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진보 - 카렌 암스트롱 자서전
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음의 진보]

완독. 너무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지금 가지고 있는 신앙에 극심한 고통과 회의를 느끼고 있다면 한번쯤 읽어 볼만하다. 다만 주의사항은 맨 뒤 100p를 읽지 않고 앞의 환속하는 부분만 읽으면 저자의 서술대로 그냥 지루한 종교 비판, 잠깐의 시시껄렁한 험담 정도가 되어 버린다.(또는 너가 종교를 떠날 비참한 실마리 정도..)

이 책의 진가는 저자가 400페이지가 훨씬 넘게 서술한 자신의 수녀 생활동안 형성된 육체와 정신의 속박에서 고통스럽게 벗어나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종교에서 탈각된 비진리의 부스러기를 보며 비웃는 것이 아니라 뒷 부분 100페이지 가량의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 불교 등의 진리 탐구를 통해 종교가 제시하는 ‘황금률’, ‘공감’, ‘몰아’ 등을 깨달아가는 과정에 있다. 그리고 T.S 엘리엇의 시 <재의 수요일>을 자신의 삶을 통해 깊게 이해해가는 과정에 가치가 있다.

저자는 오히려 신학이 자신의 생을 끌어 올린다고 서술한다. 또한 좋은 신학이란 따뜻하고 마음이 넓어져서 사랑을 베푸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라 정의한다. 그리고 신앙은 결국 인생이 아무리 비극적으로 보여도 거기에는 궁극적으로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키워 나가는 것이라 말한다. 자기 자신은 정토 교리를 받아 들이지 않기에 무신론자, 무종교라 말하지만 그는 이미 종교와 신을 찾고 있다 다만 그것을 종교나 신이라 부르지 않기로 자신이 선택했을 뿐이다. 나는 최근 종교학 관련 서적을 읽으며 내가 믿는 종교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한다. 저자가 어느 종교든지 자신의 아픔을 맨 위에 놓고, 그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고 말한다. 현실을 재대로 보지 못 하면 올바르게 살 수 없고, 그것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스스로의 아픔을 부정하는 사람일수록 남의 아픔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모든 종교는 ‘공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자신의 아픔을 제대로 깨달을 수록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내가 받고 싶지 않은 고통을 타인에게 주지 않는 ‘황금률’을 실천하게 된다. (*기독교의 경우 긍정적 ‘황금률’, 내가 받고 싶은 것을 남에게 주라.)

이렇게 하기 위해서 모든 종교는 자신의 ‘자아’를 포기하라고 권유한다. 그러한 탈자아를 통해 내 자리에 타인을 받아 들일 수 있게 된다. 믿는다는 뜻을 가진 영어는 ‘believe’의 고어는 ‘beleven’ “사랑한다”라는 뜻이며 라틴어 크레도는 코르 도(나의 심장을 바친다)에서 나왔다고 한다. 결국 믿음이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인 것이다.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몇가지 핵심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 ‘믿는’것에 중점을 두는 것은 잘 못되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종교는 ‘믿음’보단 ‘실천’에 그 뜻을 둔다.

저자도 내내 자신의 수녀원 규율이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속박한 것에 상처받았다는 것을 서술했지만 뒷 부분에 유대교와 이슬람교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행동에 ‘성스러움’을 담기 위해서(삶 안에서 신과 함께하기 위해) 형식을 율법화한 이유를 깨닫게 된다. 결국 형식에 내용이 담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전통적 규율을 맹목적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왜 선진들이 그러한 형식을 쌓아 올렸고 그 형식 안에서 신과 함께 했는지에 대하여 끊임 없이 질문하며, 깨닫고 익혀야 한다고 조언한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진보 너무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특히 믿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종교와 신앙생활에서 비본질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한번 쯤 돌아볼 만한 여백(당혹)을 준다는 점에서 아주 훌륭한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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