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시대, 선비는 무엇을 하는가 - 남명 조식과의 만남, 위대한 한국인 9 위대한 한국인 9
허권수 지음 / 한길사 / 2001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조선조의 지식인 조식 남명 선생의 전기이다. 저자는 경상대학교 부설 '남명학 연구소'소장직을 맡고 있는 허권수다.

남명은 나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그의 삶과 학문과는 관계없이 그저 이름만으로 그랬다. 남명의 외가이자 출생지인 합천의 톳골, 그곳은 남명이 '뇌룡사'를 짓고 12년간 후학을 양성했던, 남명의 삶과 학문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이다. 바로 그곳은 내가 유년 시절을 보낸 나의 고향이다. 남명 그리고 '뇌룡정'(뇌룡사를 복원한 것)은 조식 남명이라는 한 위대한 지식인과는 상관없이 내 유년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작년에 이윤택이 극본을 쓰고 연출한 [시골선비 조남명]을 보고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의 모습을 남명을 통해 보게 되었다. 그 연극은 내 기억을 새롭게 환기시켰으며 올 가을에 뇌룡정을 다시 찾게 만들었다.

남명의 학문은 '경'과 '의' 두 글자로 요약된다. 학문의 주체인 '나'를 성찰하고 돌보는 것이 '경'이라면, '의'는 이러한 '나'를 외부적인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러한 '경'과 '의'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써 '실천'된다. 남명은 죽음을 앞두고도 제자들에게 '경'과 '의'의 가르침을 남겼다. 그의 학문적 태도와 삶은 시종일관 '경'과 '의'에 대한 지극한 신념을 따르고 있다.

저자는 남명이 남긴 글들(시, 서간, 상소문 등)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500여년 전의 지식인 남명을 생동감있게 드러내 보여준다. 그의 글들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실천'이었다. 그 실천은 때로는 목숨을 담보로 할만큼 적극적인 것이었다. 이로써 남명은 지식인의 책무가 한 개체의 '생명'을 능가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생활인으로서, 스승으로서, 지식인으로서 남명은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그의 삶을 다시 반추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골동취미에서 나온 도락적인 이유가 아니다. 지금 남명이 주는 의의는 오늘날 이 땅에서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지식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들을 성찰하게 하는데 있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그 시류를 거스를 수 있는 결단력, 입신출세라는 개인적 욕망을 당대의 역사적 조건에 대한 도전으로 이끌 수 있는 인성의 범대함, 이런 것들은 남명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인 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말에 깊은 울림을 느낀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학문의 가시밭길을 기꺼이 걸어가도록 만드는 엄청난 울림이다.

'사람들 가운데 곤궁함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곤궁함에 바탕해서 형통함을 구한다. 나의 곤궁함을 가지고서 다른 사람들의 형통함을 바꿀 수 있겠지만, 나는 바꾸지 않겠다. 다만 나의 다리 힘이 약해서 용감히 나아가 힘써 행하지 못할까 두려울 따름이다.'

남명이 과거라는 것을 버리고 시험에 필요한 공부가 아닌 진정한 공부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의 친구 송인수가 보낸 <대학>의 뒤에 이와같은 글을 남겼다. 그 기개와 의지가 500여년의 시간을 건너 지금 나에게 그대로 느껴진다. 이제 나는 더이상 '곤궁함'과 '형통함' 사이에서 고민할 이유가 없어졌다. 왜냐면 '곤궁함' 속에는 '형통함'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주변이야말로 진정한 중심의 '도'가 들어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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