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
김경주 지음, 김바바 디자인 / 안그라픽스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이 시극은 비행기가 추락해야만 알 수 있는 진실, 구름 속을 헤매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714년, 지금과 다를바 없이 일어나면 씻고 이빨 닦고, 스킨 바르고, 우유 마시고, 따분하지만 습관처럼 반복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던 언어학자 카파와 선원이었던 미하일은 '그분'을 통해 비행기 안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 비행기는 기묘한 구름을 따라가게 된다. 하지만 비행기는 아무도 본 적없고, 아무도 불 수 없는 기묘한 구름 속을 헤맨다. 밤 11시부터 자정까지 구름 속에서 머무는 한 시간이 지상의 시간으로는 이틀동안 실종된 채 활공을 반복하고 있다. 기내 안에는 구름이 흘러들어와 점점 가득 메우고, 카파와 미하일은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듯 없는 듯 대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지면서 서로의 정보를 알아보려고 하지만 말장난을 하며 '침묵'을 지킨다. 간간히 '그분'의 보이지 않는 등장으로 카파와 미하일은 두려움과 희망을 얻는다. 하지만 비행기의 활공은 점점 불안정해진다.

만담을 하는 듯한 카파와 미하일의 대화를 보면 실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속에는 비밀의 언어들이 들어있다.

극본에는 무대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시적 지문들이 대사 사이사이에 나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종이학, 입을 벌리고 퍼덕이다 웅덩이 속으로 가라앉는다, 창밖엔 교미 중인 구름들, 물고기들이 둥둥 구름 속을 떠다닌다. 이러한 시적인 표현들이 연극의 대사로 나오면서 시극의 정체성 그 자체를 보여준다. 또한 도형과 색깔, 그래픽 요소들이 곳곳에 등장하면서 비행기의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어 극 중에 빠져들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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