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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렁이놀음
박우근 지음 / 지식과감성#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의 앞표지를 보면 왼쪽에 '구렁이놀음'이라는 제목이 있다. '구렁이놀음'이란 무엇일까? 여기서의 '놀음'은 놀이와 같은 말로 '굿, 풍물, 인형극 따위의 우리나라 전통적인 연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도대체 구렁이를 갖고 어떤 놀이를 한단 말인가?
제목 위에 '신화역사소설'이라는 수식어구가 있다. 그렇다면 제목에 등장하는 구렁이는 우리 주변에 볼 수 있는 평범한 동물이 아니다. 그것을 알려주는 이야기 일부가 실려 있다.
'조선시대, 제주도 김녕사굴에는 천구아구대맹이라는 거대한 구렁이가 살았다. 사람들은 구렁이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며 살아 있는 신으로 섬겼다....'
오른쪽에 세로로 길게 옛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이 흐릿한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제주도에서 전해져 오는 천구아구대맹이라는 구렁이 이야기를 형상화한 듯하다. 가운데 제물로 바쳐지는 처녀가 있고 무리가 둥글게 모여 있다. 그 아래에 지켜보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처녀를 제물로 바치면서 살아 있는 신으로 모시는 거대한 구렁이는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이야기 소재다. 이렇듯 신화역사소설은 우리의 오랜 신화나 전설이 별개의 이야기로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역사와 융합되어서 그럴 듯하게 꾸며져 있다.
책의 뒷표지를 보면 '신으로 군림하는 3천 년 묵은 구렁이와 타협을 모르는 19살 소년 판관의 대결!'에서 '구렁이놀음'의 전개를 짐작할 수 있다. 구렁이와 판관의 대결은 신과 인간의 대결이다. 거기서 누가 승리했을까? 책을 읽기 전 독자 스스로 자문자답해 보자.
책의 저자 박우근 작가는 전업작가가 아니다. 현재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첫 소설로 '구렁이놀음'을 썼다. 매일 법조문과 씨름하는 변호사가 작정하고 쓴 소설은 어떨까? 왠지 여느 소설과 달리 내용이며 형식이 꽤 신선하리란 기대감이 생긴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니 총 18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시작은 '천구아구대맹이의 내력'이다. 앞서 책의 앞표지에 수록된 제주도 구렁이의 이야기를 태고적부터 서술하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의 내력은 천지왕과 두 아들 대별왕과 소별왕 형제로부터 시작한다. 태초에 혼돈이 있었으니, 빛도 어둠도 하늘도 땅도 구분이 없던 시절이었다. 혼돈의 한가운데서 천지왕이 태어났다.'
이것은 제주도에서 내려오는 신화다. 신화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여서 이게 사실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하지만 연이어서 선문대할망이 탐라도와 삼백육십 개의 오름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탐라도 북쪽 바다에서 전복을 따는 잠녀 일곱 명의 이야기 등이 나온다. 탐라도, 오름, 잠녀는 허구가 아니다.
신화는 현실과 결부되어서 우리의 오랜 역사를 당시 사람들의 시각에서 구성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제주도의 옛 명칭이었던 탐라도가 화산 폭발에 의해 생겨난 섬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지질학적으로 규명할 수 없었던 옛날 사람들은 선문대할망이 섬을 만들었을거라고 상상했다.
'천구아구대맹이는 천 년을 넘게 살면서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커진 데다 신통력도 부릴 수 있었기에 섬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섬 이름이 탐라에서 제주로 바뀌고 조선 8도 중 전라도에 속하게 된 뒤에도 유일하게 살아 있는 신으로 군림해 왔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난다면 극적인 재미가 없다.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가던 서련이 혼자 힘으로 호랑이를 잡는다. 그는 뛰어난 무예 실력으로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하고 제주도 판관 벼슬을 받는다. 서련은 제주도에 부임한 뒤 김녕마을에서 구렁이 천구아구대맹이를 신으로 모시고 매년 처녀를 제물로 바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악습을 중단시키려고 병사들을 소집해서 훈련을 시킨다.
'구렁이놀음'은 조선시대 중종 임금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책은 목차에서 보듯 신화와 역사가 교차되면서 판타지를 보듯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독자는 책을 읽는 동안 어디까지가 신화이고 어디부터가 역사인지를 구분할 필요 없다. 왜냐구? 이 책은 신화와 역사적인 요소들을 뒤섞어서 다루고 있다해도 명백한 소설이다.
'구렁이놀음'은 신화와 역사가 융합된 이야기로, 신과 인간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신은 전지전능하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약한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에게 도전해서 이길 수 없었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보면 신에게 도전한 인간은 누구든지 신에게 가혹한 벌을 받았다. 그런데 제주 판관 서련은 감히 신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말은 책을 완독하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련다.
그동안 숱한 옛날 이야기를 신화 따로, 역사 따로 접했다. '구렁이놀음'은 작가가 제주도 김녕마을에서 전해오는 신화를 역사와 접목시켜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그래서 파격적이면서도 신선하다. 오랜만에 옛 이야기에 흥미진진하게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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