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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 ㅣ 오늘의 젊은 작가 57
전예진 지음 / 민음사 / 2026년 5월
평점 :
[서평] 지워진 것은 사라지는가: 《보글》이 말하는 흔적과 연대의 등가교환
전예진 작가의 신작 《보글》은 독특하고 기발한 설정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즈음엔 우리 삶의 묵직한 진실과 마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감당하기 힘든 상처, 수치심, 혹은 비겁함과 같은 마음의 짐을 '삼켜서 없애 버리는' 자매의 이야기를 다룬다. 무언가를 없앤다는 것, 외면한다는 것은 당장 삶을 버티게 하는 유용한 기교처럼 보인다. 그러나 완벽히 소멸했다고 믿었던 존재들과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은 결국 피부 위로 부풀어 올라 '보글'이라는 가시적인 흔적을 남긴다.
소설을 읽으며 깊게 다가온 화두는 '영원히 소멸하는 것은 없다'는 점, 그리고 '삶이란 결국 대가가 반드시 따르는 등가교환'이라는 사실이었다. 자매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혹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삼켜버린 비극과 외면의 대가는 '보글'이라는 흉터가 되어 그들의 삶에 영원히 각인된다. 극중 할머니와 연이라는 존재가 보여주듯, 우리가 지워버렸다고 착각하는 과거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 곁에 남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작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로의 치부와 비밀을 나누고 대신 삼켜주기도 하는 자매의 모습은 '연대'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연대란 서로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외면하고 삼켜버린 묵직한 짐과 흉측한 흔적까지 함께 짊어지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연대의 대가이자 완성이다.
예상보다 기괴하거나 기이하기보다는, 오히려 몸과 마음의 잔여물을 다루는 시선이 서늘하면서도 담담하게 읽혔다. 우리는 과연 살면서 얼마나 많은 감정을 삼키며 살아왔을까? 그리고 내 피부 밑에는 어떤 '보글'이 숨죽이고 있을까?
우리가 지워버린 과거의 흔적을 안고서도 서로를 놓지 않으며 살아가는 법을 묻는, 잔상이 길게 남는 웰메이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