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 신화를 접해 본 독자들이라면 친숙한 이름이 있다. 아킬레우스! 그는 누구인가? 그는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영웅이다. 또한 강자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비유하는 아킬레우스건이라는 발뒤꿈치 근육이 있다. 그런데 그를 전면에 내세운 '아킬레우스의 노래'가 책으로 출간되었다.책의 앞표지에서 제목 '아킬레우스의 노래' 뒷면에 투구를 쓴 아킬레우스의 상반신 조각상 삽화가 나온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 측면은 완벽한 미남형이다. 고대 그리스가 한창 전성기를 맞이했을 때 인체의 아름다움을 이상적으로 표현했다. 그들이 남긴 조각상들은 하나같이 완벽한 얼굴과 몸매를 자랑한다.책의 뒤표지 상단의 두 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영웅 아킬레우스, 그의 친구이자 연인인 파트로클로스 / 피빛 전쟁터 속에서 빛나는 두 연인의 사랑과 비극'아킬레우스는 트로이아 전쟁 중에 전사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 속에서 연인 파트로클로스와의 사랑이라니? 성급한 독자라면 파트로클로스를 검색해 볼 것이다.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와 같이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한 영웅이다. 둘은 동성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연인 사이다. 두 인물의 관계 설정 자체가 순탄하지 않고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책의 저자 매들린 밀러는 미국 출신의 작가다. 그녀의 첫 장편소설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무려 10년 동안 집필한 작품이다. 고작 한 권의 책을 10년이나 쓰고 있었다니 독자들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역사적 사건이자 원작이 있는 트로이아 전쟁을 다루고 있다면 어떨까? 책장을 넘겨서 책을 읽어 내려가다보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정교한 재구성에 10년이라는 세월을 무색하게 만든다.왕자 파트로클로스는 모국에서 쫓겨나 펠레우스 왕의 보호 아래 왕자 아킬레우스와 함께 성장한다. 둘은 우정을 넘어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아킬레우스는 반신반인의 존재다. 어머니 테티스가 바다의 여신이다. 그런데 올림푸스 최고의 신 제우스가 테티스에게 반하지만, 그녀가 낳은 아들이 제우스를 능가한다는 예언에 테티스를 인간 펠레우스와 결혼시킨다. 그래서 태어난 아이가 아킬레우스다. 파리스의 심판으로 그리스 최고의 미녀 헬레네가 납치되자 그리스 동맹군은 트로이아를 공격한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도 전쟁에 참전한다. 어차피 결말은 정해져 있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가 핵심이다. 화자인 파트로클로스의 입장에서 부드럽고 섬세하게 전개된다. 마치 귓속말로 나긋나긋 속삭이듯 환상적인 느낌이다. 두 영웅이 동고동락하면서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도 억지스럽지 않다.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파트로클로스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심취한다.윌스트리트저널은 '근래에 호메로스의 작품을 각색한 소설 중 최고.'라는 찬사를 내놓았다. 동성애를 묘사하고 있지만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여성 취향의 멜로물에 가깝다. 영웅 이야기에 귀가 솔깃한 남성들은 지루해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