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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거짓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하면 당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아주 쉽게 "아 그래? 잘해봐" 하고는 발길을 끊었어요.
그리고 잠시 지나서 가짜 실연을 말하면 또 위로해주는 거예요
때로는 그가 똑같은 고백을 한 적도 있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요. 그때는 얼마나 초조했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달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도 똑같이 말했지요.
" 아 그래? 잘해봐"
그 사람은 나처럼 거짓으로 말하진 않았을 테지만요
하지만 잘못 끼운 단추를 다시 끼우기는 쉽지 않았어요.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몰라 당황해 하는 동안 세월은 계속 단추를 잘못 끼우게 만들었지요.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보기엔 흉하지만 그럭저럭 입기 편한 모양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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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그렇게 된건 나에게도 책임이 있으니까요.
난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채 두 사람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버렸어요.
유키 씨에게 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 사람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것은 분명해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타성적으로 살았기 때문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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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자기 표현을 하지 않으면 손해예요.
어른이라고 해서 반드시 자기 주장을 펼 필요는 없겠지요.
그러나 자기표현은 하지 않으면 안돼요. 자기 주장은 권리이지만 자기표현은 의무예여요. 그것을 착각하면 윗사람에게 오해받거나 아랫사람에게 무시당하거나 동료들에게 따돌림 당하지요. 실력도 노력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해요.
역시 아사다지로!
그는 진정한 이야기꾼. 천재다.
이건 기교 덕분에 살아나는 소위 "글발"이 아니다.
곳곳에서 경험이 드러나고, 생각이 드러나지만 강요하지 않는다.
담백한 원재료.그 맛 그대로. 정제되지 않은 이런 말투로, 신기할 정도로 애간장을 녹인다.
얼굴은 내가 좋아하는 꽃미남인데 "의외로" 까불어 댄다.의외성이 넘친다.
한쪽 다리는 주접스레 떨고 있다.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혀 이상형 답지 않다. 그런데 이성적 매력이 물씬 풍겨난다.
특히 코믹적인 말하기에서 그런 매력은 더욱 도드라 지는 것 같다.
사실은 묘사가 뛰어난 종류의 소설에 자주 반하지만,
흔히 반하는 탁월한 묘사로 감성을 젖게 만드는 그런 종류가 아니기때문에
"특별하게" 반할 수 있는 것 같다.
여자는 남자한테 응석부려도 되지만 남자가 남자한테 응석부리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돼요. 아들은 평생 나한테 응석 부리지 않았다오. 그래서 결국 자신의 인생을 헛되게 만들었지요.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 응석부릴 수 없었어요.
신기한 논리 추론을 통해, 돌려서 제 할말을 하고있다.
자세히 읽어보면 남자는 응석을 부려선 안된다는 마초적 이야기가 아니다.
은근히 비꼬는 거다. 이러한 법칙속에서 엇갈려야했던 무의미한 행동들,
그리고 그렇게 소비해야했던 인생에 대한 아쉬움. 슬픔마저 느껴진다.
이것은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구절을 봐도 재차 확인 할 수 있다.
아내에게도 아들에게도 과묵했던 것은 가족이 자신에게 속한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철두철미하게 사사로움이 없었던 사람이다.
이렇듯 신기하게 겉말과는 다른 속말이 들려온다. 묘한 재주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신세지지 않겠다는 목적도 달성했고, 그동안 내가 해왔던 복지 관계의 일을 온몸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오히려 은근히 기쁨조차 느꼈지요. 하지만 이번만은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장례식에 갈 수도 없었고, 며느리와 손자를 위로해줄 수도 없었지요. 난 아들을 떠나보내면서 아무런 힘도 될수없었어요.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알겠소? 아무리 자업자득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사람들 앞에서 한탄하는 것 조차 허락되지 않았답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는 어디에서 눈물을 뿌렸을까? 같은 병실에 있는 노인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었을까? 치매에 걸린 노인들만 사는 병원에서는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프라이버시도 없으리라
모든 비밀을 알고, 치매에 걸린척 위장하고 있는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알지만 어떠한 행동을 취할수도 없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은 아들이다. 아들은 7일간의 생을 얻어 여자의 몸으로 아버지 앞에 있다.
하지만 아들은 저승의 법칙을 지켜야 하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자신의 일부라고 해도 좋을 가족, 그러나 서로 모른척 해야만 하는 상황적 아이러니. 절묘한 상황, 이야기를 엮어내는 재주, 그는 어떤 것이 "이야기"인가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한다.
그리고 시점은 계속 변화한다. 틀이 없다. 법칙이 교묘히 어긋나 있다.
못 배운, 제멋대로여서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그것 부터 골 때린다
"자기 나라를 외국인한테 지키게 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과거에 어떤 역사가 있었든, 오키나와와 요코타에 미군이 들어와 있는 건 말도 안돼 미국 기지가 우리나라에 있는 건 아주 부끄러운 일이야. 다른 사람은 좋다고 생각해도 나는 싫어. 기정사실이라고 해서 결코 정의는 아니니까.....(중략) 이국과 일본은 전 세계의 웃음거리지만 엄마와 시마다 아저씨는 동네 사람들의 웃음거리야. 내말이 틀려?"
아날로그적인 엄마는 토론에 익숙하지 못한 것 같다. 위기에 빠졌을 때 어른은 갑자기 어린아이를 어린아이로 취급한다.
이런 식의 신선한 비유를 할 수도 있구나- 라는 확인에 그의 천재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한다.
무심코 지나가는 권력 속에 파생된 현실, 그러나 그 현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 한다. 그리고 그걸 교묘히 이야기 속에 편입시킨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가 가진 특유의 신파성이다.
하지만 이것마저 없으면, 나는 그를 좋아 할 수 없을 것 같다.
" 말을 잘하는 구나" 라는 감탄을 넘어 "나는 그가 좋다"
그러니까 이렇게 적절히 촌스러워 감사하다.
참, 그는 이 소설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인간으로서 가장 괴로운 일은 선의를 배반하는 것이다.
끄덕끄덕
그런데 나는, 당신은, 우리는 괴롭지 않기 위해 어떤 선의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