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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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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글래드웰의 강연회에 간다고 얘기하는 중이었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가 쓴 책에 대해 리뷰를 쓰며 괴로웠던 기억이 있는 G언니는 왜 가냐고 물었다.
'저도 자기계발서는 그닥 안좋아해서 제대로 읽어본 적 없지만 사람들이 그 책들에 열광적 반응을 하는 이유가 궁금해서요. 또 영어 귀도 뚫을 겸 겸사겸사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겠는데 난 아무래도 왜 좋아하는지는 도체 알 수가 없더라.'
라고 말하며 언니는 <왔다, 장보리>에 얽힌 일화를 들려줬다. 주변 사람들이 하도 장보리, 장보리 해서 분석해 놓은 글, 명장면과 명대사 같은 걸 찾아보고 재미도 없는데 두 화나 본방 사수하며 고민을 했더란다. 대중은 왜 이 뻔한 스토리와 캐릭터와 결말에 이다지 많은 관심을 보내는지 말이다. 너무 궁금한데 여전히 이해가 안되서 내게 '넌 그 강연을 들으면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 거 같냐?'고 진지하게 물은 거였다.

 

W의 은혜로, 황정은의 신간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으며 언니와의 대화가 생각나 멈칫멈칫 하게 되는 장면들이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기존의 세계에 궁금증을 가진 이와 그렇지 않은 이, 상대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이와 없는 이, 너의 자리에 나를 놓을 수 있는 이와 그럴 생각도 마음도 의지도 왜 그래야하는지 조차도 모르는 이. 그 모든 차이를 이루는 조그만 틈, 어쩌면 가장 큰 이유가 될지도 모르는 것들에 대한 말을 하고 있는 부분에서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

 

****************
… 모세씨는 궁금한 적 없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왜 요강을 남의 손으로 비울까, 어머니는 왜 남의 요강을 비울까, 그런 걸 묻고 대답을 듣고 싶었던 적이……
가족인데.
가족은 남이 아닌가요?
남이 아니죠.
남이 아니라니 모세씨는 진심인 걸까. 남이 아니라서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다 알고 있으니까 더 알 필요도 궁금하게 여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나나는 모르는 것투성이인데.
그러면 모세씨는요? 모세씨도 가족인데, 모세씨도 요강을 비워본 적 있나요.
p.149-150 부분 발췌
****************


역지사지는 필요하지만 그게 내 신발에 상대의 발을 억지로 끼워맞추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너와 내가 다르다는 전제가 없는 역지사지는 남이라는 선을 지움으로 배려나 존중 같은 건 필요가 없어진다. 너는 나니까, 우리는 하나니까 내 뜻대로 행하면 너도 유익이다. 나는 너에 대한 희생이 없으면서 네가 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건 우리라서 당연한 일이 된다. 제대로 된 타인에 대한 존중은 나는 너랑, 너는 나랑 다르니까 그 다른 세계를 알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온다는 점을 책을 읽는 내내 느꼈다. "소라나나나기가모두살아있는나기바같은세상이옳고도아름다운세상이라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이 역시 앞 선 발췌 내용과 연장선상의 얘기로 보인다.

 

****************
그 시절에 나나는 작은 동물을 괴롭히며 놀았습니다.
검은 주제에 금붕어,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는 구석으로 몰아붙인 뒤 막대 끝으로 꼬리지느러미를 꾹 찍어눌렀습니다.
문득 뒤를 보니 나기 오라버니가 서 있었습니다.
오라버니는 그것을 한참 들여다 보고 있다가 등을 펴고 나나와 마주 선 뒤, 손바닥을 활짝 펴서 나나의 뺨을 때렸습니다.
아파?
내가 너를 때렸으니까 너는 아파. 그런데 나는 조금도 아프지 않아. 전혀 아프지 않은 채로 너를 보고 있어.그럼 이렇게 되는 건가? 내가 아프지 않으니까 너도 아프지 않은 건가?
하지만 너는 아프지, 그렇지?
금붕어를 건드릴 때, 너는 아팠어?
고개를 저었습니다.
같은거야,라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너하고 저것하고, 같은 거야.
아파?
오라버니는 물었습니다.
고개를 끄떡이자 기억해둬,라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이걸 잊어버리면 남의 고통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괴물이 되는 거야.
p.129-133 부분 발췌
****************


그러니까 이해나 배려, 존중 같은 감정은 타인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이 긴긴 글을 쓰게 됐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는 상상. 늘 거기 있어서 무심하게 지나치던 그 사람은 나와 같은 사람이다. 그러니 똑같이 아프다. 나와 다른 사람이다. 그 아픔에 좀 더 예민할수도 무딜 수도 있다. 그러니 제발 그에게 공명해 보라. 상상하고 생각하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다가가 물어 봐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이들에게 황정은은 나기의 입을 빌어 말한다.

 

'당신이 상상할 수 없다고 세상에 없는 것으로 만들지는 말아줘.'
p.189

 

G 언니처럼 이해가 안되면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 자꾸 묻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 상상하고 다가가고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야 세상에 없는 것으로 쳐졌던 사람, 투명인간 같았던 사람들이 그 색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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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함께 읽기다 - 독서공동체 숭례문학당 이야기
신기수 외 지음 / 북바이북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솔직히 말해 보자. 사실 이 책은 ‘함께 읽기’가 아니었으면 절대로 읽지 못했을, 않았을 책이다. 우선은 책의 존재 자체를 몰랐을 것이고 다음으로 책에 대한 책이나 독법에 대한 책은 내게 있어서는 자기계발서와 함께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면 혐오 부류에 속한다. 아니, 왜, 책을 읽는데 가이드 책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마음이 가거나 필요에 의해 찾아보고 읽고 그다음에 좋아하는 작가나 출판사가 생기면 이어 읽으면 되는 거 아닌가. 본인의 취향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들이 기대는, 공부할 때도 자습서 먼저 보는 학생 같은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가끔 남들은 어떤 식으로 독서를 하나 호기심이 생길 때면 펼쳐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읽기 전에도, 또 목차와 머리말을 보면서도 별 기대가 없었다. 책소개에서도 독서 입문자를 염두에 두고 썼다고 밝혔기 때문에 내가 일차 독자는 아니겠군, 하는 오만한 마음으로 내려다보며 술렁술렁 읽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부닥친 문장이 있다.

“독서토론은 ‘틀리다’가 아닌 ‘다르다’를 익히는 과정이다.” (p.30)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턱.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들도 책에서 얻은 경험을 재해석하고 삶의 궤적으로 남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공감의 부족이다. … 당연히 공감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간접경험의 확률 또한 높아진다. 문제는 공감력이 부족한 독자, 어떤 책을 보든 자기 문제가 아니면 몰입을 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p.45)

“가장 뒤에 있는 아이와 손잡고 가자.” (p.70)

함께 책을 읽을 때마다 종종 느끼는 건데, 정말 사람은 모두 다른 존재구나, 싶다. 감정이입하는 인물도 다르고, 어떤 장면, 심지어 해석에 여지가 있는 책의 경우에는 결말까지 다르게 이해하고, 완전히 다른 독법을 가지고 각자의 방법으로 이해하고 읽었다. 혼자 읽을 때는 도저히 이해 안됐던 인물도 같이 읽으면 누군가 그 인물의 대변인이 되어 어느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 현상을 ‘다르다’를 익히는 과정이라고 정리한 문장에서 멈칫하고, 몇 장 더 읽다가 독서란 공감력의 문제라는 말에서 또 맞다고 생각하고, 70쪽의 문장을 보다가 헉, 하고 뒤통수를 맞았다. 그러니까 내 문제는 지나치게 혼자 읽기에 익숙해져 독서 자체에 부담감을 느끼는 입문자에게 손을 내미는 걸 싫어했다는 점이다. 저자들이 “이젠, 함께 읽기다.”라고 주장하듯이 책제목을 지은 건 나처럼 홀로 만족했던 이들에게 함께 손을 잡고 서로를 읽는 방법으로서의 독서를 해보자는 의미였을 거다. 물론 이전에도 독서모임을 통해 함께 읽기를 하고 있었지만 방법만 공독(共讀)이 아닌 자세의 공독부터 지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독서의 가장 큰 효용은 서로의 다름을 이음하는데 있을테니.

 

책소개가 함참 늦었다. 총 5부로 이뤄진 이 책은 숭례문학당에서 독서토론 모임을 운영하며 만난 사람들이 독서를 ‘함께’하면서 겪은 활동과 경험을 풀어냈다. 그리고 공독에 대한 얘기이니 만큼 네 명이 공저를 했다. 실상은 더 많은 저자가 숨어 있다. 어떻게 이 모임이 생겨났는지, 함께 한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참여했는지, 독서토론이 영화, 여행, 가족, 낭독 등과 엮였을 때의 모습은 어떠한지, 참여자뿐 아니라 리더로 섰을 때에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독서모임을 운영할 때 어떤 책을 선정하고 실제로 진행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의 실례가 풍부하게 녹아들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가족단위로 독서토론을 해오고 있는 사례가 인상적이고 부러웠다. 무늬만 공독자였던, 공감력 부족한 독자를 공독에 공감하게 한 책이었다. 내려 보던 눈은 이제 높이를 맞춰 나란해졌다. 나 같은 공독 초심자들에게 권해본다. 세종대왕이 글자를 모르는 백성을 어여삐 여겼던 그 마음을 갖고 읽기의 기쁨을 같이 누려보자. 그래, 재밌게 함께 읽자.

 

덧. 저자들의 강연에 가서 들은 얘기를 애민의 마음으로 덧붙여 본다. (소곤소곤. 반쯤 농담이었지만 다음 책은 ‘이젠, 함께 쓰기다’ 래요. 제대로 재밌게 살기 위해 rws 운동- Reading, Writing, Speeching-을 펼쳐왔던 숭례문학당이기에 어쩌면 3부작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제 짐작도 살짝 말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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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옷의 세계 - 조금 다른 시선, 조금 다른 생활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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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올해의 문학 베스트 책인 [시옷의 세계]를 아끼고 아끼다 마지막으로 다 읽던 날의 풍경. 시옷 혼자 심심할까, 이응과 미음도 벗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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