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희와 나 - 2017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이기호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책의 앞표지에서 제목 '한정희와 나'만 보면 하루에도 수십 권씩 쏟아지는 신간들 중의 하나이려니 생각이 든다. 그런데 왼쪽에 세로로 쓰여진 '제 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보면 책을 향한 호감이 생긴다. 상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해도 상이 주는 믿음이란 게 있다. 독자들은 그것을 외면할 수 없다.

책에 수록된 10편의 소설들을 대표하는 제목 '한정희와 나'는 제 17회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충실했던 독자라면 단편소설 '소나기'를 쓴 작가 황순원을 알 것이다. 황순원문학상 수상이라니 나름 소설을 긁적이는 작가로선 꽤나 욕심낼 만한 명예로운 성과이다.

책의 뒷표지 맨 위의 두 문장에 그만 마음이 꽂힌다. 
"너 정말 나쁜 아이구나. 
어린 게 염치도 없이......"
앞뒤가 논리적으로 모순된 문장이다. 염치(廉恥)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한다. 그런데 아이에게 염치를 바랄 수 있을까?

위 두 문장에 이어 '한정희와 나'의 일부가 나온다. 마치 화자의 뒤늦은 후회가 담긴 고백이다. 마지막 '세상에 예상 가능한 아이란 없는 법이니까......'라는 말에서 앞에서 아이에게 내뱉은 말을 후회하면서 자책하고 있다. 그렇다면 화자와 아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수상작답게 '한정희와 나'에 관한 심사평의 일부가 나온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이면서도 반성할 줄 모르는 한정희에 대한 이해의 실패, 그런 실패를 소설로 쓸 수 없는 문학적 실패를 이중으로 경험하는 소설가 나의 속절없음은 윤리적 곤궁을 드러낸다.' 라는 글에서 작품이 담아내고자 했던 스토리가 엿보인다. 실패에서 비롯된 자책감이다. 그렇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수상작가 이기호는 1999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공모에 단편 '버니'가 당선되어서 등단한 작가다. 경력이 20여 년 된 기성작가다. 오랜 세월 작가로서의 내공이 녹아들었을 수상작에 관한 섣부른 기대감이 생긴다.

책의 차례는 수상작가 이기호의 수상작, 자선작, 수상 소감이 나오고, 수상후보작 8편의 작품들이 나온다. 마지막에 심사평까지 있다. 

수상작 '한정희와 나'부터 한 작품씩 찬찬히 살펴볼까?

'한정희와 나'는 화자인 나의 아내와의 인연으로 한정희가 우리집에 거주했을 때 일어났던 일을 다루고 있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서 반성할 줄 모르는 정희에게 나는 끝내 해서는 안되는 말을 한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은 화자인 내가 세들어 살던 아파트에서 겪었던 일을 다루고 있다. 사채를 이중으로 갚아야했던 권순찬이 사채업자를 향해 시위를 벌인다. 딱한 사정을 안 아파트 주민들이 돈을 모아서 주지만 받지 않는다.

수상 소감에서 이기호 작가는 황순원문학상을 한 번밖에 받을 수 없으니 자랑거리가 아니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리고 수상 이후에도 여전히 소설을 쓸 것이라고 한다.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맞나 싶을 만큼 의외로 담담하다.

수상후보작의 면면을 살펴볼까?
구병모 작가의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는 남편의 전근으로 시골로 이사한 임산부 정주에게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인적이 드문 시골마을은 젊은 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니 좁은 마을 안에서 노인들이 참견하면서 수근댄다. 

권여선 작가의 '손톱'은 엄마와 언니의 가출로 혼자 빚을 떠안은 소희의 이야기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 한 푼 두 푼 따져가면서 절약하지만 끝이 보이질 않는다. 

기준영 작가의 '마켓'은 아이를 자연유산한 서연이 자신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시댁에서 벗어나 남편과의 이혼을 꿈꾸는 이야기다. 

김경욱 작가의 '고양이를 위한 만찬'은 현장체험학습을 떠난 아이가 화재로 죽은 뒤 외국으로 이민을 간 부부의 이야기다. 주방에서 손님 접대 음식을 요리하는 여자가 남편과 실랑이를 벌인다. 식칼을 들고 있는 여자가 무슨 일을 저지를까 조마조마하다.

김애란 작가의 '가리는 손'은 화자인 내가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남편없이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다. 역시 학생들의 폭력사건이 등장한다.

박민정 작가의 '바비의 분위기'는 대학원생 유미가 바라본 사촌오빠의 이야기다. 사촌오빠는 큰아빠의 재혼으로 할머니집에서 생활하면서 세상과 고립되어간다.

최은영 작가의 '601, 602'는 내가 본 옆집 친구 효진이의 이야기다. 공부 잘하는 오빠에게 수시로 얻어맞는 효진이에게 그녀의 엄마는 맞을 짓을 해서 맞는 거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한다.

편혜영 작가의 '개의 밤'은 처가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는 김이 회사에서 사고를 당한 유가족에게 보상을 하기 위해 집을 방문하면서 겪는 일을 다루고 있다.

총 10편의 단편소설은 일상에서 만날 법한 평범한 소시민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녀)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이지만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문제를 개선할 힘이 없다. 그(녀)가 처한 현실 앞에서 그저 방관자처럼 지켜볼 수밖에 없다.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알면서도 거기에 갇힌 채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에 독자도 감정이입된다.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누구든 인생을 살아가면서 본인이 제어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이내 정신차리듯 위안을 삼는다. 

오랜만에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짤막한 이야기가 주는 여운에 빠져들었다. 감질맛나지만 그게 단편소설의 묘미인 게다.

https://m.blog.naver.com/geowins1/221224659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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