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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
듀나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5년 7월
평점 :

SF 소설의 대가 듀나의 신간이 발간되었다.
6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번 소설집은 표제작인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이라는 신간 발표작도 수록되어 있어 상당한 기대감을 안고 읽었다.
첫 번째 수록작인 [그깟 공놀이]는 우주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한 외계 종족 '튜바'와 대면하고 설득하기 위한 만남이 그려지는데, 정말 허무하고도 우습게도 '튜바'는 그저 어린아이에 불과했고 그저 자신들의 유희를 위해 행성을 파괴하고 공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 이 설정 자체도 황당하면서 재미있었지만, 튜바와 화자가 끝없이 내던지는 질문인 '인간이 육체를 버리고 시스템화된 것'과 '시스템이 인간만큼의 지능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돋보인다. 나는 이야기의 끝까지 이에 대한 정답을 내리지 못했다. 아직까지 이런 논의가 이루어질 만큼 발전되지 않아 현실감각이 무던해 답을 내리지 못하는 것인지, 그저 회피하고 싶은 질문인지 잘 모르겠다.
두 번째로 실린 [거북과 용과 새]는 판타지적 요소가 담긴 장르소설이었다. 공룡, 혹은 용이 아직까지 함께 살아있는 세상에 누가 우위를 가질 것인지에 대해, 결국 주체 대상이 누구고 어떤 삶을 살아왔든지 결국 욕심으로 벌어지는 전쟁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처럼 꼭 인간이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현재 실시간으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누군가 그 자리를 대체하더라도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는 게 참 씁쓸하다.
세 번째 이야기는 [항상성]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다. 입법부의 의원 80% 이상이 이미 AI로 대체된 세상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은 AI가 올바른, 혹은 전체적인 의견을 고루 수용할 수 있도록 인간의 정보를 수집하게 하는 것이다. '채잎새'는 청소년을 대변하는 의원으로 12인의 청소년을 선정해 그들에게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정치활동을 펼친다. 정치인이 AI로 대체된다는 것부터 상당한 충격적 포인트였는데, 그와 더불어 청소년을 대변하기 위해 20여 년 동안 청소년으로 살아가고 청소년의 정보만을 수집한 '채잎새'는 과연 청소년인가? AI가 지능을 가지고 저지른 범죄는 누구의 탓인가? AI 스스로 혼자만의 선택으로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지어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 돋보였다.
네 번째로 담긴 [아발론]은 기술이 인류를 나눈 SF 적 배경이다. SF 소설을 좋아해 자주 읽을수록 늘 하는 고민 중 하나인 "기계 속 안락한 인류, 하지만 주체성은 잃은." VS "기계를 거부하고 주체적으로 사는 인류, 하지만 기술은 퇴보하고 어렵게 살아가는"의 양자택일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이 또한 마찬가지로 나는 답을 아직도 내리지 못했다. 적당히 인간에게 더 이로운 부분만 섞어서 살 수는 없는 건가?라는 고민을 늘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기계의 발전은 인간보다 빠르기에 어느 순간 현실의 우리 기술도 갑작스러운 포인트 하나만 넘으면 저 부분을 직접 골라야 할 시기가 오지 않을까.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로 담긴 [불가사리를 위하여]와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은 시간 여행에 관한 공통적 주제를 갖는다. 특히 새로 발표된 이야기이자 표제작인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은 2025년 초에 집필한 이야기로 그 시기 가장 핫한 이슈였던 대통령 파면과 탄핵에 대한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섞여 재미있었다. 위트 있는 풍자 포인트도 많았다. 공포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결연한 눈으로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시위에 나서던 청년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 겨울, 매서운 추위에도 나와 우리와 모두를 위해 싸우던 모든 시민들을 잊지 말아야지.
이번 소설집은 SF 소설을 읽을 때 늘 드는 의문, 고민, 걱정거리를 콕콕 집어 던져주는 느낌이었다.
기술의 발전은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항상 두 걸음 이상 빠르고, 세상의 변화는 그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에 대해 늘 고민하게 만든다.
듀나 작가의 이야기답게 겉보기엔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인 것 같지만, 깊게 빠져보면 무겁고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다. 끝엔 항상 내게 (...)과 (?)를 남긴다. 묘하게 어려운 이름과 설정, 끓어오르는 절정 없이 끝나는 이야기들. 하지만 이게 정말 큰 매력이라고 느낀다.
𓂃꙳⋆
갈매나무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 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