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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연애의 기억'은 연애 즉 사랑에 관한 기억이다. 누구나 평생에 걸쳐서 여러 번 사랑에 빠진다. 그 사랑의 결말이 환희로 진행 중이기도 하지만 때론 아픈 상처로 남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들의 연애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연애의 기억'이라는 책의 제목을 들여다보면서 담담하게 자신의 연애를 되돌아보면서 온갖 상념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맨부커상 수상작가 줄리언 반스가 쓴 단 하나의 연애소설 '연애의 기억'은 연애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책의 앞표지 삽화에서 두 손을 뻗어 얼굴을 벽면에 대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에서 절망적인 사랑을 느끼는 것은 섣부른 착각에 불과한 것일까?
"파국에 이른 사랑은 기억으로 바뀐다"라는 구절에서 독자들은 앞서 '연애의 기억'에 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사랑의 결말이 파국이다. 징조가 나쁘다.
저자 줄리언 반스는 영국 출신으로 2011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그는 1986년 '플로베르의 앵무새'로 유럽 대부분의 문학상을 석권한 바 있다. 그래서 '연애의 기억'도 작가의 내공이 유감 없이 발휘되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긴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새뮤얼 존슨의 '영어 사전'에 있는 소설에 관한 뜻풀이가 실려 있다. '작은 이야기, 일반적으로 사랑을 다룬다.'라는 뜻에서 보듯 소설이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차례는 제목 없이 하나, 둘, 셋으로 표기되어 있다. 각각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첫 문단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 라고 나는, 결국 생각한다.'
이 질문에 화자는 제어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 사랑에 빠진 연인이라면 사랑의 경중을 따지지 않는다. 그 순간 오직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맹목적인 열정에 사로잡혀 있다. 눈 뜬 장님이 된다. 화자인 나도 그랬다.
나는 스무 살 대학생이고 내 애인 수전 매클라우드는 대학에 다니는 아이가 둘 있는 마흔 여덟 살의 유부녀다. 어머니뻘 되는 연상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 나는 순탄하지 않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둘의 사랑은 사회적으로 용인받기 어렵다. 스무 살 이상의 나이 차이도 그렇고, 남편과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유부녀라는 여인의 처지도 그렇다.
차례에서 본 하나, 둘, 셋의 기준은 화자의 관점이 변화하는 데 있다. 하나는 화자인 나를, 둘은 내가 너로 바뀌고, 셋은 내가 그로 바뀐다. 수전과의 연애를 얘기하는 화자가 주관적인 나에서 객관적인 그로 변화하고 있다. 이것은 두 연인의 사랑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암시한다.
화자는 파국에 이르게 된 지난 날의 사랑을 회상하면서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엔 기억만이 남는다. 그 기억은 쓰디 쓴 약과 같다. 물론 사랑하는 그 순간은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아름답고 황홀했으리라. 그런데 그토록 아름다웠던 사랑이 끝나고 나면 아픔과 상처가 오래도록 기억된다. '연애의 기억'은 그런 사랑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