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생은 그저 가끔씩 끔찍하고, 아주 자주 평범하다는 것을. 2016년 겨울허연
오십 미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 화면처럼 서서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 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 P12
거진
당신이 사라진 주홍빛 바다에서 갈매기 떼 울음이파도와 함께 밀려가선 오지 않는다. 막비추기 시작한 등대의 약한 불빛이 훑듯이 나를 지워버리고 파도 소리는 점점 밤의 전부가 됐다. 밤이 분명한데도밤은 어디론가 가버렸고 파도만이 남았다. 밤은 그렇게 파도만을 남겼다.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내내파도 위로 가끔 별똥이 떨어졌다. 바스락거리던 조개들의 죽음이 잠시 빛났고 이내 파도에 묻혔다 소식은 없었다. 밤에 생긴 상처는 오래 사라지지 않는다. 도망치지 못했다 거진. - P17
장마의 나날 중 마지막
강물에게 기록 같은 건 없습니다사랑은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 P51
날짜변경선
사향소가 서로 머리를 들이받으며 싸우고 있었다. 마감한 별의 빛승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생을이 이제야 툰드라에 도착했다.
어떻게 별들은 세상의 모든 것이 됐을까. 어떻게별들은 전부 이야기가 됐을까. 별의 이야기가 눈물로 바뀔 때, 수천 개의 별이 죽어가는 이곳에서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별의 일부였을까. 별에서 살았던 것일까.
툰드라의 여름이 가고 있었다. 병든 북극여우가마지막 별빛을 쪼일 때. 그 별의 비정함에 대해서는쓰기 힘들다. 빙하가 쪼개지는 소리를 들으며 날짜변경선은 넘는다. 그 여름의 마지막 날. 난 심장을툰드라에 두고 왔다.
샤샤는 추운 이름이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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