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꿈꾼 독서가들 - 불온한 책 읽기의 문화사
강성호 지음 / 오월의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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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전망하던, 그리고 갈망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개인적으로는 잊힌 독서가 최영숙의 이야기가 가장 애틋했고, 비밀독서회를 다룬 챕터를 읽으며 두근두근거렸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여성 독서가들의 자료를 찾기위해 고군분투한 저자의 노력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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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 흑역사 - 열두 가지 주제로 보는 한국개신교 스캔들
강성호 지음 / 짓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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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는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는가. 진지하게 성찰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강추! 한동안 품절이던 책이 다시나와기쁘다. 더많은 이들에게 읽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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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내리는 밤에
센주 히로시 지음 / 열매하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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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곁에 두고 들여다보고 싶은 책.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 고요함 속에서 들리는 것들에 시선과 마음을 두고 살아야지. 나와 연결된 크고 작은 존재들을 기억하며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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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가 글을 쓰면 좋겠어요.”
“난 △△의 글이 너무 좋아. 계속 글을 쓰면 좋겠어.”
“□□님의 글을 좋아해요. 글을 써줘서 고마워요.”
.
남해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작은 레스토랑을 하는 s씨에게, 부산에서 하루하루를 세상과 불화하며 살고있는 어여쁜 청춘 h에게, 서울의 o님과 그 밖의 다른 친구들에게 내가 종종 하는 말이다. 그들의 글솜씨를 칭찬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글이 그들의 삶을 스스로 응원하는 걸 함께 느끼기에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 안의 밝은 기운을 모두 모아 힘껏 응원하고 싶은 인생들, 그 사람들이 자기 언어로 써 내려간 글들을 읽으면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그 글들은 내게도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
홍승은님의 글도 그랬다. 승은님이 춘천에서 인문학 카페 36.5°를 운영하던 시절, 본인은 그 시절 입간판을 자신의 흑역사라 한다지만(p.117), 나는 그때부터 그의 글을 좋아했다. 새빨간 입간판에 또박또박 써 내려간 문장들을 구독하며 함께 뜨거워지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의 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고, 정의와 평화를 이 땅 위에서 구현하겠다는 ‘사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거창했고, 몹시 뜨거웠다. 시간은 흘렀고, 많은 일이 있었고, 나는 예전에 살던 세상에서 탈출했다. 동시에 언어를 잃었다. 오랫동안 가슴에 새기고, 대중 앞에 부르짖었던 말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승은님이 그 입간판을 흑역사로 추억하듯, 나도 그 시절의 패기와 열정을 ‘옛날일’로 추억하며 지내고 있다. 하지만 승은님은 나와 달랐다. 내가 ‘언어를 잃어버렸다’는 핑계로, 내 안의 이야기를 하염없이 묻으며 사는 동안 승은님은 끊임없이 자신의 언어를 구체화 시키며 자기가 만난 세계,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글로 써내고 있었다. 나는 페이스북을 통해 그의 글을 꼬박꼬박 챙겨 읽으며 미약하나마 응원을 보냈다. ‘승은님이 계속 글을 쓰면 좋겠어요.’
.
얼마 후 그의 첫 단행본이 나왔다. <당신이 계속 불편했으면 좋겠습니다>는 승은님의 이야기였지만 내가 오랜 시간 묻어두고 회피했던 나의 이야기, 나의 질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느낀 독자는 나 혼자가 아니었다. 그즈음 나는, 운영하던 책방에서 페미니즘 독서모임을 시작했고 두 번째 책으로 그 책을 선택했다. 모임에 함께한 이들은 승은님의 글에 격하게 공감하며 이런 글을 써준 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가 온몸으로 겪은 시간들이 한 편, 한 편의 글이 되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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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의 용기가 쌓여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제목이 무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이다. 아마 다른 제목이었어도 나는 승은님의 책을 챙겨봤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라니. 나한테 하는 소리인가? 싶었다. 오래된 라디오에 정확한 주파수가 맞은 것 마냥 듣자마자 또렷하게 꽂히는 제목이었다. 빨리 읽고 싶어졌고, 출판사에서 마련한 사전 서평단에 지원해 원고의 일부를 미리 읽어볼 수 있었다. (내게 없는 민첩함이었다)
.
홍승은 작가의 첫 번째 책이 자신의 서사를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면, 두 번째 책은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사람의 세계를 읽어내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승은님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곁에 둔 벗들, 그의 책을 읽고 말을 걸어온 독자들,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를 함께 읽을 수 있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조용히 사라질뻔한 이야기들. ‘도대체 글을 쓰는 게 무슨 소용이죠? 이렇게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요......?(p.122)’라는 절망의 목소리들. 그 속에서 작가는 그들의 슬픔에 함께 슬퍼하고 그들의 절망과 함께 동행한다. 그리고 쓰는 일이란 무엇인지,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쓰는 사람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성찰한다.
.
“어떤 면에서 나에게 쓰는 일은 현실에서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유일한 친절인 것 같다. 글쓰기가 내 직업이 맞나 헷갈릴 때가 많지만,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이런때이다. (p.159)”
.
“쓰는 사람은 ‘특별하게 관계 맺는 사람’과 같은 말 아닐까. 누군가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는 일, 관성적인 질문이 아닌 다른 질문을 던지는 일, 애정 어린 관심을 갖는 일. 존재를 다각도로 볼 수 있을 때, 글에도 숨이 붙는다. 아마도 내 애정의 크기만큼. (p.147)”
.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쓰는 사람으로 지녀야 할 태도를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대변할 수 없는 내 위치의 한계 알기. 그럼에도불구하고 연대하려는 노력을 버리지 않기.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고통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쓸 수 없는 말을 쓰기. (p.144)”
.
홍승은 작가는 한 층 더 아름답고 단단해진 문장으로 ‘쓰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거듭 이야기한다. 그리고 당신도 ‘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다정한 목소리로 초대한다. 당신의 글을 통해 당신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고,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고.
.
“글은 내 세계로 타인을 초대하고, 타인의 삶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는 문이다. 나는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을 드러내는 글을 쓰면 좋겠다. 그 문을 통과하며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닿고 싶다. 순전히 독자로서 내 욕심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글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의 상상이 될 수 있다. 상상은 머리가 아니라 다양한 몸의 구체적 서사에서 시작되니까. (p.121)”
.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글쓰기에는 욕구가 없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리 믿는 게 편했다. 그렇게 글이 되지 못한 나의 이야기들은 엉켜 있었고 곪아 있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먹을 때마다 발목을 잡았다. 내가 질문하고 씨름해서 풀어내야 할 이야기들, 그걸 해결하지 못하면 진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새해엔 좀 더 쓰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실천으로 옮겨지기까지 딱 한 줌의 용기, 혹은 계기가 더 필요했다. 그 타이밍에 이 책을 만났다.
.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에 대한 욕구뿐 아니라 글쓰기 공동체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책방을 하면서 하고 싶은 모임은 다 해봤는데 ‘글쓰기 모임’을 꾸리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가장 하고 싶은 모임이었는데 가장 주저되는 모임이기도 했다. 타인 앞에서 나를 솔직하게 오픈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내 한계를 보이는 게 부끄러웠다. 책 속에 등장하는 글쓰기 모임들이 너무 부러웠다. 올해는 믿을만한 친구들과 함께 글쓰기 모임을 갖고 싶다. 글쓰기는 시간과 노력의 산물이라는 믿음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는데 의의를 두는 모임, 서로의 글을 읽어주고 서로의 삶을 돌보아주는 모임을 만들고 싶다. 그 모임의 시작에 이 책을 같이 읽고 나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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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글을쓰면좋겠습니다
#홍승은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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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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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가 글을 쓰면 좋겠어요.”
“난 △△의 글이 너무 좋아. 계속 글을 쓰면 좋겠어.”
“□□님의 글을 좋아해요. 글을 써줘서 고마워요.”
.
남해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작은 레스토랑을 하는 s씨에게, 부산에서 하루하루를 세상과 불화하며 살고있는 어여쁜 청춘 h에게, 서울의 o님과 그 밖의 다른 친구들에게 내가 종종 하는 말이다. 그들의 글솜씨를 칭찬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글이 그들의 삶을 스스로 응원하는 걸 함께 느끼기에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 안의 밝은 기운을 모두 모아 힘껏 응원하고 싶은 인생들, 그 사람들이 자기 언어로 써 내려간 글들을 읽으면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그 글들은 내게도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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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님의 글도 그랬다. 승은님이 춘천에서 인문학 카페 36.5°를 운영하던 시절, 본인은 그 시절 입간판을 자신의 흑역사라 한다지만(p.117), 나는 그때부터 그의 글을 좋아했다. 새빨간 입간판에 또박또박 써 내려간 문장들을 구독하며 함께 뜨거워지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의 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고, 정의와 평화를 이 땅 위에서 구현하겠다는 ‘사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거창했고, 몹시 뜨거웠다. 시간은 흘렀고, 많은 일이 있었고, 나는 예전에 살던 세상에서 탈출했다. 동시에 언어를 잃었다. 오랫동안 가슴에 새기고, 대중 앞에 부르짖었던 말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승은님이 그 입간판을 흑역사로 추억하듯, 나도 그 시절의 패기와 열정을 ‘옛날일’로 추억하며 지내고 있다. 하지만 승은님은 나와 달랐다. 내가 ‘언어를 잃어버렸다’는 핑계로, 내 안의 이야기를 하염없이 묻으며 사는 동안 승은님은 끊임없이 자신의 언어를 구체화 시키며 자기가 만난 세계,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글로 써내고 있었다. 나는 페이스북을 통해 그의 글을 꼬박꼬박 챙겨 읽으며 미약하나마 응원을 보냈다. ‘승은님이 계속 글을 쓰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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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그의 첫 단행본이 나왔다. <당신이 계속 불편했으면 좋겠습니다>는 승은님의 이야기였지만 내가 오랜 시간 묻어두고 회피했던 나의 이야기, 나의 질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느낀 독자는 나 혼자가 아니었다. 그즈음 나는, 운영하던 책방에서 페미니즘 독서모임을 시작했고 두 번째 책으로 그 책을 선택했다. 모임에 함께한 이들은 승은님의 글에 격하게 공감하며 이런 글을 써준 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가 온몸으로 겪은 시간들이 한 편, 한 편의 글이 되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
3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의 용기가 쌓여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제목이 무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이다. 아마 다른 제목이었어도 나는 승은님의 책을 챙겨봤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라니. 나한테 하는 소리인가? 싶었다. 오래된 라디오에 정확한 주파수가 맞은 것 마냥 듣자마자 또렷하게 꽂히는 제목이었다. 빨리 읽고 싶어졌고, 출판사에서 마련한 사전 서평단에 지원해 원고의 일부를 미리 읽어볼 수 있었다. (내게 없는 민첩함이었다)
.
홍승은 작가의 첫 번째 책이 자신의 서사를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면, 두 번째 책은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사람의 세계를 읽어내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승은님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곁에 둔 벗들, 그의 책을 읽고 말을 걸어온 독자들,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를 함께 읽을 수 있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조용히 사라질뻔한 이야기들. ‘도대체 글을 쓰는 게 무슨 소용이죠? 이렇게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요......?(p.122)’라는 절망의 목소리들. 그 속에서 작가는 그들의 슬픔에 함께 슬퍼하고 그들의 절망과 함께 동행한다. 그리고 쓰는 일이란 무엇인지,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쓰는 사람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성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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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서 나에게 쓰는 일은 현실에서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유일한 친절인 것 같다. 글쓰기가 내 직업이 맞나 헷갈릴 때가 많지만,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이런때이다. (p.159)”
.
“쓰는 사람은 ‘특별하게 관계 맺는 사람’과 같은 말 아닐까. 누군가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는 일, 관성적인 질문이 아닌 다른 질문을 던지는 일, 애정 어린 관심을 갖는 일. 존재를 다각도로 볼 수 있을 때, 글에도 숨이 붙는다. 아마도 내 애정의 크기만큼. (p.147)”
.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쓰는 사람으로 지녀야 할 태도를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대변할 수 없는 내 위치의 한계 알기. 그럼에도불구하고 연대하려는 노력을 버리지 않기.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고통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쓸 수 없는 말을 쓰기. (p.144)”
.
홍승은 작가는 한 층 더 아름답고 단단해진 문장으로 ‘쓰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거듭 이야기한다. 그리고 당신도 ‘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다정한 목소리로 초대한다. 당신의 글을 통해 당신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고,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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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내 세계로 타인을 초대하고, 타인의 삶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는 문이다. 나는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을 드러내는 글을 쓰면 좋겠다. 그 문을 통과하며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닿고 싶다. 순전히 독자로서 내 욕심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글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의 상상이 될 수 있다. 상상은 머리가 아니라 다양한 몸의 구체적 서사에서 시작되니까. (p.121)”
.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글쓰기에는 욕구가 없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리 믿는 게 편했다. 그렇게 글이 되지 못한 나의 이야기들은 엉켜 있었고 곪아 있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먹을 때마다 발목을 잡았다. 내가 질문하고 씨름해서 풀어내야 할 이야기들, 그걸 해결하지 못하면 진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새해엔 좀 더 쓰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실천으로 옮겨지기까지 딱 한 줌의 용기, 혹은 계기가 더 필요했다. 그 타이밍에 이 책을 만났다.
.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에 대한 욕구뿐 아니라 글쓰기 공동체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책방을 하면서 하고 싶은 모임은 다 해봤는데 ‘글쓰기 모임’을 꾸리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가장 하고 싶은 모임이었는데 가장 주저되는 모임이기도 했다. 타인 앞에서 나를 솔직하게 오픈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내 한계를 보이는 게 부끄러웠다. 책 속에 등장하는 글쓰기 모임들이 너무 부러웠다. 올해는 믿을만한 친구들과 함께 글쓰기 모임을 갖고 싶다. 글쓰기는 시간과 노력의 산물이라는 믿음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는데 의의를 두는 모임, 서로의 글을 읽어주고 서로의 삶을 돌보아주는 모임을 만들고 싶다. 그 모임의 시작에 이 책을 같이 읽고 나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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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글을쓰면좋겠습니다
#홍승은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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