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씨의 맛
조경수 외 지음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사과씨는 어떤 맛일까? 어떤 맛이었더라... 어렸을 적에 나도 모르게 사과씨를 깨물어버린 기억이 떠오른다. 씁슬하고 얼럴하다는 것만 기억에 남았다. 이 소설에서 사과씨의 맛을 느끼게 될까? 당장이라도 진한 사과향을 풍길듯한 표지그림을 넘기면서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책을 읽기전에 소개하는 글부터 살펴 봤었다. 3대에 걸친 한 집안 여성들의 마법과도 같은 사랑, 죽음,망각의 이야기. 제임스 조이스식 기억의 탐구와 마르케스식 마술적 리얼리즘이 절묘하게 결합된 사과향 그윽한 아름답고 매혹적인 연애담! 이라고 적혀있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이런식의 소개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다시 내가 읽어온 자취를 더듬으면서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한번 바라보고 있다.

 

 이 소설은 3대에 걸친 한 집안 여성들의 사랑이야기이다. 3대가 각각 얼키고 설킨 사랑 이야기. 하지만 마법과도 같은 사랑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일이 절묘하게 조합되어 보이지만 결국엔 우연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중간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러나 책의 배열에도 이 집 안에서 일어난 일에도, 체계는 전혀 없었다. 사건들은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고 때때로 서로 맞아 떨어졌을 뿐이다.' 이 말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걸까.

 

 그리고 이 소설은 망각과 죽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랑은 모든 이야기의 배경처럼 깔려있지만 그 사이사이를 이어주고 또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망각과 죽음에 대해 소설속 화자인 이리스가 깨달아 가는 이야기이다. 사과나무에서 떨어진 후로 기억을 잃어갔던 이리스의 외할머니가 그 중심이 되어 책 속의 모든 인물들이 사실상 기억과 망각에 맞물려 살아가고 있다. 이런말이 나온다. '그리고 나는 망각이 기억의 한 형태일 뿐 아니라 기억도 망각의 한 형태임을 깨달았다.' 살아가면서,사랑하면서 기억하는 모든 것을 끌어안는 것은 결국 불가능하고 기억을 잃어가는 망각도 결국에는 기억의 일부분이라는 것. 그것을 알기까지 외할머니,어머니,이모들을 되돌아 보았던 시간들. 내가 이리스가 되어서 느낀 모든 것들에 마음이 저릿해졌다. 본문 바로 앞 페이지 한 가운데 인용되어 있던 한 문장이 다시 떠오른다.

-기억이 지나치게 정확하다면 그건 우리에게 아무 쓸모도 없으리-폴 발레리.

 

 이 소설은 나에게 사랑에 관한 것보다 망각에 대한 것을 더 많이 느끼게 해 주었다. 3대에 걸친 이야기가 애틋하게 마음에 남았다. 하지만 마냥 애틋한 것은 아닌것이 망각도 기억의 일부이고, 기억이라는 것도 사랑하고 느끼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는 생각이 든 탓인가 보다. 

 

 

<남기고 싶은 한마디>

나는 망각이 기억의 한 형태일 뿐 아니라 기억도 망각의 한 형태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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