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에고이스트
정인호 지음 / 한국표준협회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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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라는 타이밍에 맞춰 인간의 이기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가 자신의 편린의 지식을 늘어놓기만 한 줏대없는 책.

평점을 위해 별을 주었지만, 별 하나도 아깝다.
아니, 타자를 치는 이 순간조차도 아깝다.

사지 마세요. 돈 낭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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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박정태 옮김 / 이학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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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는 점점 서로가 마음을 닫고 편견의 눈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21세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무엇보다 필요한 사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사조는 단순히 전쟁의 폐허로 정체성 위기를 겪었던 유럽시민들을 위한 사르트르의 처방전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마음의 처방전이다. 또 다시 인종주의, 배타주의로 닫혀가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실존주의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교훈은 무엇보다 의미있을 것이다. 단순히 코로나를 떠나서 실존주의는 너와 나를 규격짓고, 서로 앞서 판단하고, 서로의 가치관을 짓눌러야 살아 남을 수 있는 지금의 무한경쟁의 시대(이는 국가, 개인, 인종 모두를 포함한다.)에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몇 안되는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그뿐 만이랴. 나를 상품화하고 브랜딩화하는 끝없는 자본주의의 폭력속에서 용기있게 나를 그 가격표화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지침서 또한 될 수 있을 것이다. 각자도생이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만은, 실존주의가 나온 배경을 생각해보면, 양차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의 시민들이 상실했던 건 단순히 무너진 건물과 그들의 삶의 터전뿐만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상기해보게 된다., 그들이 전쟁 후 발버둥치며 찾아댄 건 다름 아닌 자신들의 불안의 극복과 마음의 안정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게 된다. 우리가 굳게 지켜야 할 것은 단순히 물질에 국한되는 자산 뿐만이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 자신으로부터 나를 실존하도록 하는 기준으로써의 '입법'을 재시작하라는 사르트르의 주문은 우리 개개인에 덧씌워진 도덕과 윤리로부터 자유롭게 해방시켜주는 한편, 동시에 그 입법에 대한 주체적 '책임'에까지 앙가제하게 만든다. 이는 고로 휴머니즘이라고 부를 만 하다. 또한 읽다 보면 '시대정신'의 의미에 대해 회의가 꽃피우게 될 것이다. 시대정신이라는 것 또한 그 시대를 이끌려는 엘리트들의 '이념 전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기에....

마음에 들었던 구절:

18p "진리를 원하는 것, 그건은 모든 것보다 존재를 더 선호하는 것이다. 비록 존재가 재앙의 형식 아래일지라도 말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게 말해서 존재가 있기 떄문이다." 이후에 사르트르는 그 자신이 제안하는 인간개념을 통해서 실존주의는 맑스주의와 대면해서 결코 여분의 철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이는  일에 매달리게 된다.

33p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이 말은 인간이 먼저 세계 속에 실존하고, 만나지며,  떠오른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정의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라는것을 의미합니다. 실존주의자가 생각하는 인간이 정의될 수 없다면, 우선은 그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로지 그다음에야 그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 본성이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본성을 구상하기 위한 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구상하는 무엇이며 또한 인간 스스로가 원하는 무엇일뿐입니다. 인간은  이처럼 실존 이후에 인간 스스로가 구상하는 무엇이기 때문에, 또 인간은  실존을 향한이 같은 도약 이후에 인간 스스로가 원하는 무엇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과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54p 내가 고려 중인 가능성을 나의 행동이 엄격하게 앙가제하지 못할 때, 이때부터 나는 그 가능성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신도, 그 어떤 섭리도 세계와 그 세계의 가능한 것들을 결코 나의 의지에 맞출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데카르트가 "세계를 이기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이겨라"라고 말했을 때 결국 그 근본을 따져보면, 그는 같은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즉 희망 없이 행동하라는 것 말입니다.

55p 당신이 타인의 후원을 기대한다는 말은 중국과 소련 등 다른 곳에서 타인들이 당신을 돕기 위하여 행하게 될 일에 기대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하지만 인간적인 호의에 기초해서, 또는 사회의 이익을 위한 인간의 관심에 기초해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기대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유로우며, 또 내가 기초할 수 있는 그 어떤 인간 본성도 없기 때문입니다. 

74p 예술과  도덕 사이에 공통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두 경우 모두에서 우리가 창조와 발명을 본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해야 할 것을 선천적으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79p 내가 인간이란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였을 때, 또 인간이란 다양한 환경 속에서 자기의 자유를 원할 수밖에 없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였을 때, 나는 이 인식과 동시에 오로지 타인들의 자유 욍는 다른 것을 원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인식한 것입니다.

80p (어떠한 한 도덕에 대한)  내용은 언제나 구체적이며, 따라서 내용에 대한 예측은 불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언제나 발명이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언제나 발명이 있을 뿐입니다.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발명이 과연 자유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83p 내가  하나님 아버지를 배제해버린 이상, 이제 가치의 발명을 위해서 다른 누군가가 있어야만 합니다. 즉 사실을 있는 그대로 취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치를 발명한다는 이 말은 삶은 그 어떤 선천적인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살기 이전에는 삶이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여러분의 몫이며, 이때 가치는 여러분이 선택하는 바로 그 의미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여러분은 그 어떤 인간 공동체를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15p (맑스주의가 선천적 확실성이라는 전제를 두고 질문을 한 피에르 나빌에 대해) 당신은 절대적으로 참인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당시는 확실성의 이름 아래 비판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모든 인간이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대상이라고 한다면,  그와 같은 확실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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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민주주의 2 한길그레이트북스 25
A. 토크빌 지음, 박지동.임효선 옮김 / 한길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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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중심에 빼놓을 수 없는 국가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모든 분야에서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어떤 국가와도 긴밀한 관계성을 갖고 있고, 군사력을 필두로 한 물리적이고 유형적인 영향과, 또 문화를 포함한 내재적이면서 무형적인 영향력 또한 여과 없이 미치고 있다. 그러한 미국은 어떠한 사상적 배경을 근간하고 있는지 알 필요를 느꼈다.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성질, 그들의 콤플렉스, 그들의 이념의 형성과정 등이 궁금했다. 그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사실한국의 미국화에 대한 나의 비판적 관점을 키우기 위함이 주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을 이해하려면 미국인의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나를 납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1950년대 이후부터 지배적이라 할 만큼 크게 미국의 영향 아래 있었다. 보다 교조적인 우리의 습성은 스펀지처럼 미국문화와 정치, 사조, 문학 등을 아무런 저항 없이 빨아들였다. 자본도 마찬가지이다. 스타벅스가 가장 손쉽게 그 자본력을 떨친 곳이 한국이 아니었던가? 이미 미군부대의 커피 맛을 봤으니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우리는 대체 얼마나 미국적일까? 그 답을 나는 미국인을 그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분석적으로 진단했다고 평가 받는 프랑스의 정치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통찰에서 얻을 수 있었다. 나는 20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통찰이 유효하다는 것에 소스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용우선주의 미국인들이 왜 그토록실용적, 합리적 과학을 숭상하게 되었는지에서부터, 그들의 생활태도, 그들의 특유의 끊이지 않는 호기심까지, 나는 그의 글에서 발견한 미국과 우리와의 유사점에도 박수를 쳤지만, 그들의 그 관념의 맹아를 19세기 프랑스 사람인 토크빌의 눈으로 보는 것에 무엇보다도 흥미를 가졌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11항과 2항이다. 법의 체계를 갖춘 헌법이론이다. 아마 이 이론은 최근 7개월간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에 가장 강하게 강타한 이론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이론의 강력함을 실용성이나 과학적 선험이 없으면 쓸모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아주 안 좋은 습관이 있음을 토크빌을 통해 발견했고, 그것이 자연스레 미국적 사고, 또 그러한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내 주변인들의 사고방식에서 내가 학습했음을 깨달았다. 토크빌은 고상한 쾌락을 창안해 내거나 화려한 물품을 만들어내기를 좋아하는 귀족 계급의 과학자들은 이론분야에 완전히 몰입하는데 비해 평등의 개념이 고도로 발전한 민주주의국가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민주주의의 과학이재빨리 재산을 모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 노동을 절약시켜 주는 기계, 생산원가를 절감시켜 주는 도구, 쾌락을 증대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 등을 골몰한다. (중략) 귀족 시대의 과학은 정신적인 기쁨을 추구하는 반면, 민주주의의 과학은 육체적인 기쁨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한편, 개척정신이 그들의 신념을 통째로 압도할 만큼 컸던 것이 그들의 실용성의 견지에도 한 몫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넓은 허허벌판에서 그들의갈아 엎어!’ 정신과 그에 따르는 야망은 빠른 기술과 그 기술의 첨단화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 미국은 또 평등을 가장 큰 가치로 여겼는데 이는 민주주의제도, 생활태도 등에서 그들만의 특정 모습으로 비춰진다. 내가 인상이 깊었던 부분은민주주의국가 시민의 위엄의 부재이다. 토크빌은 민주사회에서는 모든 지위가 불투명한 것으로 나타나 보인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민주사회의 생활태도는 일반적으로 위엄을 잃고 있으며, 잘 다듬어지거나 완성되어 있지 못하다.”고 말한다. 계급적 차이를 부정하고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위엄이라는 덕목이 강하게 두드러지지 않는 것이다. 토크빌은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동일한 성격, 사고방식의 형성을 이끌었다고 말한다. 칭찬이 아니다. 다 천편일률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생활태도는 귀족사회만큼 세련되지는 않지만 그처럼 조잡하지도 않다. (중략) 민주 국가에서의 생활태도는 저속한 경우가 많으나 야만적이든가 비열하지는 않다.”라고 평한다. 또한 토크빌은 미국인들의 윤리정신이 훌륭하며, 그 이유는 그들이 부여 받은완전한 자유가 그들로 하여금 어떤 엄격한 법의 체계(: 결혼)를 따르기에 앞서 그러한 법에 서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까지 부여 받기 때문에, 일단 그들이 그것을 따르기로 마음 먹고 서명을 하면 더더욱 그 법을 지키고 윤리적으로 자신을 제어하며 살게 된다고 말한다. 토크빌은 그러나 동시에 민주국가 국민들은 경솔하다고 말한다. 그 영원히 결정되지 않는 지위의 평등성은 곧, 반대로 말하면지위의 난잡함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계급사회인 국가에서의 국민은 그들이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복종적, 수동적이라는 슬픈 사실을 제외하고는 다른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태어난 시점부터 그들만의 역할이 있고, 인생의 목적이 죽을 때까지 정해져 있으므로 평온하다. 또 그들은 민주사회에서처럼 평등하게 듣게 되는 정보 또한 없으니, 동작 또한 정연하다. 민주사회에서의 국민은 정반대이다. 너무 평등하게 모든 것을 모두가 다 듣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어지럽다. 평등이 그들에게 주는모든 사물에 대한 자신 만의 정의라는 그 특별한 선물은 그들로 하여금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짐과 동시에, 토크빌에 따르면,“그 사물의 밑바닥까지는 못 이르게한다. 모든 것에 관심이 가다 보니, 그 어떤 것에도 깊게 다가서지 못하는 것이다. 또 모든 것을 보다 보니, 자기주변의 일 하나하나를 또렷이 관찰하지 못한다. 또한 자신이 한 일의 되돌아봄 같은 건 없다. 자신들이 한 그 많은자체에만 만족할 뿐이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깊은 내면에서의 갈등을 유발한다. 그러한 양적이기만 한 성취의 삶이 가져다 주는 물질적 쾌락과 이익에 대한 그들의 집착은 한편 한국인들의 그것과 비슷한데, 토크빌의 비유에 따르면 미국인들은,“자기의 노년을 지내기 위해 집을 지어도 그 지붕이 완성되기도 전에 그 집을 팔아버린다. 만약 개인적인 업무를 처리하고 나서 어떤 여가가 생기면 그는 즉각 정치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진다.”고 한다. 아파트를 짓기도 전에 분양부터 받아 내는, 아무리 사회적 인정을 받아도 정치로 입신양명 하지 않으면 완성된 인생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 없다. 그러나 그들의 끝도 없이 달리는 쾌락에 대한 집착과 완전한 평등실현을 위한 노력은 신기루처럼 그들을 항상 배신한다고 토크빌은 지적한다. 그럼에도 그는평등은 고상하지는 못하더라도 정의롭다고 반론한다.“현대 국가는 인간의 조건이 평등화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역설하는 그는그러나 이 평등의 원리가 인간으로 하여금 노예상태와 자유, 지혜와 야만, 번영과 고통 중에서 어느 길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말한다. 강한자유의지평등또한 제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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