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 '문장의 온도'는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라는 부연설명이 있다. 그리고 책의 겉표지 앞면을 농염하게 잘 익은 복숭아가 놓여 있다. 황도 복숭아의 색감이 유난히 따스해 보인다. 저자는 이덕무다. 그런데 옮긴이 한정주가 있다. 아리송하다. 아래 얼어붙은 일상을 깨우는 조선의 에세이스트라는 글 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내 청춘을 이끈 힘은 이덕무의 글이었다"라고 한 말을 인용했다. 도대체 이덕무가 어떤 인물이길래 독서가로 알려진 문대통령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단 말인가?이쯤에서 저자 이덕무가 궁금해진다. 얼른 다음 장을 넘겨보았다. 이덕무는 조선후기 영,정조 시대에 활약했던 북학파 실학자다. 그는 가난한 서얼 출신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학문을 갈고닦았다. 그는 간서치 즉 책만 보는 바보로 부를 정도로 많은 책들을 읽었다. 그가 53세로 죽기 직전까지 대략 2만 권을 읽었다고 하니 가히 독서가라고 하겠다. 들어가는 말에서 옮긴이 고전연구가 한정주는 이덕무가 쓴 두 권의 산문집 <이목구심서>, <선귤당농소>에 특별히 애착이 간다고 했다. <이목구심서>는 이덕무가 평소 듣고 보고 말하고 생각한 것들을 글로 옮긴 책이고, <선귤당농소>는 선귤당에서 크게 웃는다는 뜻처럼 일상생활 속 신변잡기와 잡감에 관해 쓴 책이다. 지금의 문학 장르로 따진다면 에세이다.옮긴이는 이덕무의 글을 감상하다 보면 그가 살아가면서 느꼈던 삶의 다양한 온도가 문장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비로소 책의 제목에 관한 궁금증이 해소된다. 이 책은 이덕무가 자신의 진실한 감정을 묘사하고 솔직한 생각을 표현한 글이 담겨 있다. 조선후기 문장가 이덕무의 글이 한자로 표기되어 있어서 원문을 한글로 풀이했고 그 아래에 옮긴이의 풍부한 해설이 있다. 애초에 이덕무가 한글로 적었더라면 어땠을까? 허균이 쓴 최초의 국문소설 '홍길동전'처럼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이덕무의 글을 읽었을 텐데 정말 안타깝다.차례는 크게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글을 쓰듯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쓰고> 이덕무가 주위 자연의 풍경을 유심히 관찰해서 마치 그림을 그리듯 묘사한 글들을 모았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머리 속에 선명하게 그림이 그려진다. 18세기 이덕무가 살았던 시대는 진경 시대의 전성기였다. 겸재 정선이 진경 산수화의 대가였다면 이덕무는 진경 시문의 대가였다. '봄비와 가을 서리'를 묘사한 시를 보면 '봄비는 윤택해 풀의 싹이 돋는다. 가을 서리는 엄숙해 나무 두드리는 소리에 낙엽이 진다.'라고 했다. 여름과 겨울을 재촉하는 자연현상이다. 극도로 절제된 표현과 간략한 묘사가 강한 여운과 여백의 미를 준다. 이게 시가 주는 매력이다.2장 <내 눈에 예쁜 것>이덕무는 그의 눈에 들어오는 주위의 모든 것들을 예사롭게 지나치지 않았다. '열매 맺지 못한 꽃'에서 널리 알면서도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에 비유하고 있다. 또한 글을 쓰면서도 널리 알지 못하는 것을 근원이 없는 샘물에 비유하고 있다. 얻은 것이 있으면 애써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아도 쓸 수밖에 없다. 가슴 속에 간직한 말과 글이 흘러넘치는데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독서가 있어야지 뒤따르는 논술이 가능해지는 이치다. 3장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는 곳>이덕무는 '포식과 소식'이란 글에서 배가 부르게 음식을 먹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혼탁하게 해 독서에 이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가 박물지(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 장화가 편찬한 백과사전식 기록물)를 읽으니 '적게 먹을수록 마음이 열리고 더욱 맑아지는데 반해 많이 먹을수록 마음이 막히고 수명은 줄어든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는 동서고금의 박물학 관련 서적을 두루 섭렵해 세상의 모든 지식 정보의 기원과 역사를 고증하는 글쓰기를 즐겼다.4장 <세상에 얽매이거나 구속당하지 않겠다>이덕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겁다'라고 한다. 그의 말은 마치 강박관념에 짓눌려 있듯 하루종일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귀담아 들어야만 한다. 아무 일이 없을 때에도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한다. 훗날 근심하고 걱정하는 때가 되어야지 문득 그것을 깨닫는다. 사람은 누구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에서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다.5장 <내 마음속 어린아이가 얼어붙은 세상을 녹인다>이덕무는 '슬픔을 위로하는 방법'으로 슬픔이 닥쳐 사방을 둘러봐도 막막할 때 손에 한 권의 책을 든 채 마음을 달래고 있노라면 무너진 마음이 약간이라도 안정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글자를 읽을 수 있는 두 눈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한다.그는 '번뇌와 근심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눈을 감고 앉아서 명상하는 것을 언급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마음을 괴롭히는 번뇌와 근심이 특별한 이유가 없는 불안과 두려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6장 <온몸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덕무는 '독서의 유익한 점'으로 4가지를 꼽고 있다. 그가 날마다 일과로 독서하면서 학문과 식견이 넓고 정밀하고 자세해 옛일에 통달하거나 뜻과 재주에 도움이 되는 점 외에 유익함이 있다라고 한다. 첫째, 굶주릴 때 소리 높에 독서하면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다. 둘째, 추울 때 독서하면 기운이 소리를 따라서 퍼져 나가 몸 안이 훈훈해진다. 셋째, 근심과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눈은 글자에 두고 마음은 이치에 몰입해 독서하면 잡념이 사라지게 된다. 넷째, 기침병을 앓고 있을 때 독서하면 기운이 통해서 기침 소리가 갑자기 그치게 된다.'문장의 온도'를 읽다 보면 이덕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독자들의 마음까지 따스해진다. 서얼 출신으로 차별받던 조선 시대에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면서도 오히려 꾸준히 독서를 한 그의 진정성이 그의 글에서 드러난다.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순수하고 진실된 글은 지금의 우리가 읽어도 고리타분하지 않다. 문득 일상에 지치고 힘들어서 그대로 주저앉고 싶을 때 '문장의 온도'를 펼쳐서 이덕무를 만나보면 어떨까? 그의 글들이 독자들의 삶에 위안이 될 것이다.https://m.blog.naver.com/geowins1/221198293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