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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민주주의 2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25
A. 토크빌 지음, 박지동.임효선 옮김 / 한길사 / 1997년 7월
평점 :
일시품절
세계화의
중심에 빼놓을 수 없는 국가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모든 분야에서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어떤 국가와도 긴밀한 관계성을 갖고 있고, 군사력을 필두로
한 물리적이고 유형적인 영향과, 또 문화를 포함한 내재적이면서 무형적인 영향력 또한 여과 없이 미치고
있다. 그러한 미국은 어떠한 사상적 배경을 근간하고 있는지 알 필요를 느꼈다.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성질, 그들의 콤플렉스, 그들의 이념의 형성과정 등이 궁금했다. 그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사실“한국의 미국화”에 대한 나의 비판적 관점을 키우기 위함이
주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을 이해하려면 미국인의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나를 납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1950년대 이후부터 지배적이라
할 만큼 크게 미국의 영향 아래 있었다. 보다 교조적인 우리의 습성은 스펀지처럼 미국문화와 정치, 사조, 문학 등을 아무런 저항 없이 빨아들였다. 자본도 마찬가지이다. 스타벅스가 가장 손쉽게 그 자본력을 떨친 곳이
한국이 아니었던가? 이미 미군부대의 커피 맛을 봤으니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우리는 대체 얼마나 미국적일까? 그 답을 나는 미국인을 그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분석적으로 진단했다고 평가 받는 프랑스의 정치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통찰에서 얻을 수 있었다. 나는 20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통찰이 유효하다는 것에 소스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용우선주의 미국인들이 왜 그토록‘실용적, 합리적 과학을 숭상하게 되었는지’에서부터, 그들의 생활태도, 그들의
특유의 끊이지 않는 호기심까지, 나는 그의 글에서 발견한 미국과 우리와의 유사점에도 박수를 쳤지만, 그들의 그 관념의 맹아를 19세기 프랑스 사람인 토크빌의 눈으로
보는 것에 무엇보다도 흥미를 가졌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1조1항과 2항이다. 법의 체계를 갖춘 헌법이론이다. 아마 이 이론은 최근 7개월간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에 가장 강하게 강타한 이론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이론의 강력함을 실용성이나 과학적 선험이 없으면 쓸모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아주 안 좋은 습관이 있음을 토크빌을 통해 발견했고, 그것이 자연스레 미국적 사고, 또 그러한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내 주변인들의 사고방식에서 내가 학습했음을 깨달았다. 토크빌은 고상한 쾌락을 창안해 내거나 화려한 물품을
만들어내기를 좋아하는 귀족 계급의 과학자들은 이론분야에 완전히 몰입하는데 비해 평등의 개념이 고도로 발전한 민주주의국가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민주주의의 과학이“재빨리 재산을 모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 노동을 절약시켜 주는 기계, 생산원가를 절감시켜 주는 도구, 쾌락을 증대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 등을 골몰한다. (중략) 귀족 시대의 과학은 정신적인 기쁨을 추구하는 반면, 민주주의의 과학은
육체적인 기쁨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한편, 개척정신이 그들의 신념을 통째로 압도할 만큼 컸던 것이 그들의 실용성의 견지에도 한 몫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넓은 허허벌판에서 그들의‘갈아 엎어!’ 정신과 그에 따르는 야망은 빠른 기술과 그 기술의 첨단화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 미국은 또 평등을 가장 큰 가치로 여겼는데 이는 민주주의제도,
생활태도 등에서 그들만의 특정 모습으로 비춰진다. 내가 인상이 깊었던 부분은‘민주주의국가 시민의 위엄의 부재’이다. 토크빌은 “민주사회에서는 모든 지위가 불투명한 것으로 나타나 보인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민주사회의 생활태도는 일반적으로 위엄을 잃고 있으며, 잘
다듬어지거나 완성되어 있지 못하다.”고 말한다. 계급적 차이를
부정하고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위엄이라는 덕목이 강하게 두드러지지 않는 것이다. 토크빌은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동일한 성격, 사고방식의 형성을 이끌었다고 말한다. 칭찬이
아니다. 다 천편일률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생활태도는 귀족사회만큼 세련되지는 않지만 그처럼 조잡하지도 않다. (중략) 민주 국가에서의 생활태도는 저속한 경우가 많으나 야만적이든가 비열하지는 않다.”라고
평한다. 또한 토크빌은 미국인들의 윤리정신이 훌륭하며, 그
이유는 그들이 부여 받은‘완전한 자유’가 그들로 하여금 어떤
엄격한 법의 체계(예: 결혼)를 따르기에 앞서 그러한 법에 서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까지 부여 받기 때문에,
일단 그들이 그것을 따르기로 마음 먹고 서명을 하면 더더욱 그 법을 지키고 윤리적으로 자신을 제어하며 살게 된다고 말한다. 토크빌은 그러나 동시에 민주국가 국민들은 경솔하다고 말한다. 그
영원히 결정되지 않는 지위의 평등성은 곧, 반대로 말하면‘지위의
난잡함’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계급사회인 국가에서의 국민은
그들이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복종적, 수동적이라는 슬픈 사실을 제외하고는 다른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태어난 시점부터 그들만의 역할이 있고, 인생의 목적이 죽을
때까지 정해져 있으므로 평온하다. 또 그들은 민주사회에서처럼 평등하게 듣게 되는 정보 또한 없으니, 동작 또한 정연하다. 민주사회에서의 국민은 정반대이다. 너무 평등하게 모든 것을 모두가 다 듣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어지럽다. 평등이
그들에게 주는‘모든 사물에 대한 자신 만의 정의’라는 그
특별한 선물은 그들로 하여금‘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짐’과
동시에, 토크빌에 따르면,“그 사물의 밑바닥까지는 못 이르게” 한다. 모든 것에 관심이 가다 보니, 그 어떤 것에도 깊게 다가서지 못하는 것이다. 또 모든 것을 보다
보니, 자기주변의 일 하나하나를 또렷이 관찰하지 못한다. 또한
자신이 한 일의 되돌아봄 같은 건 없다. 자신들이 한 그 많은‘일’자체에만 만족할 뿐이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깊은 내면에서의 갈등을
유발한다. 그러한 양적이기만 한 성취의 삶이 가져다 주는 물질적 쾌락과 이익에 대한 그들의 집착은 한편
한국인들의 그것과 비슷한데, 토크빌의 비유에 따르면 미국인들은,“자기의
노년을 지내기 위해 집을 지어도 그 지붕이 완성되기도 전에 그 집을 팔아버린다. 만약 개인적인 업무를
처리하고 나서 어떤 여가가 생기면 그는 즉각 정치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진다.”고 한다. 아파트를 짓기도 전에 분양부터 받아 내는, 아무리 사회적 인정을
받아도 정치로 입신양명 하지 않으면 완성된 인생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 없다. 그러나
그들의 끝도 없이 달리는 쾌락에 대한 집착과 완전한 평등실현을 위한 노력은 신기루처럼 그들을 항상 배신한다고 토크빌은 지적한다. 그럼에도 그는“평등은 고상하지는 못하더라도 정의롭다”고 반론한다.“현대 국가는 인간의 조건이 평등화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역설하는 그는“그러나 이 평등의 원리가 인간으로
하여금 노예상태와 자유, 지혜와 야만, 번영과 고통 중에서
어느 길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말한다. 강한‘자유의지’가‘평등’ 또한 제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