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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공부, 사람공부 - 옛 그림에서 인생의 오랜 해답을 얻다
조정육 지음 / 앨리스 / 2009년 8월
평점 :
현대에 물밑듯 쏟아지는 예술작품들에 정신차리지 못하는 날들이다. 창조적이지 못하면, 대중들의 관심을 단숨에 사로잡지 못하면, 잊혀져가는 어제의 그늘로 밀려나기 마련인 21세기. 고전의 풍요로움과 안정감이 주는 평안함에 빠져보겠다 관심을 돌려보면 그 자리엔 항상 유명한 서양화가들의 작품들과 그에 대한 해설로 이미 자리가 꽉차버린 느낌이다. 책장을 채운 몇안되는 그림책역시 이름한번 들어봤음직한 서구의 작가들이 책장을 여는 곳곳에서 반갑게 아는 척을 한다. 문득 그리워진 묵직함.. 화려한 도시생활에서 마음을 자극하는 고향에 대한 향수랄까. 어쩌면 이렇게 정신없는 세상 속에서 필요한 것은 자연의 수더분함과 고요한 향기가 아닐까. 그나마 학생시절 미술교과서에서 소개되었던 동양화 몇점들마저 희미한 무채색처럼 소리없이 사라져 있는 시점에서, 시기적절하게 만난 이 책은 나의갈증을 안다는 것처럼 읽는 내내 서서히 나의 이유모를 삶에 대한 갈증을 고요한 울림으로 평안하게 채워주었다.
1,2,3장으로 구성된 책은 각장마다 새로운 전달 방식으로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1장에서는 구도를 제시해 동양화보는 법을 알려주어, 알지 못했던 지식들을 습득하는 동시에 인생지혜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림을 통해 선배들이 전해주는 인생살이 속의 조언들, 2장에서는 그 귀한 조언을 한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3장에서는 한,중,일의 굴곡많은 삶을 살았던 화가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우도록 해준다.
내가 접해보지 못했던 그림들은 나에게 새로운 그림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때로는 거칠기도, 부드럽기도, 섬세하기도 한 붓놀림은 마음을 차분하게 이끌어주며 그림도 철학이라는것을 전달하고 있었다. 무심한듯 스쳐가는 몇번의 붓놀림에 완성되는 형체들에서는 경탄이, 세심하게 산중턱 암자의 인물까지 표현해내는 정교함에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두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곳곳의 숨은 찾기. 그저 눈길한번 스쳐감에 발견하지 못했을 곳곳의 배치들은 저자의 친절한 설명덕에 그림을 샅샅이 훑어보는 기술까지 나에게 더해주었다
그림역사의 딱딱한 서술이 아닌, 동양화들을 한점한점 소재삼아 그 그림이 주는 느낌과 가르침을 우리 생활에 적용해 서서히 물들이는 에세이들,
살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보지 못했던 작품들을 책 안에서 보며 느껴가는 감동들은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이었다.
칠십이 되도록 벼슬하나 하지 못하고 자신을 알아줄 사람을, 때를 기다렸던 강태공, 비록 마누라가 도망치고, 미늘 없는 낚시 바늘을 드리운 채 하릴없이 세월을 낚았던 초라한 모습으로 그림에 등장하지만 결국 문왕을 도와 주나라를 여는 공신이자 높은 자리의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칠십년을 버틴 그를 보며 불완전하고 나약해 보이는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겨난다.
사찰의 중심이 되는 대웅전을 구성하는 가장 잘생기고 좋은 목재들, 그러나 훌륭한 목재들로 채워져야 할 청룡사 대웅전의 중심에 심하게 휘어진 기둥. 그 기둥을 보며 나도 어딘가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 신에게서 소중한 생명을 부여받은 가치있는 존재라는 가르침을 얻어간다.
김명국의 '설경산수도',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비조산모설'에서는 고단한 밥벌이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고단함. 배경이 아닌 점과 같이 그려낸 인물들로 촛점을 돌리면서 사람을 보게 된다. 어느 시대나 세상을 고단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나가는 사람들. 그 세상 속에는 한국도, 일본도, 서로에 대한 미움도, 억울함도 사라지고 만다.
그림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새로운 삶의 철학방식 하나를 선물받은 시간이었다.
삶을 통해 깨달은 인생을 그림속에 펼쳐낸 옛선조들의 지혜. 그 지혜를 삶에 투영된 에세이로 나직이 말해주는 저자로 인해 많은 것을 느끼며 읽어나갔고,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가슴 가득 파고 들어온 너무 좋은 글들로 인해 따뜻해진 마음을 계속 부여안고 가고 싶다는 바램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