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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아래 리뷰를 얼핏, 전혜린에 대한 지독한(이라고까지 하긴 뭣하지만) 혹평이 눈에 띄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사람들은 소문을 내고 가까운 사람을 데려와 그 음식을 맛보인다. 그것은 공유한다고 해서 닳아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다르다. 배타적이 된다. 소유하고 싶은 독점욕이 싹트기 시작한다. 언젠가 은희경의 소설에서 읽었던 이야기이다.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가 '살인의 추억'에 삽입되어서 너무 많은 이들이 이 '유명하지 않은 노래'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나의 한없이 우울한 빛깔을 그려주던 이 노래가 매일 극장에서 울려퍼지는 것보다도 더욱 참을 수 없던 것은 나의 상처와, 방황과, 말하기 싫은 침묵의 퉁명스러움을 너무나도 무심한 이들이 듣고 있다는 치욕감이었다.

전혜린은 존경할 수 없다. 그렇다고 오래 살지 그랬나, 하고 아쉬워할 수도 없다. 그저 그녀는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저편에서 눈동자를 빛내며 기름도 없는 등잔의 불꽃처럼 비현실적으로 타고 있을 뿐이다. 그녀의 학문적인 성과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자살한 것이 훌륭한 일이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도 '전혜린'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그녀의 글 행간행간에서 자꾸 삐져나오려고 하는 앎에의 갈망과 삶을 살아숨쉬는 치열한 의지 때문이다. 그것이다. 스스로의 삶을 선택해서 살았고,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워 버리라던 카프카 못지 않게,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불태워 버림으로써 진정 영원히 남게 된 것이다.

[먼곳에의 그리움]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웃긴 일이다. 그리고 전혜린의 글이 아무나 읽을 수 있도록 서점에서 대량화되어 팔리고 있다는 것도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진실보다 무거운 신화와 전설에 묻혀버린 그녀를 나무라거나 혹은 비웃게 됐다. 그러나 나는 몰래 기쁘다. 어딘가 예전 나의 열여덟때와 같이, 전혜린의 눈빛에 이끌려 누군가 - 삶이 어떤 것인가, 생의 한가운데 서서 곧은 시선으로 죽음과 대면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싶어하는 누군가가 또 생겨나게도 됐기 때문이다. 단 그런 사람이 너무 많지 않길 바란다. 전혜린과 그녀의 삶은 아무나 덥석 집어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짧은 생을 산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긴긴 생을 낭비하며 파먹고 사는 일이다. 이제야 전혜린은 혹자의 비웃음과 다수多數의 무관심과 나같은 이를 미치도록 매혹시키는 진실로 살아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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