이 끼고 시야가 회색빛이 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그런 감정에 깊히 몰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니나 라쿠르의 소설은 옅은 먹구름이 낀 비오는 날과 같은 소설이었다.

아주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게, 까짓거 이 정도 비는 맞을만하지! 라고 느낄만한?

소설 속 마린의 삶은 일반적이지 않지만

그녀가 느끼는 상실과 외로움의 감정은 청소년기에 많은 이들이 한번쯤

느껴봤을 법하다. 다른 사람들과 공감할 수 없는, 나만 느끼는 그 기분. 그리고 아직은 더 큰 시야로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오롯이 나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해석하는 그 상태. 그래서 어쩌면 "나는 혼자야"라고 느끼는 이들에겐

이 소설이 매우 큰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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