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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 떠나올 때 우리가 원했던 것
정은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평점 :
책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은 정은우가 그리고 쓴 감성여행 에세이다.
제목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은 수식어구로 어울린다. 뒤에 붙는 단어가 없어서 생뚱맞다. 그런데 제목 아래 '떠나올 때 우리가 원했던 것'이라는 소제목이 있다. 제목과 소제목을 연결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떠나올 때 우리가 원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여행이 주는 묘미라고 하겠다.
저자 정은우는 만년필과 필름카메라로 세계 곳곳을 스케치하는 것으로 그가 다녀온 여행을 기억하고 있다. 낯선 여행지에서 마주친 생경한 풍경을 그 자리에서 만년필로 쓱싹쓱싹 스케치하고 카메라로 찰칵찰칵 사진을 찍는다.
책의 앞표지에 저자가 스케치한 작품 한 컷이 실려 있다. 만년필로 스케치해서 날카로운 선들의 연속이다. 기차가 출발하는 간이역 정거장의 풍경이다. 만년필 한 자루로 정밀하게 묘사한 작품을 보면서 감탄하기엔 이르다. 책장을 펼치면 전 세계 곳곳의 여행지에서 마주친 일상이 스케치로 표현되어 있다.
저자 정은우는 별스럽지 않은 일상일지라도 제대로 기록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낭비하지 않는 최소한의 장치라 믿고 여행 중에 마주친 사소한 모든 것을 쓰고, 찍고, 그린다. 그래서 그의 손끝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이란 여행 에세이가 탄생했다.
책의 프롤로그로 가기 전 3장의 사진이 나온다. 스페인 말라가는 파아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서 있는 남자를, 폴란드의 크라쿠프는 낡은 창문에 빗방울 자국이 또르르 맺힌 모습을, 독일의 뮌헨은 마을 이정표를 카메라의 앵글이 포착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여행 중에 마주친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세 번째 독일 뮌헨의 이정표 이외엔 사진으로만 그 곳이 어디인지 설명되지 않는다. 도대체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걸까? 사진이 선명하다는 것으론 독자들을 이해시키기 부족하다.
책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여행을 떠나는 독자들이 계획된 여정대로가 아니라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서 낯선 곳을 이리저리 헤매이며 눈물이 날 만큼 힘들어 영원히 추억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남기길 바란다고 했다.
아마도 여행을 떠나서 예정에 없던 상황에 막닥뜨려 본 독자들이라면 저자의 바람에 공감할 수 있으리라. 그 당시엔 주저앉아서 엉엉 울고 싶을 만큼 지치고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면 그런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책의 콘텐츠는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차례대로 살펴보면 감성여행 에세이답게 1장은 여행지로 출발하기 전, 2장부터 4장까지는 여행지에서의 일상, 5장은 여행지에서 되돌아온 후로 제목이 붙어져 있다. 책의 본문 한 쪽은 짤막한 단상, 다른 쪽은 사진이나 스케치가 나온다.
1장 <지금 여기에 없는 답이 여행이라고 있을 리가>
먼저 여행지에 챙겨갈 필수품을 찍은 사진이다. 커다란 지도 위에 만년필, 노트, 수첩, 사진기, 필름, 안경 등이 보인다. 저자가 공언하듯이 그는 대다수의 평범한 여행객들관 차이가 있다.
여행의 매력은 무지라고 하겠다. 사람, 도시, 길, 숙소 모두 내가 아는 것이라면 뭐가 재미있을까. 낯선 환경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불안하지만 그게 여행의 진짜 매력이다. 그렇다. 내가 사는 동네처럼 여행지가 익숙해지면 그 곳은 더 이상 여행지가 아닐 것이다.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니듯, 여행도 우리에게 답을 줄 수 없다. 그러니 그냥 여행을 즐겁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네 인생과 여행은 많이 닮아 있다. 인생이든 여행이든 즐거워야 한다.
2장 <그 여행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골목길을 걷고 있는 스케치다. 그 옆에 찻잔이 놓여 있다. 아마도 저자는 일본의 어느 찻집에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창밖 거리 풍경을 그리지 않았을까?
여행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해끗한 햇살 아래를 걷고 싶은 만큼 걸었고 또 걸었던 만큼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머나먼 곳으로 가서 고작 걷는 게 전부냐고 타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시간도 만족스럽다고 한다.
3장 <우연처럼 운명처럼 일상처럼>
홍콩 거리의 풍경 스케치다. 그 옆으로 장국영, 양조위 주연의 영화 'Happy together'의 표지가 보인다.
사람들이 악착같이 사진을 찍어 남기고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은 그곳에 진정으로 살 수 없는 사람들의 몸부림일지 모른다. 그것을 인정하자 비로소 나는 여행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나는 오롯이 편안해졌다. 여행지는 잠시 머무는 곳이다. 그곳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곧 되돌아갈 집이 있는 한 경유지에 불과하다. 그러니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겨서 영원히 간직할 수밖에.
4장 <결코 만날 일 없는 것들이 만나면서 생겨난 소란>
이번엔 빼곡히 적힌 글과 스케치다. 차 한 잔을 시켜놓고 하염없이 앉아서 연신 바깥 풍경을 관찰하면서 스케치에 열중하는 저자의 진지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 여행 때 수첩을 따로 챙겨 가지 않은 탓에 작은 영수증, 미술관 티켓 따위의 뒷면에 생각날 때마다 끼적였다. 스마트폰이 있어도 종이와 펜부터 찾는다.
여름에 가면 좋은 여행지는 겨울에 가도 좋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를 누가 정해놓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각자가 여행의 순간마다 우연히 발견하는 것이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최고의 여행지는 따로 없다. 그냥 각자의 경험 속에서 존재할 뿐이다.
5장 <돌아온 후 추억할 수 있다면 우린 영원히 여행 중>
노트에 만년필로 스케치하고 깨알같이 기록하는 것은 저자의 여행 중 일과다. 그의 섬세한 손끝에서 한 편의 스케치가 완성될 때면 얼마나 스스로에게 뿌듯할까?
떠나기 전의 설렘부터 일상으로 돌아온 후 추억을 떠올리는 일까지 여행이다. 나도 자라고 여행지도 변하고 내 주변도 나만큼 늙는다. 그것은 아쉽거나 붙잡아야 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즐기면 그뿐이라고 생각한다. 인생도 여행도 즐기면 그만이다. 물론 예기치 않은 시련에 힘들어 지칠 수도 있다. 정해진 대로 하루이틀 살아간다면 인생이 뻔해서 얼마나 지루할까?
에필로그에서 방송국에서 연락이 온 것을 담담히 밝히고 있다.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만년필로 스케치를 하는 것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여행지에서 느낀 단상을 글로, 여행지에서 마주친 일상을 사진과 스케치로 긁적인 감성여행 에세이는 독자들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짧은 글에서 자주 어록에 남을 법한 명언이 눈에 띈다. 일상에 지칠 때 뒤적이면서 저자의 추억 속으로의 여행을 떠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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