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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평점 :
임금에게 얼음길을 열어준 백성을 생각하며 판서는 물었다. 이것도 백성인가? 임금이 조금의 사례도 없었던들 전쟁 통에 적군에게 길을 안내하고 식량을 구하겠다는 것이?
그러나 임금이 곧 나라인 세상이었다. 백성은 목숨 아닌 목숨이었다. 사는 길로 나아갈 자격은 임금과 사대부에게만 있었다. 명에 대한 대의이든, 청에 대한 실리이든, 도망갈 자리가 강화이든 남한산성이든, 정치는 자신들의 사는 길을 찾아 고민했다. 그것은 임금인가? 그것은 판서인가?
민촌에게는 허송세월이었을 그들만의 정치의 시간이 지나고, 적군의 칼과 창은 땅을 먹고 사는 백성을 밟으며 달려왔다. 임금과 관료들은 도망했다. 백성의 자격을 따지며 도망했다. 자격을 물을 사람은 그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사공이었다면, 나는 나를 죽이는 판서들에게 그런 원망이나 하며 죽을 수 있었을까? 어쩌면 백성은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는 것이 목숨이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사공의 목숨이 사공에게는 얼마나 귀하게 여겨졌을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판서가 이것이 백성이냐 한 것은 자격에 대한 물음이 아닐 수도 있겠다. 백성이라는 새로운 종을 발견한 사대부의 감탄사일 수 있겠다. 이렇듯 의미 없이 먹을 것만을 좇아 살아가는 인간을 닮은 동물. 그것이 백성이구나.
남한산성에 웅크려서도 묘당은 대의를 말했다. 대의는 명나라를 부여잡고 청나라에게 죽는 길이었는데, 대의를 말하며 죽음을 말하는 사람은 적었다. 대의를 말하며 백성을 소진시키고 그렇게 되어 질 대로 되어지다 보면 어떻게든 되어 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군병, 백성의 죽음을 쌓아가며 명분을 방패로 만들어 내고 그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차라리 죽을 자리를 마련해가며 대의를 외친다면 마냥 읽으며 부끄럽지만은 않을 것인데, 심지어 전투를 외치고 누구를 죽여 전투의 사기를 올리라 입에 담았던 선비들이 그 다음날 조용히 성을 도망가니 할 말이 없어지다가, 사실 나는 또 얼마나 다를 수 있겠는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다.
이 책은 몇 개월간 매주 해온 도서관 자원봉사를 마무리할 때 선물로 받았다. 책의 진하게 붉은 내지에 검은 색으로 고맙다는 인사가 여러줄 적혀있다. 이번에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 독후감 공모전 대상 도서에 남한산성이 있어 새삼 들추어보다 이 글을 1년반만에 발견하였다. 나는 도서관으로 봉사활동을 나갈 때 즐겁지 못했다. 왜 내가 쉬는 동안 봉사활동을 해야하는지 몰랐다. 아내는 권유였다고 하고 나는 남들 앞에서 발설된 권유는 강제라고 했다. 아내는 의사에 반하는 권유도 거절하지 못하고 투덜대면서 도서관을 나가는 나를 알 수 없어했다. 나도 내가 알 수 없다. 1년 반만에 감사함이 담긴 인사를 보고 나는 어떤 인간인가 생각한다. 심지어 공모전에 내면 상금을 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책장을 펼치던 차에 발견한 글이다. 공모전에 낼 글도 끝내 다 쓰지 못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부끄러워하다가 또 부끄러운 일을 하고 부끄럽고. 하지만 입은 살아있다. 남한산성에서 주전을 외치고 최명길을 목 베라다가 결국 자기 한 말을 책임 못지고 새벽에 성을 도망간 소인배 선비들이 나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