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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방 - 유품정리인이 미니어처로 전하는 삶의 마지막 이야기들
고지마 미유 지음, 정문주 옮김, 가토 하지메 사진 / 더숲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인생은 사랑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배운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죽음에 관한 책들을 즐겨 읽게 되었는데 이 책도 그 중 하나다. <시간이 멈춘 방>의 저자는 고인의 유품정리 및 특수청소를 직업으로 갖고 있는 28세 젊은이다. 이 책은 저자가 고독사 현장을 재현한 미니어처를 만들면서 자신이 마주했던 여러 삶들의 마지막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혼자 살다가 죽었다고 다 고독사가 아니다.
고독사란 아무도 모르는 사이 자택에서 사망한 이가 사후 상당한 날짜가 경과한 뒤 발견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죽는 것보다는 자기 집에서 죽는 건 어쩌면 자연사의 차원에서 그나마 행복한 죽음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고독사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시신이 발견되기까지의 기간이다. 저자가 겪은 고독사 현장 중 사망 후 발견까지 가장 긴 기간은 무려 사후 2년이라고 한다.

"이런 방의 주인은 사회와의 관계를 스스로 차단해 버린 경우가 많다. 그들은 쓰레기를 내다 버릴 때 만난 이웃의 인사를 무시하고, 누가 찾아왔을 때는 집에 있으면서 없는 척을 한다. 끼니는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고, 그 외 물건들을 살 때도 최대한 외출하지 않고 인터넷 쇼핑으로 해겨한다. 그래서 밖에 나다니지 않는 날이 길어져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 중장년 남성들의 고독사 장면 중에서 발췌

쓰레기집에서 살다가 고독사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 접객업무나 격무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와서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 집안일이나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경우도 있고, 소중한 이의 갑작스런 죽음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인한 상실감으로 방 주인이 우울증에 걸린 경우다. 가족의 사고사, 아끼던 반려동물의 죽음, 이혼, 해고... 이처럼 누구에나 일어날 수 있는 갑작스런 상실이 사람을 무기력하게 한다. 여태껏 해 오던 생활이 불가능해지고, 살아갈 힘도 사라진다. 이럴 때 누군가가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지 않으면 쓰레기 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대체 몇 년 분의 인생이 쑤셔 박혀 있는 건지..."

"유품을 정리하다 보면 고인의 삶이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특히 남은 물건들을 보면 그 사람의 소일거리나 취미, 취향 등을 알 수 있다. 먼저 돌아가신 어르신들의 사진, 상장 그리고 벽장 속 전통 인형. 자식과 손자들이 놀러 오면 덮을 엄청난 이불들. 언젠가 다시 읽겠지 싶어 꽂아 둔 선반의 책들. 어느것 하나 쉽게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소중히 포장한다." - 본문 중에서

몇 채씩 쟁여 둔 이불은 언제 자식이 손자들을 데리고 놀러 올지 몰라 준비해 놓은 걸까.
실제로 고독사의 사인을 분석해 보면 자살의 비율이 높다고 한다.
니체는 <우상의 황혼> 이란 책에서 "자기를 없애는 사람은 가장 존경할 만하나 행위를 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 니체는 자살을, 시간의 덧없음을 통제하는 행위로 보았기 때문에 자살을 하는 것을 용기있는 행동으로 본 것이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죽을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고 해서 나쁘게만 보지는 않지만, 다음의 말들을 꼭 기억해달라고 당부한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 주위에 있는 소중한 이들의 마음까지도 함께 죽인다는 사실이다. 본인이 느끼지 못할지라도 이 세상에는 누군가 한 사람, 자신을 사랑해 주는 이가 틀림없이 존재한다. 그 '한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죽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자살 현장에서 유족과 친구들이 해 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그런 생각이 올라온다." - 본문 중에서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만 고독사하는 것이 아니다.
돈이 많아도 가족과 어떤 이유로 감정이 틀어져서 결별한 이후 혼자 살다가 고독사 하는 경우가 있다. 저자는 이런 사례에 해당하는 어느 고인의 고급아파트에서 유품 정리를 하다가 침대 옆 장식장에 정갈하게 정리해 둔 가족 사진첩을 발견한다. 무척 정성 들여 만든 것으로 보였는데 어쩌면 고인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하지만 사진첩을 유족인 딸에게 건네주니 돌아온 대답은 "버려주세요" 단 한마디였다고 한다.

저자가 고인의 유품정리 및 특수청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와 별거 중에 돌연사를 하였기 때문이란다. 저자는 고인의 집청소가 다 끝나면 잠시나마 현관 앞에 향을 피우고 꽃을 바친다고 한다.
"나는 늘 고인을 가족처럼 여긴다.
그래서 철저히 치우고 애도한다.
고인이 안심하고 저세상으로 떠났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 마음은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지금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물건도 언젠가 당신의 삶을 누군가에게 말해 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