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지음, 최인자 옮김, 제인 오스틴 / 해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누구나 청소년기를 설레게 해준 소설하나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기쁨을 주었던 소설, 슬픔을 주었던 소설, 설레임을 주었던 소설등 여러가지면에서 세심한 소녀의 맘을 흔들어놓은 다양한 문학작품속에서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냈던 기억. 그 중 설레임면에서 단연 최고라 꼽을 수 있는 소설은 '오만과 편견'이었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무뚝뚝하면서 서서히 진행되어가는 사랑에 같이 숨죽이고 부러움에 한숨지었던 추억을 만들어준 고전이다.

 

 그 소설에 좀비가 나타났다. 고전에 좀비라는 특이장치를 집어넣어 원작의 팬이라면 관심을 갖지 않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놓은 작가.

거기에 올해 최고의 책이라는등의 찬사로 도배되어 있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진다니 얼마나 괜찮은 작품이 나왔나 싶어 책을 열어보았다.

 

괴상한 역병이 돌아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것들'인 좀비무리가 사람들을 공격하고 잡아먹는 일들이 영국 곳곳에서 일어난다.

이에 사람들은 일본이나 중국에서 무술훈련을 받아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도 하고 마을과 국가를 지키는 일에 쓰임받기도 한다.

 

재산과 외적인 매력이 뒷받침되는 것에 더해 훌륭한 무술솜씨로 좀비를 많이 쓰러뜨린 자의 매력이 돋보이는 시대.

베넷씨 집안의 다섯딸들도 중국에서 무술훈련을 받은 훌륭한 전사들이며 삶에서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원작을 그대로 갔다 놓았나 할 정도로 새로 추가된 양념들외에는 모든것이 비슷하게 전개되어 간다.

빙리씨와 제인의 사랑, 친척 콜린스와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럿의 결혼, 다아시의 엘리자베스를 향한 나날이 더해가는 사랑과 위컴일을 해결해준사건등. 전작의 틀을 그대로 유지해 간다.

단 차이가 있다면 전작에서 등장했던 인물들의 위선과 이중성이 더 빛나게 부각되었다는 점이랄까.

 

특히 가장 기본적이며 소중하게 그려져야 할 가정내에서 그 부분을 확연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내에 대한 실망으로 남편으로서의 본분은 어디론가 내팽개치고 중국에 머무는 동안 동양미인들을 끌어들이는 베넷씨. 다섯자매중 제인과 엘리자베스는 지각있는 여성으로 교육시켰으나 나머지 딸들의 무분별과 경박함은 어찌하지 못하고 방치한채 서재에 박혀 그만의 세상에 몰두하며 살아간다. 그런 남편으로 인해 오직 딸들의 결혼만이 인생의 최대목표라고 생각하며 사는 베넷부인. 주변사람들의 불편함과 경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천박함의 대표주자격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런 불완전한 가정에서 태어난 고통을 언니 제인에 대한 사랑, 무술에 대한 끊임없는 연마등으로 극복하며 살아가는 엘리자베스. 그러나 나름 분별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한 그녀마저도 색안경에 사로잡혀 사람들을 대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어느정도 절제된 언어로 여자들의 결혼관과 상류층의 가식을 꼬집었던 전작과는 달리 이 소설에서는 인간본연의 추악함을 더 적나라하게 표현해내고 있으며 본질을 보지 못하는 오만함과 편견이 살아가는데 있어 얼마나 큰 어긋남과 후회를 남기는지를 상세히 서술해낸다.

 

또한 일본무술이 최고라 생각하며 중국무술을 폄하하는 캐서린 영부인은 엘리자베스가 최고의 일본닌자 경호원들을 여럿 해치워냈음에도 끝까지 중국무술을 비하하는 일관된 태도를 취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내것만 옳다는 식의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원작에 무협소설을 끼워넣은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고전의 묘미를 제대로 살려내지도, 무협소설의 재미를 부각시키지도 못한 어정쩡한 스토리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어설프게 등장하는 동양무술에 대한 동경. 소설 곳곳에서 원작을 살려야된다는 부담감이라도 있었는지 맥없이 끊어져버리는 좀비라는 특이장치.

 

철없는 소리를 계속 늘어놓는 리디아의 목을 치는 상상을 하는 엘리자베스, 자신의 언니와 빙리씨의결혼을 막았다는 사실을 알고 언니에 대한 모욕을 값고자 다아시의 피를 보고자 했던 그녀가 정작 리디아와 위컴이 도망갔을 때는 그들이 무사히 결혼하기를 바라는 모습은 그녀의 이중적인 가치관이 드러난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표지를 보고 괜한 반전을 상상해보았으나 결국 괜한 기대를 품은 셈이었다.

 

기대가 많았기에 느꼈던 실망또한 크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전작에 비해 오만과 편견이란 주제를 소설속에서 더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은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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