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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서 바라보는 유럽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나이토 마사노리 지음, 권용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5년 2월
평점 :
‘선택’이라는 말, 얼마나 자유로울까?
요즘 세상은 ‘자유’를 중요하게 여긴다.
뭘 입을지, 어떤 직업을 가질지, 결혼을 할지 말지 전부 내가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내 마음대로 하고 있는 걸까?
우리가 정말 ‘완전히 자유롭게’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많은 여성이 히잡을 쓴다.
사람들은 그걸 ‘억압’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신념의 표현’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우리 주변에도 은근히 있는 건 아닐까?
이번 글에서는 히잡 이야기를 시작으로,
한국 사회 안에서 우리가 ‘그냥 당연하게’ 따라온 관습들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
히잡은 억압일까, 자유일까?
히잡은 여성이 머리카락을 가리는 천이다.
이슬람에서는 신앙적으로 권장되기도 하지만,
그걸 억지로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여성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고 말한다.
겉으로 보면 다들 자유롭게 쓰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안 보이는 곳에서의 사회적 압력이 있을 수도 있다.
‘안 쓰면 나쁜 사람처럼 보일까 봐’, ‘가족이 원하니까’, ‘종교적 압박 때문에’ 하는 이유 말이다.
그럼 이건 정말 ‘내 선택’일까?
한국 사회에도 그런 게 있지 않을까?
사실 우리도 그런 거 많다.
예를 들면 여학생은 학교에서 치마를 입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고,
면접 갈 때 여자는 화장을 ‘예의’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명절에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은 대부분 여자고,
데이트할 때 남자가 계산하는 게 ‘매너’라는 말도 들었다.
이게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그걸 어기면 눈총을 받거나, ‘예의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래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그냥 사회의 눈치 때문에 하는 일일 수도 있다.
수업 시간에 이슬람 여성의 히잡 착용 사진과,
한국 여학생들의 교복 광고를 같이 보면 좋겠다.
사진을 보며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왜 이런 옷을 입었을까?”
“자기 의지로 한 걸까, 아니면 누군가 기대해서 그런 걸까?”
이런 질문만으로도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당연함’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내가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해왔던 행동 중에서,
사실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닐 수도 있는 게 뭘까?”
이런 질문으로 글쓰기를 해보자.
스스로 느끼는 ‘작은 관습’을 돌아보는 기회가 될 거다.
학교나 사회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까?
어떤 나라는 히잡을 공공장소에서 금지하기도 한다.
프랑스처럼 ‘세속주의’를 중시하는 나라는 종교 표시를 없애야 한다고 보기도 하지만
만약 진짜 하고 싶어서 히잡을 쓴다면, 그걸 막는 게 오히려 더 억압 아닐까?
우리가 말하는 ‘공공장소의 중립성’이란 게
모두를 위한 배려인가, 누군가의 표현을 막는 건가
헷갈릴 때가 많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여자니까 치마를 입어야지’ 하는 관습을 학교에서 강요하면 안 되겠지만,
‘치마를 입고 싶다’는 친구의 선택도 존중받아야 한다.
중요한 건,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지 스스로 묻는 것 아닐까?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다시 바라보자
히잡 논쟁은 단지 다른 나라 이야기 같지만,
단지 한 문화의 복장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안에 있는 여러 관습과 자유 사이의 긴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우리가 하는 많은 행동도 사실은 누군가의 기대나 눈치 때문일 수 있다.
이럴 때 우리는 한번쯤 이렇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건 진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걸까?”
“그냥 남들이 하니까 나도 따라 하는 건 아닐까?”
학생들과 함께 이런 질문을 나누고,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 뭔지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