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영화한편을 봤다. 그것도 책으로. 마약과 살인을 소재로 한 형사소설이라기에 사실 많은 기대를 가지진 않았으나 제목이 은근 끌렸다. 패션잡지에나 등장할 만한 표현이 형사소설의 제목이라니, 그것도 하나 가공하지 않은채 그대로 표지에 박혀있다. 여자를 좋아하지만 연애에는 관심없는 외적으로 괜찮은 남자 정태석. 그를 열받게 하고 달아난 마약판매원 변성수를 잡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빠르게 전개시켜나간다. 트릭도 없고, 가슴설렐 연애도 없는 소설이지만 이 책은 참 솔직담백하다는 느낌이다. 한국토종 형사소설 느낌이랄까. 분위기있는 와인바도 아니고 화려한 야경을 볼 수 있는 고급 호텔 레스토랑도 아닌, 삼겹살에 소주한잔 기울일 수 있는 동네 술집같은 정이 흐르는 소설. 책을 집어들고 책장을 넘기면서부터 쉬지 않고 단숨에 읽게 한 책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 이 책도 그 범주에 들어가게 되었다. 독자를 소설속으로 빨아들이는 능력은 도대체 무얼까. 맛깔스런 문장이 없어도, 화려한 단어들의 나열이 아니더라도, 뭔가 교훈을 주는 사건이 없다 하더라도 충분히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파악한 듯 하다. 무협소설을 전문으로 썼고 '백야행'을 각색했다고 하니 독자에게 재미를 주는 법을 일찍부터 터득한것은 아닐까. 작가 한상운은 모범생 같은 생활을 하다가 삼성 입사 원서를 받기 위해 한시간 넘게 뙤약볕 아래서 줄을 서 있다가 이제부터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뙤약볕아래 줄을 서 있지 않았더라면 그의 작품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까. 그의 문학적 끼를 폭발시켜준 그 날에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오늘 네시간을 재미있게 해준 그의 소설을 봐서라도. 그러나 책을 덮고나면 남는게 재미뿐이라는 허무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책을 읽고나서 오는 가슴가득한 여운도, 다시 뒤집어 읽고 싶은 구절도, 왠지모를 설렘도 찾을 수 없는게 이 책의 다른 면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혹시 영화로 나온다면 꼭 보고 싶은 작품이다.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상상이 되었던 인물들, 배경들이 화면속에서는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증이 밀려오는건 어쩔 수 없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