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 - 비밀스러운 종교의 역사
에두아르 쉬레 지음, 진형준 옮김 / 사문난적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신비주의. 신비주의란 말은 내게 그 이름이 풍기는 비밀스런 느낌 만큼 베일에 쌓인 개념이었다. 막연히 불가해한 믿음에 관한 것이리라, 혹은 그 엇비슷한 종류의 것이리라 생각해 버리곤 했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은 이런 데서 오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베일에 쌓인 존재에 대한 단순한 지적 욕구라 해도 좋을 만한 호기심만으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맨 처음으로 이 책이 나에게 깨우쳐준 것은 신비주의, 그 자체였다. 신비주의는 인간에게 영혼이 존재함을 믿고 그 영혼을 고양시키는 내적인 믿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많은 종교들이 나뉘고, 그들 사이에서도 이단을 갈라내는 현재에, 신비주의는 그 사이 어딘가에 끼어있는 또 다른 종교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추측은 책을 펼쳐든 첫 장에서부터 무참히 깨어져 버렸다. 신비주의는 종교 혹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들을 초월한다. 인간 영혼의 존재를 믿는 다면 이미 당신은 신비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영혼에 대한 믿음. 이렇게 머릿속에 마침표를 찍어두고 보니, 또다른 물음이 솟았다.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신비주의는 그럼 태초에 이미 근원을 둔 것 일터, 그 오랜 시간동안 어떻게 뿌리를 내려왔고 무엇이 변한 것일까. 근원적인 신비주의를 왜 나는 여지껏 모르고 있을 수 있었을까. 그 자리를 종교가 대신한 탓일까. 끝없이 맞물려 나오는 물음들에 답을 찾기 위해 페이지를 넘기며, 선각자들이라 소개되는 어딘지 친숙한 그 흐름을 따라 갔다.

 이야기는 인류에게 ‘종교라는 불씨’가 생기는 연원이 되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차분한 설명에, 미처 상상해보지 못한 부분에 고개를 끄덕이며 페이지를 넘겨갔다. 그리고 그곳엔 영혼의 존재를 믿고, 그 영혼의 고양을 지향하는 어딘지 남다른 선각자들의 흐름이 면면이 이어져 내려왔다. 라마, 크리슈나, 헤르메스, 모세... 시대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그들 각자의 믿음은 여러 지지를 안고 그 깊이를 더해가기도 하고, 조금은 다른 그러나 결국엔 비슷한 연원으로 새로운 시작이 펼쳐지기도 한다. 영혼을 믿는데서 이미 그것은 신비주의가 되는 것이지만 그 믿음 각각이 지니고 있는 신화와 신비감이 느껴지는 고유의 통과제의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흥미롭다. 그리고 이 책을 접하기 전과는 다른 이해의 깊이를 가지게 되었다.

 신비주의는 이 말이 주는 모호함과는 다르게 간단하고, 인류에게 아주 가까운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좀더 주의깊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 이미 자신이 서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은 신비주의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읽는 것도 좋지만 모든 종교를 뛰어넘는 믿음에 대한 호기심과는 다른 흥미를 가지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시간을 두고 이 책을 다시한번 음미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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