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쟁 1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하루에도 수십 권의 책들이 출간되지만, 책의 제목이 일치하기란 쉽지 않다. 출판사에서 신간을 출간하기에 앞서 작가와 협의해서 그럴싸한 책의 제목을 붙일 것이다. 그런데 '나의 투쟁'이란 제목은 낯설지 않다.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히틀러가 옥중에서 쓴 '나의 투쟁'이 있다. 그런데 동일한 제목으로 과감히 도전장을 낸 노르웨이 출신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가 지은 '나의 투쟁'이 있다.

책의 겉표지 앞장 전면에 작가의 얼굴 흑백 사진이 있다. 작가의 얼굴에 눈길이 간다. 듬성듬성한 흰머리, 이마에 굴곡진 깊은 주름, 정돈되지 않은 눈썹과 아무렇게나 무성하게 자란 턱수염이 작가의 고단한 인생을 드러내고 있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의 삶이 남긴 흔적을 짐작하겠다. 그야말로 녹록치 않다. 왼쪽에 노르웨이 최고 문학상 브라게상을 필두로 전세계에서 수여하는 각종 상들을 수상했다는 이력이 책의 명성을 뒷바침해 준다.

책의 겉표지 뒷장에 "나는 완전히 다르게 쓰기 시작했다. 일종의 고백처럼.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는 모든 비밀을 말했다."는 작가의 말이 책의 주제를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독자로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이력을 살펴볼까? 그가 작가로서의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이다. 글을 쓰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매일 글을 쓰고, 담배를 피운다.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를 가끔 느낀다. 이 욕구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을 씀으로써 세상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글을 씀으로써 좌절한다.'

그는 노르웨이 베르겐 대학에서 문학과 예술을 전공했던 경험이 그의 문학적 상상력과 예술적 감수성을 키웠나 보다. 작가로서의 간절함과 축적된 경험이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들었다. '나의 투쟁'은 그의 자화상 같은 소설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총 6권을 출간했다.

차례는 1, 2, 옮긴이의 말로 구성이 단조롭다. 달랑 2부만 있다. 굳이 책의 구성에 대해 지적을 하자면 소단원으로 세분화하고 제목을 달아줬더라면 어땠을까? 짐작컨데 독자의 입장에서 지루하지 않게 책을 읽을 수 있겠다.

책의 1부 시작은 죽음을 언급하고 있다. 죽음은 심장 박동이 정지되는 것을 뜻한다. 의사는 그것으로 사망진단을 내린다. 생명을 지닌 인간이 죽어가는 그 순간 신체의 내부기관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시작부터 사람들이 꺼려하는 음울한 죽음에 관해서 다루고 있을까? 그리고 아버지에 관한 기억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에게 과연 죽음과 아버지간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1부는 작가의 현재에서 출발하고 있다. 1인칭 시점에서 죽음과 아버지를 언급하다가 어느 새 과거의 한 때였던 저자의 학창시절로 깊숙히 들어가 있다.

작가는 책 53쪽에서 그의 일상을 투쟁이라고 표현했다. '비록 영웅적인 투쟁이라 할 수 없지만,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 치워도 치워도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는 방, 눈을 뜨고 있는 한 한도 끝도 없이 뒤를 따라다니며 돌봐주어야 하는 아이들 등 내 힘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어떤 지배적인 것들에 맞서는 투쟁인 것이다.' 그렇다. 우리네 주어진 하루하루의 일상이 나와 나 아닌 것의 투쟁임에 다름없다.

작가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방학 때 간호학교에서 계속 공부하기 위해 어머니는 열 살 터울의 형 윙베가 있는  베르겐으로 떠난다. 그때부터 칼 오베는 지역 중학교 교사였던 아버지 혼자 있는 집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집을 오가면서 생활한다. 학교 친구들과의 연말 모임에서 술, 담배를 하면서 짜릿한 일탈을 경험하거나, 이제 막 사랑에 눈뜬 사춘기 소년의 설레이는 마음을 겪으면서 작가는 몸도 마음도 성숙해간다.

2부는 아버지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어머니와 이혼하고 재혼했지만 결국 혼자 남게 된 아버지는 할머니집에 들어와서 산다. 이때부터 술에 절어서 망가진 아버지는 식탁 의자에 꼬꾸라져 죽은 채 발견된다. 스웨덴에서 지내고 있던 작가는 공항에서 형과 만나 노르웨이의 할머니집으로 간다. 치매기가 있는 앙상한 할머니만 남은 집은 온갖 쓰레기와 오물로 가득하다.

작가는 형과 함께 아버지의 장례식이 있는 금요일 전까지 집안팎을 정리하고 대청소를 한다. 먼지투성이에 청소하지 않아서 폐허가 되다시피한 집안 곳곳을 묘사한 모습은 끔찍하지만 실제 있을 수 있는 현실의 상황이다.

거동이 불편하고 대소변이 원활하지 않은 독거노인이 거주하는 공간을 청결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주위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노후의 삶에 대해서 고민해 볼만하다.

작가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한 번도 작가를 다정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 수시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 없다.

작가는 문학 뿐만 아니라 예술을 공부한 소양이 책의 곳곳에 드러난다. 책 342쪽에서 노르웨이 출신 화가 뭉크의 작품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지를 보라.

'뭉크는 장엄하고 야생적인 산, 거대하고 격렬한 바다, 거칠고 난폭한 나무와 숲 아래 조그맣고 미미하게 자리하고 있던 인간의 가치를 격상시켰다. 뭉크의 그림을 보면, 주변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인간이 화폭의 중심이 되었고 산과 바다, 나무와 숲은 인간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다. 여기서 인간적이라는 것은 인간이 행하는 움직임과 그들의 눈에 보이는 삶이 아니라, 인간의 느낌과 내면적 삶을 의미한다.'

작가의 자화상이자 자서전과도 같은 이야기는 작가만의 경험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구구절절 공감하면서 끝까지 책을 들고 있다. 1권을 읽었지만 이어질 이야기 6권까지의 '나의 투쟁'도 궁금하다.

문득 내 삶이 지루하고 부질없다 느껴질 때면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가 쓴 '나의 투쟁' 시리즈를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삶은 나 자신의 치열한 투쟁이라는 사실에 현재 건강하게 살아있는 나 자신을 격려할 수 있으리라.

http://blog.naver.com/geowins1/22112283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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