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와 공작새
주드 데브루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파이와 공작새'라니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런데 책의 제목으로 등장했다. 왜 '파이와 공작새'일지 의문을 가지면서 이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책의 앞표지 그림에 커다란 파이 위에 화려한 꽁지를 활짝 펼친 공작새가 앉아 있다. 공작새의 등에 한껏 정장 차림을 한 신사와 숙녀가 마주보고 있다. 불후의 고전으로 일컫는 제인 오스틴이 쓴 '오만과 편견'이 21세기의 감성으로 재탄생했다고 하니 작가가 어떻게 재구성했을지 기대된다. 설령 '오만과 편견'을 읽지 않은 독자라도 책을 읽으면서 '오만과 편견'과의 연관성을 따져보면서 읽는 것도 괜찮다.

책의 뒤표지에 책의 줄거리가 짤막하게 나온다. 줄거리는 요리사 케이시와 배우 테이트와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자존심과 오해,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은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나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 거쳐가는 과정이다. 그러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로 진전되기도 하지만, 그냥 서로에게 잊혀진 타인으로 남기도 한다. 그렇다면 '파이와 공작새'에서 케이시와 테이트는 어떻게 될까? 

책의 지은이 주드 데브루는 할리퀸 로맨스계의 대모라 불리며 43권의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를 썼다. 할리퀸 로맨스는 청소년 취향의 연애 소설 시리즈다. 필자가 청소년 시절이었던 지난 1980년대 학생들 사이에서 하이틴 로맨스가 인기있었다. 그 이후에 할리퀸 로맨스가 유행했다. 

키가 크고 잘 생기고 돈 많은, 즉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와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가난한 여자는 현실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커플이다. 어차피 둘의 만남 자체가 차단되어 있다. 그런데 작가가 상상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는 가상의 소설에선 가능하다. 그래서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파이와 공작새'는 현실에선 불가능하지만 환상적인 로맨스를 꿈꾸는 독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하다. 사춘기 시절을 지나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고, 이제 순수한 사랑 따위는 믿지 않는 중년층일지라도 소설을 통해서 잠시나마 환상에 빠져들 수 있다.

책의 앞표지를 넘기면 등장인물 관계도가 나온다. 케이시 레딕과 테이트 랜더스가 주인공임을 한 눈에 보여준다.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간의 관계를 훑어보면 복잡하다. 

아직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인데 그 많은 인물들의 이름과 관계를 파악해야 한단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독자들은 지레 걱정하지 말길 바란다. 총 3막으로 구성된 542쪽 분량의 책을 읽어가다 보면 줄거리와 함께 등장인물들을 파악하게 된다. 

테이트의 저택 뒤의 게스트하우스에 세들어 사는 요리사 케이시는 아직 테이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를 관람한 적이 없다. 그러니 테이트가 영화배우인지를 몰랐다. 거기서 소설은 시작한다. 

제 1막 1장 
다아시가 드러나다 
Mr. Darcy is revealed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남자가 케이시의 오두막 뒤 베란다에 서 있었다. 그렇다면 경찰을 불러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비명이라도 질러야 하는 거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이유, 그건 남자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책의 구성과 제목에 눈길이 간다. 연극의 극본 형식을 취하면서 '오만과 편견'의 제목을 차용하고 있다. 그래서  등장인물 관계도에서도 인물 이름 아래 연극에서 맡은 배역 이름이 나온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서머힐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공연할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그 연극이 바로 '오만과 편견'이다. 거기서 케이시는 엘리자베스 역을, 테이트는 다아시 역을 맡는다. '오만과 편견'이 무대 위의 연극으로 공연되기까지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아마도 '오만과 편견'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결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남녀가 첫 만남에서 서로를 오해하고, 티격태격하면서 위기를 겪으면서 남자는 오만에서, 여자는 편견에서 벗어난다.

'파이와 공작새'를 읽는 독자들은 책장을 덮은 뒤에도 청춘의 한때로 되돌아간 듯 설레이는 마음이 여운처럼 오랜 기간 머물러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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