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 명작동화 속에 숨어 있는 반전의 세계사
박신영 지음 / 바틀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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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았던 집안이었다. 하지만 독서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계셨던 부모님은 당시 거금을 들여서 세계명작동화전집을 구입하셨다. 전집은 총 50권이었다. 누구든 제목을 들먹이면 아는 체할 만큼 왠만한 동화는 다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학원도 없었기에 부담없이 하교하자마자 세계명작동화전집에서 한 권씩 꺼내어 읽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아름다운 공주와 멋진 왕자가 만나자마자 첫 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는 어린 소녀의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 그리고 아직도 왕이 건재한 나라가 존재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미지의 나라를 동경하곤 했다. 그렇다고 그 소녀가 그 나라에서 공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없는데도 말이다.

그랬던 소녀가 성장해서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아 키우고 있어도 어릴 적 세계명작동화를 읽으면서 지녔던 아름다운 공주와 멋진 왕자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라는 책의 제목을 대하자마자 충동적으로 이끌렸다.

부제목이 '명작동화 속에 숨어 있는 반전의 세계사'다. 명작동화의 일부 스토리는 작자미상으로 문자가 없었던 아주 오랜 옛날부터 구전되어 왔다. 세대를 이어오면서 시대에 따라 그 스토리가 각색되었지만, 그 스토리가 만들어질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명작동화를 읽으면서 세계사적인 사건과 연결지을 수 있다.

동화 속 주인공 백설공주, 빨간 머리 앤, 소공녀, 빨간 구두, 제제, 마르코 등등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알려준다. 물론 독자에 따라서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은 채 그러려니하면서 책을 읽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본인이 알고 있었던 동화를 뒤집어 그 이면을 들춰보는 재미가 있다.

저자 박신영 작가는 자칭 역덕, 그러니까 역사덕후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면서 철없는 소녀의 환상에 젖어 있지 않았다. 왜 그럴까라는 궁금증이 '백마 탄 왕자는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라는 책을 쓰게 만들었다.

저자의 소개 아래 기가 막힌 반전의 세계사 사례로 백마 탄 왕자를 꼽고 있다. 어릴 적 소녀가 보았던 멋진 왕자는 알고 보니 백수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왕자와 백수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한 국가를 다스리는 존엄한 왕이신 아버지의 뒤를 잇는 준비된 왕이다. 그런 왕자가 놀고 먹는 백수의 신세라니 너무 한심해서 선뜻 믿기지 않는다. 여기에 중세유럽의 소국들이 등장한다.

지금의 독일어권 지역에 300여 개의 작은 나라들이 있었다. 영토가 작은 나라는 왕자들이 많으면 문제가 생긴다. 영토를 분할하면 나라의 힘이 약해진다. 그런 이유로 부왕은 첫째 왕자에게 왕위를 물러준다. 나머지 왕자들은 궁궐을 벗어나 각자 알아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야 한다. 그래서 왕자의 떠돌이 생활이 시작된다. 그러다 이웃나라 공주와 결혼이라도 하면 이웃나라의 왕이 될 수도 있다. 어떤가? 백마 탄 왕자가 고국을 떠나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야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답이 되지 않는가?

첫 번째 수많은 왕자들의 공통된 사연이었던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에서 보듯 작가는 세계명작동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이 생겨난 연유를 세계사적인 배경이나 사건을 연결지어서 풀어나간다. 그런데 작가의 풀이가 제법 설득력이 있다. 그게 아니라고 반박할 그럴싸한 근거를 찾지 못하겠다.

이 책을 읽다보면 시나브로 세계사적인 지식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작가는 가상의 스토리를 두고 세계사적인 팩트체크를 하는 셈이다.

스토리가 만들어질 그 당시로 되돌아가보자. 어느 누구도 백마 탄 왕자의 떠돌이 생활이 공주와의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이라고 대놓고 말하지 못했다. 그 옛날의 작가는 가상의 스토리로 꾸며서 에둘러 표현했을 것이다. 언젠가 자신이 쓴 스토리의 진실이 밝혀질 날이 올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하면서 말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대한민국의 박선영 작가가 그 일을 해냈다. 어릴 적부터 세계명작동화를 읽으면서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품었던 작가의 호기심이 어린 소녀가 지녔던 동화속 환상을 여지없이 허물어뜨렸다. 하지만 어릴 적 동화를 읽었던 독자라면 작가의 해석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책장을 술술 넘길 것이다.

동화속 환상이 사라져도 좋다. 대신 그 자리를 세계사적인 사실로 가득 채울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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