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어도 나 혼자'라는 제목만으로도 왠지 외롭고 쓸쓸한 기운이 감돈다. 누군가와 같이 길을 걸어가도 나 혼자 걸어가는 느낌을 받는다면 어떨까? 이런 상황을 두고 고독 속의 군중이라고 한다. 아직 책장을 펼쳐보지 않은 상태에서 책의 제목에서 자꾸만 마음이 머무른다. 책의 내용은 제목을 어떻게 풀어쓰고 있을까?책의 앞표지 삽화는 바닷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은 무리지어서 날개짓을 하는데, 지상에 발을 딛고 있는 여인은 왜 홀로 있는 것일까? 고립되어 있지만 한쪽 어깨에 가방을 둘러맨 모습은 씩씩해 보인다.책의 뒷표지 삽화로 이어진다. 바닷가와 어울리지 않는 한껏 치장을 한 여인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두 여인의 차림새로 미루어 성격이나 취향이 정반대가 아닐까? 두 여인이 어떤 연결고리를 갖고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 서 있을까?저자 데라치 하루나는 일본 사가현에서 태어나 현재 오사카부에서 거주 중이다. 회사원과 주부 생활을 병행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일본 문학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들 중 한 명이다.저자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서문을 썼다. 저자는 '여성에게 진정한 우정은 성립하지 않는다.'라는 말에 '그럴 리 없어.'라고 반문해왔다. 이 책을 통해 한국의 독자들이 세상의 보통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의문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목차를 살펴보면 소제목 앞에 유미코 혹은 카에데라는 이름이 작게 표시되어 있다. 유미코, 카에데라는 이름의 두 여인은 주인공이다. 각자의 시선에 따라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유미코는 마흔을 앞두고 메종 드 리버라는 싸구려 아파트로 203호로 이사왔다. 남편과 별거 중이고 아이는 없다. 계약직 사원으로 얼마 전에 계약 기간이 끝나 새로이 일자리를 찾는 중이다. 27살에 히로키와 결혼했지만, 히로키가 전처와의 사이에 낳은 딸이 자꾸만 전화로 히로키를 불러내면서 별거를 시작했다.카에데는 유미코의 옆집 205호에 살고 있다. 요코지 절임이라는 회사에서 5년간 사무원으로 근무했지만 퇴직을 앞두고 있다. 사장 요코지는 유부남인데 틈만 나면 카에데에게 접근했다. 나이가 많아서 재취업하기 어렵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유미코와 카에데는 주인공이지만, 외모도 나이도 집안도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보잘 것 없다. 그들은 의지할 가족들도 없다. 그래도 세상의 시선에 위축되지 않는다. '외톨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부부든 친구든 같이 있다고 '둘'이라는 새로운 무언가가 되지 않는다. 그저 외톨이와 외톨이일 뿐이다.' (250쪽)책 250쪽에 나와 있는 유미코의 생각이 이 책의 제목 '같이 걸어도 나 혼자'에 대한 답이 되지 않을까? 남편이 있는 유미코도, 애인이 있는 카에데도 우여곡절 끝에 혼자 남겨진 삶을 선택한다. 두 사람은 집으로 되돌아가기 전 천천히 바닷가 해수욕장에서 한 걸음을 내딛는다.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서 옮긴이 이소담은 처음에 책을 읽으면서 문장이 건조하고 담담하단 생각이 들었단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두 주인공과 가깝게 느껴졌다고 한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두 여인의 삶은 최악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서 주저앉은 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끝내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만의 길을 조심스레 걸어간다. 서로 처한 상황이 다른 두 여인의 시선이 얽히고 설켜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독자들은 점점 두 여인에게 빠져든다. 처음엔 섣부른 동정심이 앞서서 안타깝지만, 나중엔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두 여인의 미래를 응원하기에 이르른다. 그게 이 소설이 지닌 알 수 없는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