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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평점 :
삼성의 사내변호사, 그것도 구조조정본부 출신인 저자가 삼성의 수많은 비리를 밝힌 이 책이 사회에서 많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소개되어 우연히 읽어보았다.
우리가 좋던 싫던 삼성은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고, 또한 전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굴지의 기업이다. 솔직히 인천공항을 떠나 남의 나라에 가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이미지보다 삼성이라는 이미지가 더 많이 세계인들에게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삼성덕분에 수많은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의 많은 고용창출이 이루어졌고, 국부가 생겨났으며, 국가의 이미지도 향상이 된 것이 사실이다. 필자역시 미국에서 공부할 때 삼성의 노트북 컴퓨터로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삼성이 그렇게 성장한 것에 한국인으로서 감사했다
오늘날의 삼성이 "깨끗하고 투명한" 방법만으로 현재의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작할 때는 보잘 것없던 삼성의 위치에서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피할 수 없었던 비리, 즉 삼성비리는 어쩌면 우리 한국인 모두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희 일가의 비밀, 황제경영의 그림자, 경찰과 검찰, 그리고 전두환 비자금 수사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다양한 삼성관련 비리를 소개하고 있다. 만일 삼성이 미국이라는 환경에서 그랬다면 이같은 모습은 좀 덜하거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에도 대기업들의 비리는 적지않다고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간음하다 걸린 여인네를 돌로 쳐죽이려는 군중들을 향해 "너희중에 죄없는 자 있으면 돌로 저여인을 치라 " 했다던 예수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요즘에는 "자신이 죄가 없는 척 하기 위해서 서로들 돌을 들어 여인을 향해 내려 찍으려 한다"는 것이 유행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돌을 들어 앞장 서서 그 여인네를 향해 내려찍는 손길이 하필이면 전직 삼성의 사내변호사 출신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물론 삼성이 그 여인네에 비교하기엔 너무나 막강 파워를 가진 여인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미국변호사 협회의 변호사 윤리규정중 제일 가는 규정이 고객비밀보호이다. 설령 고객이 마피아라 할지라도, 아니 악마라 할지라도 비밀은 지켜주고, 조금이라도 좋은 점이 있는 지 찾아보아야 하는 것이 변호사라는 직업을 택한 사람의 운명이다. 현재의 고객은 물론 과거의 고객이라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미래의 범죄를 짓는 것이 아니고 과거의 범죄라면 더욱 더 지켜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온 영어표현이 devil's advocate 라고 수업시간에 배운 기억이 난다. 미국변호사 협회의 고객비밀보호와 유사한 규정이 우리 대한변호사 협회 규정에도 있는지 확인해 보지 못했으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뒤에 전직 변호사가 자신이 대리했던 고객(삼성)을 향해 다른 사람들보다 앞장서서 돌을 내리찍는 것에 대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궁금하다. 정녕 "불의한 양심에도 진실은 있"어서일까? 미국같으면 변호사 자격박탈(disbarment)에 수없는 손가락질의 대상에 해당되는 이같은 저서를 내기까지 그의 고뇌에 대해 기회가 된다면 좀더 알고 싶다. 혹시 자신이 아니면 삼성의 비리를, 혹은 삼성과 유착된 대한민국의 비리를, 아니 이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메시아 콤플렉스(messiah complex)때문에, 혹은 그런 우쭐한 메시아 콤플렉스를 불어넣어주는 다른 주위사람들에 의해 숙명처럼 택한 직업인 변호사의 첫번째 규칙을 잊은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좀 들었다. 달리말하자면, 정의추구를 한다는 명목하에 저자는 불의속에서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느 유명 일본 에세이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피로써 피를 씻으려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에도 내부자고발제도가 잘 발달해 있지만 양심선언하면서 책으로 내면서 하는 이런 식으로는 아니다. 오히려 조용히 소리소문없이 내부고발자가 진짜 문제를 제기하고, 비리를 처벌하는 관계부처와 사회가 그 내부고발자를 보호해가면서 조용히 처리해나가는 쪽에 가깝다. 만일 양심을 이유로 고객의 비밀을 모두 까발리는 것이 정의와 양심이라 한다면 모든 변호사, 의사, 회계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다 고객의 비리를 들고 나와야 한다는 데도 동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고객의 비밀을 알면서도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전문직 종사자들을 비겁하다고 욕해야 할 것이다.
한편 돌을 든 그 손을 향해 박수치며 "어서 내리쳐"라고 소리치는 듯한 사람들, 아니 우리모두의 생각속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머리속에 "보다 투명하고, 보다 깨끗한 멋진 삼성을 만들어 우리의 자화상이 좀 더 볼만 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숭고한 사명감"으로 가득하고, "불의한 양심중에도 있는 진실"을 드러내도록 돕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자신이 죄가 없는 척 하기 위해서 서로들 돌을 들어 여인을 향해 내려 찍으려" 하던 예수시대의 군중들과 같은 생각일까?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가장 고귀한 것을 추구하는 척하는 자들은 없는 것일까? 혹은 우리 모두가 그런 속물이면서도 어떻게 하면 그 것이 남에게 들키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의 이런 생각이 쓸데 없는 기우이길 바란다.
이동욱 미국뉴욕주 변호사
추신: 혹시라도 오해를 할 사람들을 위하여 굳이 밝히자면 필자는 삼성과는 여하한 이해관계도 없다. 절대로 삼성을 위해 일해본 적이 없다.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삼성을 위해 일하려고 지원서를 낸 적 조차도 없다. 8촌내의 친척중 삼성소속에서 일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 삼성으로부터 단돈 1원도 받아보지 못했다. 삼성제품은 몇개 사용하고 있다. 삼성에서 일하는 선후배, 동기들은 좀 있다.
삼성측을 옹호하던, 비난하던 다양한 견해가 존재할 수 있다, 감상에 젖어 목소리나 높이고 비논리적 비약이나 욕이나 하는 게 아니라 실명밝히고 논리에 근거해 떳떳히 공개토론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실명으로 서평을 적어봤다. 개인서재에 단 서평이니 만큼 다른 사람들도 인터넷이라는 장막뒤에 숨어서 말할 것이 아니라 실명을 밝히고 의견을 개진하면 좋겠다. 실명을 밝히지 않거나 수준이하의 억지 댓글이나 인신공격을 하면서 자신만의 억지주장을 할 경우에는 부득이 하게 삭제를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