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어메이징 까미노 : 예쁘야, 너도 참 애썼다!
안미쁜아기 지음 / 동행출판 / 2016년 7월
평점 :
판매중지


모험심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나조차도, 자주 동경하던 여행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어렵고 알 수 없는 게 바로 인생이고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되면서, 점점 조용히 내 안에 침잠하며 한 발 한 발 묵묵히 내딛으며 걸어야 하는 이 순례길은 더 진지하고 숭고하기까지 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천성적인 용기 없음과 현실적인 상황으로 직접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그저 산티아고 순례에 대한 책만 여러 권을 읽었다. 각기 다른 순례자들의 눈을 통해 그 기나긴 여정에서 느끼고 배운 바가 결코 적지는 않았지만, 이 <어메이징 까미노>만큼 피부로 가깝게 와 닿은 순례길은 없었던 듯하다.

우선 이 순례자는 나와 같은 평범한 주부이다. (물론, 아주 평범한 건 아닐 수 있다, 그저 꿈만 꾼 게 아니라 그걸 실행에 옮길 만한 용기가 있다는 면에서는..) 그것도, 한국에서는 꿈도 열정도 이젠 다 식었으리라고 '여겨지는' 초로의 아줌마이다. 어쩌면 이 나이엔, 모험을 떠나기 보다는, 자신의 오랜 계획을 실천할 과감함을 드러내기 보다는, 조용히, 노후를 준비하며 가족들의 윤활유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여전히 이어가는 게 미덕으로 여겨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작가는 선언했다, 그리고 떠났다. 스무살의 무릎과는 비교되지 않을 무릎으로, 그 허리로 무거운 배낭 하나 달랑 짊어지고 800km에 이르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나이와 비례해서 커지는 수많은 생각과 계산에 앞서, 그저 일어서서 떠났고 걸었다.

처음 도착해서부터 돌아오기 직전까지, 좌충우돌하고 헤매기도 하고 천사들을 만나 다행스레 무탈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작가에 완전히 감정이입이 되어서, 작가의 발톱이 빠지고 물집이 잡힌 대목에서는 괜시리 내 발가락이 아파오는 것 같았고, 작가가 배탈이 난 대목에서는 내 배가 살살 아픈 것 같을 정도였다. 이렇게 폭 빠져서 까미노를 걷다가, 결정적으로 이 책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 부분이 있었다. 바로, 시루에냐 들녘에서의 신의 음성, "예쁘야, 너도 참 애썼다!"이다.. 여기서 나 또한 작가와 함께 눈물이 솟아올랐다. 이건 엄살용 자기 연민이 아닌, 소중하고 엄숙하기까지한 자중자애의 깨달음이다. 세상살이가 힘들어지고 삶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신을 탓하고 불필요한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더욱 옥죄기 일쑤다. 죄책감과 자괴감으로 용기도 희망도 꺾이고 상황은 더욱 힘들어지는데도, 겉으로는 남탓을 하지만 안으로는 자신의 가치를 깎아 내리며 절망한다. 바람이 스쳐도 피멍울엔 고통이 느껴지는데, 아무에게도 위로 받을 수 없고 나 자신조차도 내 속마음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세월을 지내다 보면, 내가 아프다는 것도 잘 모르는 무감각과 마비의 상태에서 세상을 온전하지 못하게 대하며 살아가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드디어, 작가는 신의 음성을 들었다. 아무도 모르는 내 설움, 내 아픔, 나의 꿈, 나의 존귀함..그 모든 것을 통째로 온전히 알고 계시는 분의 음성이었다. 그분은 내가 깨닫지 못한 순간에도, 내가 가장 절망적이고 두려웠던 순간에도 늘 나와 함께 계셨고 늘 나를 사랑하셨고, 그리고 내가 잃어버린 소중한 나를 누구보다도 가슴 아프게 안타까워 하셨다는 깨달음이 그분의 음성을 듣는 나를 압도했을 때, 어떻게 눈물이 쏟아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이가 몇인들, 우리 안에는 늘 부모의 사랑에 기대고 싶은 아이와 같은 마음이 있는데, 그 뜨거운 까미노 위에서 그분의 사랑에 기대어 위로받고 힘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눈물 범벅이었지만, 희열과 감사와 사랑으로 다음 여정까지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걸어갔을지, 마치 내가 작가가 되어 그 길 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 찰나의 깨달음이, 마지막 피니스떼레의 철탑에 세월호 리본을 걸을 때까지 작가에게 튼튼한 무릎과 허리가 되어주고 아직 이른 새벽길에서의 환한 등불이 되어 주었음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작가의 고된 순례길을, 나는 너무 편안하고 쉬운 상태로 함께 나누는 게 미안할 정도였지만, 글로 접한 순례길만으로도 나 역시 나를 돌아보며, "~야, 너도 참 애썼다!"하시는 신의 음성으로 헤아릴 수 없는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

인생 자체가 순례길이며, 이 길 위에서도 역시, 작가처럼, 발톱도 빠지고 탈도 나고 좌충우돌할 일들의 연속이지만, 천사들을 만나기도 하고 벅찬 위로와 사랑으로 생각지도 못한 힘을 얻기도 한다. 뜨거운 태양과 육체의 고통 속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지만, 여정의 마지막에 노란 리본을 걸기까지 아픔을 겪는 이웃들을 위한 마음을 모으고 기억을 나누며 걷는 까미노처럼, 그런 인생 또한 아름다움에 눈이 부실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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