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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땅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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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땅」 베르나르 베르베르

_가제본 서평단 열린책들 출판사 제공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해외 작가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키메라의 땅을 가제본으로 미리 읽어보게 되었다. 작가의 많은 책을 읽어보았지만, 늘 느낀 점은 엄청난 속도감이다. 거의 두 권 정도의 장편으로 나오는 이야기지만 마치 중단편 소설을 읽듯 빠르게 읽게 된다. 그만큼 이야기의 속도가 빠르고 흐름이 부드럽다. 이번 키메라의 땅 역시 빠른 속도로 읽혔는데, 유난히 이번 책은 실제 이야기의 전개 자체도 아주 빨랐다. 초반에는 너무 빨라서 당황스러울 정도...?



알리스 카메러 박사는 진화생물학 연구자로 '신인류'를 개발한다. 꽃, 나무, 원숭이, 토끼, 물고기 등 지구의 대부분 생물은 여러 버전을 갖고 진화해 나가는데, 인간만은 오직 호모 사피엔스 한 종이라는 것에 의구심을 품고 하늘을 날 수 있는 인간,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인간, 땅을 파 숨을 수 있는 인간 등 생존에 더 유리할 수 있는 신 인류를 개발한다. 인간과 동물의 혼종 교배로 탄생한 신 인류.


인간 + 박쥐 = 에어리얼

인간 + 두더지 = 디거

인간 + 돌고래 = 노틱



물론 인간을 개종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알리스 편일까? 우주로 나가 연구를 진행하던 중 지구는 전쟁으로 인해 멸망해 버렸고 아주 극소수의 인간만 살아남았다. 알리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인류 개발에 힘 쏟아 새로운 세 종의 인간을 만들어내고 남은 사피엔스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자연 어머니'를 찾던 알리스가 결국 스스로 '어머니'가 되었다.



처음 인간은 왜 종이 하나인가?라는 물음이 신선했다.

알리스의 말에 꽤나 홀리기도 했다. 핵 전쟁이 일어난 후 살아남은 인류는 오직 깊은 지하로 도망친 자들 뿐이었으니, 알리스의 말처럼 땅을 팔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인간이 있었다면 더 많이 살아남았겠지? 싶었다. 하지만 이 신인류 키메라들은 어쩔 수 없이 동물과 혼종교배를 했기 때문에 동물의 습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기존 사피엔스와 어우러지기 어려웠다. 본능의 차이, 생각 구조의 차이가 반드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자면, 이 키메라는 과연 신'인간'라고 할 수 있는가? 인류라는 것은 결국 인간+인간으로 태어난 인간을 말하는데.....? 그리고 결국 이야기 속에서도 키메라는 세 종끼리도 섞이지 못하는데!

생물은 어쩌면, 기본적으로 동족애가 있어 자신과 같은 외형, 내형을 가진 자들과만 결속하게 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도입부에서 이 일은 지금 책을 읽는 시점으로부터 5년 뒤 일어날 일이라 말한다.

소설에서 짧게 묘사된 전쟁 역시 충분히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신인류가 태어나는 것 역시 어렵고 먼 미래는 아닐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그럼 그때의 나는 어떡하지?라는 고민을 당연하게 하게 되는데... 정답은 그때 가봐야 스스로 찾게 되겠지만, 결국 이 이야기처럼 전쟁은 계속되고 결국 끝은 파멸이지 않을까 하는 비관적 생각이 든다.


솔직하게 아주 재미있게 술술 읽힌 책은 아니었다. 내용이 어쩌면 꽤 불쾌한 지점도 있었고. 하지만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과 흡입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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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
듀나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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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의 대가 듀나의 신간이 발간되었다.

6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번 소설집은 표제작인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이라는 신간 발표작도 수록되어 있어 상당한 기대감을 안고 읽었다.

 

 

첫 번째 수록작인 [그깟 공놀이]는 우주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한 외계 종족 '튜바'와 대면하고 설득하기 위한 만남이 그려지는데, 정말 허무하고도 우습게도 '튜바'는 그저 어린아이에 불과했고 그저 자신들의 유희를 위해 행성을 파괴하고 공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 이 설정 자체도 황당하면서 재미있었지만, 튜바와 화자가 끝없이 내던지는 질문인 '인간이 육체를 버리고 시스템화된 것'과 '시스템이 인간만큼의 지능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돋보인다. 나는 이야기의 끝까지 이에 대한 정답을 내리지 못했다. 아직까지 이런 논의가 이루어질 만큼 발전되지 않아 현실감각이 무던해 답을 내리지 못하는 것인지, 그저 회피하고 싶은 질문인지 잘 모르겠다.


두 번째로 실린 [거북과 용과 새]는 판타지적 요소가 담긴 장르소설이었다. 공룡, 혹은 용이 아직까지 함께 살아있는 세상에 누가 우위를 가질 것인지에 대해, 결국 주체 대상이 누구고 어떤 삶을 살아왔든지 결국 욕심으로 벌어지는 전쟁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처럼 꼭 인간이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현재 실시간으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누군가 그 자리를 대체하더라도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는 게 참 씁쓸하다.


세 번째 이야기는 [항상성]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다. 입법부의 의원 80% 이상이 이미 AI로 대체된 세상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은 AI가 올바른, 혹은 전체적인 의견을 고루 수용할 수 있도록 인간의 정보를 수집하게 하는 것이다. '채잎새'는 청소년을 대변하는 의원으로 12인의 청소년을 선정해 그들에게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정치활동을 펼친다. 정치인이 AI로 대체된다는 것부터 상당한 충격적 포인트였는데, 그와 더불어 청소년을 대변하기 위해 20여 년 동안 청소년으로 살아가고 청소년의 정보만을 수집한 '채잎새'는 과연 청소년인가? AI가 지능을 가지고 저지른 범죄는 누구의 탓인가? AI 스스로 혼자만의 선택으로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지어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 돋보였다.


네 번째로 담긴 [아발론]은 기술이 인류를 나눈 SF 적 배경이다. SF 소설을 좋아해 자주 읽을수록 늘 하는 고민 중 하나인 "기계 속 안락한 인류, 하지만 주체성은 잃은." VS "기계를 거부하고 주체적으로 사는 인류, 하지만 기술은 퇴보하고 어렵게 살아가는"의 양자택일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이 또한 마찬가지로 나는 답을 아직도 내리지 못했다. 적당히 인간에게 더 이로운 부분만 섞어서 살 수는 없는 건가?라는 고민을 늘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기계의 발전은 인간보다 빠르기에 어느 순간 현실의 우리 기술도 갑작스러운 포인트 하나만 넘으면 저 부분을 직접 골라야 할 시기가 오지 않을까.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로 담긴 [불가사리를 위하여]와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은 시간 여행에 관한 공통적 주제를 갖는다. 특히 새로 발표된 이야기이자 표제작인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은 2025년 초에 집필한 이야기로 그 시기 가장 핫한 이슈였던 대통령 파면과 탄핵에 대한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섞여 재미있었다. 위트 있는 풍자 포인트도 많았다. 공포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결연한 눈으로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시위에 나서던 청년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 겨울, 매서운 추위에도 나와 우리와 모두를 위해 싸우던 모든 시민들을 잊지 말아야지.

 

 

이번 소설집은 SF 소설을 읽을 때 늘 드는 의문, 고민, 걱정거리를 콕콕 집어 던져주는 느낌이었다.

기술의 발전은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항상 두 걸음 이상 빠르고, 세상의 변화는 그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에 대해 늘 고민하게 만든다. 


듀나 작가의 이야기답게 겉보기엔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인 것 같지만, 깊게 빠져보면 무겁고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다. 끝엔 항상 내게 (...)과 (?)를 남긴다. 묘하게 어려운 이름과 설정, 끓어오르는 절정 없이 끝나는 이야기들. 하지만 이게 정말 큰 매력이라고 느낀다.

 

 

𓂃꙳⋆ 

갈매나무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 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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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몸으로
김초엽 외 지음, 김이삭 옮김 / 래빗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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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몸으로」 김초엽, 김청귤, 천선란, 저우원, 청징보, 왕칸위
_래빗홀 출판사 도서 제공
 
 
뇌 데이터 이식으로 실제 물리적 몸은 없지만 마치 데이터라는 새로운, 또 다른 몸이 있는 것처럼 자유를 갖게 되는 김초엽 작가의 「달고 미지근한 슬픔」

과도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세상에 따라가지 못한 몸과 뇌가 찰나의 속도로 지나가는 세상 속에서도 사람과 사랑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저우원 작가의 「내일의 환영, 어제의 휘광」

살아서 몸을 갖고, 사람으로 고통을 느끼며 죽고 싶다는 단순하고도 기본적인 욕구를 추구하는 김청귤 작가의 「네, 죽고 싶어요 」

몸을 매게로 인연을 이어가고, 삶을 지속하는 신화적 이야기를 담은 천징보 작가의 「난꽃의 역사」

감각이 사라진 인간, 고통의 기능이 보호라는 모순적인 도식화된 지구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예민하게 고통을 되찾아가는 천선란 작가의 「철의 기록」

뇌-컴퓨터를 연결해 타인과 온전한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을 그린 왕칸위 작가의 「옥 다듬기」

한국, 중국의 여성 sf작가 6인이 모여 "몸"에 대해 고찰한 이 이야기들이 너무 참신하고 재미있었다.
새롭고 재미있게 느껴졌던 포인트는 ["다시", 몸으로]라는 제목처럼 인간이 몸을 버리는 것이 '자유'로 그려지던 이야기를 넘어 결국 인간이 '진짜 자유'로우려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몸을 버리거나 바꾸는 이야기는 이미 친숙하다. 그동안 SF의 신기술은 인간이 어떻게든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몸으로 인한 제약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몸을 거추장스러워하는 관점은 이젠 어쩌면 '디지털 시대'라는 말만큼 낡고 있지 않을까. <다시, 몸으로>는 몸의 무게와 함께, 우리가 몸을 가진 존재이기에 대면하는 자유를 이야기한다.❞(심완선 평론가 추천글 중)

더 예민하게 고통을 느끼고, 내 감정을 표현해 언어로 공유하려 애쓰고, 무언가에 골몰히 몰두하는 아주 기본적인 욕구를 해소하려 하는 것이 결국 인간의 삶의 의미라면 우리는 결코 데이터 인간이 되어 행복할 순 없으리라.

인간에겐 결국 무언가를 감각하고, 사유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는 결국 움직여 줄 몸이 필요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천선란 작가의 「철의 기록」 103이 104에게 전하는 말을 담았는데 정말 피 토하듯 쏟아져 나오는 문장들에 나도 모르게 휩쓸려 감정의 상기를 느끼게 했다. 정말 엄청난 몰입과 엄청난 문장력을 보여준 이야기.. 다른 모든 단편들도 너무 흥미롭고 푹 빠져 읽었다. 애틋했다가 섬뜩했다가.

김초엽 작가의 「달고 미지근한 슬픔」도 인상 깊다. 몸을 잃어버려 공허에 빠진 인간들이 허전함을 채우려 도박, 통증에 빠진다는 것이 소름 돋았고 언젠가 인간이 데이터화 될 수 있다는 것이 차츰 다가오는 가운데, 몸을 잃어 공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던 큰 문제로 다가왔다. 뭐랄까... 유토피아의 허를 찔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6명 작가의 각기 다른 매력적인 글을 하나의 주제로 모으다니. 심지어 이렇게 재밌다니..
엄청난 책이다 진짜. 진짜로.



📖 24p
오랫동안 사람과의 소통을 차단하고 살아왔지만, 그건 단지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까? 단하는 인정하기 조금 부끄러웠던 마음을 받아들였다.

📖 38p
이 세계의 모든것이 거짓인데도,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자신이 살아 있다고 느껴요. 몸이 없는데도 마치 몸을 느끼는 것처럼 보여요. 공허감에 지배당하지 않죠.

📖 57p
군집과 초개체. 불확정성과 중첩. 얽힘과 동시성.
측정되기 전까지는 무수한 가능성이 중첩되어 있고, 확정되는 순간 다른 얽힌 것과 동시에 확정되며, 작은 개체가 모여 하나의 초개체를 이루는 것. 혹은 그런 존재.

📖 66p
어쩌면 영원히 모르는 것들의 경계가 있고, 그 경계를 알아내는 것조차도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에서 오는 슬픔.

📖 89p
언어는 취약했지만, 동시에 강인했다. 나는 늘 언어가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언어는 세상을 여행하면서 동료들과 구성 요소를 교환했고, 가끔은 자기 자신의 경계마저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내면만큼은 안정적이면서도 묵직해 쉽게 바뀌지 않았다.

📖 114p
이곳의 바닷물은 푸르렀다. 파도가 뒤쫓듯 해안으로 달려오더니 새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부서졌다. 절대 멈추지 않는 무희가 빙글빙글 춤을 추는 듯했다. 여러 겹의 치마가 박자를 맞추면서 함께 흔들렸고,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걱정과 고민도 함께 흩어지면서 날아갔다.

📖 143p
몸이 없으니 결국 이곳에도 속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나를 닻처럼 잡아주는 것 같았다. 아이이기 때문인 걸까.

📖 212p
깬 적 없다는 듯 눈을 감고 숨을 느리게 쉬었다. 하지만 잠들지 않는다. 왜 깼는가에 대한 의문만이 쌓이고, 의문은 영영 잠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변해가는데 멈추는 방법을 모른다.
무서운 새벽이다.

📖 239p
죽음의 반대말은 삶이 아니야. 죽음과 삶은 언제나 나란히 걷지. 가끔 뒤섞이면서. 서로의 의미가 되어주면서. 고통과 쾌락도 마찬가지야. 둘은 나란히 걷고, 뒤섞이고, 서로의 의미가 되지. 희열과 쾌락은 고통을 품고 있고, 고통 역시 그것들을 품기도 하고 불러오기도 해. 인간의 몸은 고통을 원해. 죽음을 원하기도 하고. 그건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본인의 의지로 자신을 파괴하고 싶어 해. 죽음의 순간과 형태. 그때 느낄 고통의 크기까지.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원하는 삶과 쾌락.

📖 247p
누추하고 아름답지 않은 공장은 힘없는 타국으로 쫓겨났겠지. 물건을 생산하고, 팔고, 소통하던 노동의 현장은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그렇게 내몰렸고, 도시에 남은 건물은 인간의 투명한 감옥이 되었어. 형광등 불빛 아래, 창밖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일 뿐이고. 만질 수도, 누릴 수도 없는. 그렇게 점차 자본이 특정 소수만 건물을 소유하도록 변화하면서 인간의 대부분이 자신만의 공간을 갖지 못하게 됐어. 다르게 말하자면 누구도 몸을 소유하지 못한 거야.

📖 257p
백사, 우리가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알려줄까? 우리가 지구의 한 부분이라는 거. 이토록 파괴적이고, 끔찍하고, 이기적이고, 모든 걸 망쳤어도 우리는 거대한 순환 속에 당연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일부야. 우리가 곧 지구야. 분리될 수 없는. 우리의 몸은 이곳에 있는 한 이 세계와 계속 교감할 수밖에 없어. 아무리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아. 우리는 계속 깨어날 거야. 몸을 벗어나서는 살아갈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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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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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포 투 TABLE for TWO」 에이모 토울스
_도서 제공 현대문학 출판사

589페이지의 묵직한 벽돌 도서, 영미문학.
어려운 책이라는 수식어를 달 조건을 갖춘 책이었으나,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책은 크게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로 배경지를 나누어 뉴욕에는 6개의 단편을, 로스앤젤레스에는 중장편 한 편을 담았다.

뉴욕 단편 시리즈가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줄서기>에서는 소련의 공산주의 속 뭐든 척척해내는 아내 이리나와 그다지 잘 하는 일은 없지만 사람들과의 도움과 나눔 속에서 살아가는 푸시킨을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그 시대상을 대변하는 것도 같고 푸시킨의 '당연스러운' 행동들이 당황스럽기도, 대단하다 싶기도 했다.

<티모시 투쳇의 발라드>에서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예비 지망생의 설움을 꽤 소름 돋는 방향으로 풀어내 재미있었다. 작중 예술가가 되기 위해 그 분야의 업계에서 생계유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전략적인 삼투압"으로 표현하는데, 공연예술계에서 일하고 있는 나 역시 직접 해보았고, 많이 본 상황이라 표현이 참 흥미로웠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도 가장 탄탄하다고 느꼈는데 초반부 티모시에 대한 설명과 이어지는 글의 마지막 한 문장이 소름이 돋았다. 티모시의 행동은 명백한 범죄이나, 그가 사인을 위조할 때 반드시 시행하는 섬세한 조사가 참 예술가스럽기도 하고......

<아스타 루에고>의 '감정 전염'이라는 말이 참 재미있다. 특히나 평소와 다른 여행지(혹은 출장지여도)에서 생긴 황당한 일, 황당한 만남, 황당한 사건사고에 보통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과 다르게 하게 되는 일. 그게 또 재미있는 하나의 일화가 되기도 하고, 추억이 되기도 하지 않나~ 허탈하고 황당한 이야기였지만 꽤 웃겼다.

<나는 살아남으리라>는 조금 슬펐다. 페기가 왜 존이 스케이트를 타는 것을 알고 존과 멀어졌을까, 나는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없어야만 가능한 기쁨"이 있다는 것. 사랑하는 이에게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참,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얼마나 슬플지...

<밀조업자>는 다소 어려웠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잘 이해하진 못했다. 영미문학을 읽을 때 다소 딱딱하게 이야기하는 느낌이 유난히 이 이야기에서 많이 느껴져서 그랬을까? 노인의 사정을 알고 난 후 사과라는 명목으로 끝까지 무례하게 구는 토미가 너무 짜증이 났다는.... 물론 노인의 행동도 그저 너그러이 이해할 수는 없다. 근데 뭔가 이야기가 노인의 행동은 정당하다는 듯이 흘러가서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디도메니코 조각>도 심오했다. 복원 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며, 결국 이렇게 되었다~는 느낌?

전반적으로 뉴욕 단편에서는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꽤 허무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극적인 사건이 우후죽순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잔잔하게 흘러 결말에 이르는 이야기들. 그렇지만 또 슴슴한 맛은 아니고, 정말 특이하고 재미있었다. 영미문학 특유의 장단점도 깊게 느낄 수 있었고 단편의 모음이 짧진 않았지만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2부 로스앤젤레스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제작기를 담았다.
2부를 읽으며 왜 이 책의 제목이 "TABLE for TWO"인지 느낄 수 있었다. 우연히 테이블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펼쳐지는 새로운 미래. 처음 만나는 사람과 서슴없이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며 점점 더 속 깊은 이야기도 터놓게 되는 현상으로 생겨나는 이벤트들.
인간의 성장기 같기도, 범죄 스릴러 같기도, 허무주의 희곡 같기도 한 신기한 이야기였다.

이블린이 기차에서 불현듯 목적지를 바꾸면서 시작되는 이 거대한 이야기를 따라가며 살면서 잠깐은 내키는 대로 방향도 바꿔보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서 대화도 해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초반에는 인물도 훅훅 바뀌고, 시점도 훅훅 바뀌어서 어려웠는데 어느새 자연스럽게 나도 이야기가 오가는 테이블에 앉아있는 느낌이 든다. 그들이 툭툭 내려놓는 이야기에 공감하고 반응하는 독자가 된다.
상당히 매력 있는 중단편이었다.

벽돌 책이지만 단편 모음집이라 부담 없이 읽기에도 좋았고, 무엇보다 영미문학의 재미를 느꼈다. 어렵고 딱딱하다고만 느껴지던 번역체 속에서 느껴지는 색다른 재미!
출간한 후 꽤 인기 있는 도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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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세계를 감각하는 법 -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은 생각하는 방식도 다를까?
케일럽 에버렛 지음, 노승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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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세계를 감각하는 법」 케일럽 에버렛
_서평단 도서 제공 위즈덤하우스 출판사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외국어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특히 일본 여행을 자주 가게 되어 요즘 일본어에 살포시 발을 들여보고 있는데(아주 살포시) 비슷하면서도 다른 언어표현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외국어 단어를 공부하다 보면 같은 물체를 표현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다른 의미와 어언을 갖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럼, 그 물체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이나 부수적 생각들도 자연스레 언어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던 찰나, 위즈덤하우스에서 신간으로 나온 이 책의 제목이 보였다.


책은 반짝이는 표지에 비해 상당히 학술적이었다. 처음엔 '헉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은데...?'싶어 두려웠지만, 학술적 내용을 다양한 사례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이라 걱정보다 재미있게 술술 읽히는 편이었다! 애초에 주제가 상당히 흥미롭기도 했고!

단순히 단어의 어원이 다르니까~ 정도로 생각하던 궁금증이었는데 언어의 차이란 생각보다 높고 방대했다.

✔️ 시간을 표현하는 방법, 우리가 당연하게 과거-현재-미래 순으로 나열하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는 언어
✔️ 방향을 표현하는 방법, '나'를 기준으로 좌/우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방위, 기준 물체에 따라 공간과 방향을 나누는 언어
✔️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색의 이름들

❝오히려 시간을 지칭하고 개념화하는 방법 중에서 우리에게 자연스러워 보이는 많은 것들이 실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지도 모른다.❞(65p)

계절, 생존의 방향성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 체계와 소리에 따라 만들어지는 언어의 체계가 모두 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스럽지만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이라 상당히 흥미로웠다. 내게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에 대한 의문이 든다.
  
 
작가의 말처럼 ❝언어는 인류의 가장 유별난 특징❞(328p)이기에 언어가 민족의 정체성이 되기도 하고, 인간을 표현하는 가장 큰 단위가 되기도 한다.

이 소중하고 다양한 언어들이 최근 언어'표준화' 트렌드에 맞춰 점차 '화석화'되어가고 있다는 옮긴이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특징을 잘 보여주는 문화이자 상징성인 고대 언어와 각종 언어체계들이 소멸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고리가 되는 방향으로 발전이 이뤄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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