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정원, 고양이가 있어 좋은 날
이시이 모모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샘터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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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정원, 고양이가 있어 좋은 날

이시이 모모코 지음

이소담 옮김

   

 

천천히 걸어간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그저 걷다보면 특별한 장면을 만난다. 요즘처럼 쌀쌀한 날에 아파트 현관을 나서다 문득 멈춰 주변을 둘러보면 목련 가지끝에서 오소소 잔털을 세운 겨울 눈이 매일매일 통통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개를 숙이면 보도블럭 틈에 검푸른 빛이 짙어지는 냉이 한 뿌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계획없는 멈춤은 계획없는 감정을 끌어올린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이런 소소한 감정들은 나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긴 겨울을 견디며 여물어가는 목련을 기억한다면 목련꽃이 밝히는 세상을 오래오래 바라보게 될 것이다. 검푸른 냉이를 보는 순간 냉이를 좋아하던 아버지가 몹시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 미시이 모모코는 아동문학가다. 낮은 키, 짧은 보폭으로 세상으르 바라볼때만 찾아낼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감정을 오래오래 기억하는 어른이다. 그래서인가 저자의 시선은 낮은 곳에 머물고 걸음걸이는 꼬맹이처럼 종종거린다. 또 무언가 발견한 것이 없나 두리번거린다.

강아지도 고양이도 빗줄기도 그녀의 인생에선 주연이 된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우리가 그들을 관찰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그들이 우리를 봐주고 있기에 울기가 위로를 받고 있음을 깨닫는다.

작년 여름, 우리가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불구하고 고양이는 개와 크게 싸워서 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폐렴으로 죽었다.

그때 가장 아름답게 핀 백일홍 나무 아래에 고양이를 묻어 주었는데, 상대가 고양이라도 십일 년이나 같이 살면 둘 사이에 끈끈한 인연이 생기는 법이다.

봄이 되어도 잎이 가장 늦게 피는 백일홍 나무가 유독 추워 보여서 며칠 전부터 마음이 쓰인 차에 가쓰오부시를 고양이 선물로 받아 크게 위로받은 것을 깨닫고 인간은 평생에 걸처 마음의 인연을 참 많이 맺는구나 생각했다.(P248)“

책을 읽으며 저자와 함께 걷다보면 차가운 세상 한 구석에서 봄빛 한 조각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유난히 바람이 차가운 오늘, 나는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강가를 산책했다. 어딘가 있을 봄을 찾아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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