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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1 - 김종광 장편소설
김종광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주변국과의 외교정책을 사대교린으로 정했다. 중국 명나라와 같이 큰 나라는 받들어 섬기고, 여진, 왜국 등의 작은 나라는 대등한 입장에서 친하게 지내고자 함이었다. 그런 취지에서 왜국에 대규모 외교사절단을 파견하였으니 이름하여 조선통신사라고 일컬었다. 그동안 조선통신사는 간략히 역사책에 한두 줄로 언급될 뿐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다.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조선통신사'를 김종광 소설가가 두 권의 장편소설로 엮었다. 작가는 풍부한 기록물을 가진 조선통신사를 소재로 쓴 소설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면서 그 이유를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 평범한 이야기에 있다고 했다. 작가는 특출나지 않은 평범한 점에 매료되어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1763년 8월 3일 계미년 영조 39년에 임진왜란 이후 제 11차 통신사가 서울을 떠났다. 일본 에도(현재의 도쿄)에 닿은 것은 이듬해 2월 16일, 되돌아와서 경희궁에 복명한 것이 1764년 7월 8일로 무려 332일이 걸렸다. 수로는 배, 육로는 말이 이동 수단의 전부였던 당시의 교통사정을 감안했을 때 통신사 일행이 무사히 되돌아온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332일간의 여정에서 십수 명이 일지를 쓰듯이 기록했다고 하니 그 분량이 방대하다. 물론 일지 형식으로 낱낱히 기록했으니 짧고 문장의 완성도가 뛰어나지 않았다. 작가는 그 단편적인 기록들을 얼기설기 엮어서 한 편의 이야기로 구성했다. 엄밀히 말하면 여행기라고 하겠다.
'조선통신사'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왕명을 받아서 삼사, 제술관, 서기, 군관, 역관이 조선통신사의 직무를 수행한다. 또한 섬 나라 일본으로 가려면 바다를 건너야 한다. 총 여섯 척의 배를 바다에 띄워서 움직일 인력이 필요하다. 선장, 사공, 격군 등으로 각자 배를 부릴 역할이 정해져 있다. 순전히 바람에 실려서 돛대에 의지한 채 양팔로 부지런히 노를 저어야만 바닷길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는 배를 상상해 보라. 얼마나 많은 인원이 동원되었을지 헤아리고도 남는다.
배가 출발하기 전부터 조선통신사 일행은 갖가지 사건 사고를 일으킨다. 그들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하는 말투가 상스럽고 걸죽하다. 대부분 상놈과 종놈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어릴 적부터 배움이 부족한 탓에 체면치레는 어울리지 않는 일자무식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선 그들이 내뱉는 말을 받아서 읽어내리는 재미가 있다.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 버금가는 해학과 풍자가 넘쳐난다. 고향을 떠나서 나그네 신세가 되어서 지내다보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서 이동한다고 해도 뜻하지 않은 갖가지 불상사가 생기기 마련이다. 중간에 병으로 몸져 누워 있다가 끝내 저승길로 접어드는 사람들도 있고, 지나가는 길에 음주나 쾌락에 못 이겨서 무리를 이탈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다.
조선통신사 일행은 일본으로 가는 길에 대마도를 경유한다. 지금도 부산 태종대에서 맑은 날 일본 쪽을 바라보면 육안으로 흐릿하게 대마도가 보인다. 대마도주가 조선통신사 일행을 인솔해서 일본 본토로 이끈다. 일본인들이 조선통신사 일행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대접하는지 상세히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두 번의 전쟁을 일으키면서 조선을 침략했건만, 일본인들 눈에 비친 조선인들은 유학의 학문적 깊이가 깊어서 유생들이 본받고 싶어 한다.
조선의 인삼, 일본의 고구마가 언급되는 것을 봐도 일본인들은 인삼 한 뿌리를 얻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일본 여인들은 몸까지 바칠 정도다. 그런데 그들이 먹는 고구마는 일본 곳곳에 널려 있어서 단순히 허기를 채워주는 보잘 것 없는 작물에 불과하다. 조선통신사 눈에 살짝 비친 일본의 모습은 우리와 다르다. 그것을 놓치지 말자.
날짜별로 조선통신사 행렬이 이동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있다. 일지에 충실한 글을 재구성해서 화려한 미사여구가 필요없다. 보고 들은 그대로 적었다. 소설의 문체도 간단하다.
소설은 무사히 경희궁으로 되돌아와서 영조를 알현하는 것으로 끝난다. 작가가 소설을 마무리할 무렵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가 결정되었다. 소설의 출판에 이은 경사다.
5백 사내, 3백 일, 1만 리 일본견문록 '조선통신사'는 소설 특유의 극적인 요소나 갈등 구조는 없다. "갔노라, 보았노라, 겪었노라, 돌아왔노라!"에 충실하게 쓰여졌다. 그럼에도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은 상놈, 종놈들이 좌충우돌하면서 토해내는 대사가 발칙하면서도 통쾌하다는 데 있다. 양반과 상놈으로 서열화된 신분제 사회에서 억압받는 그들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그들의 언어로 표출하고 있다. 그 맛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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