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투이의 유치한 말과 행동이 속깊은 애들이 쓰는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애들보다도 훨씬 더 전에 어른이 되어 가장 무지하고 순진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연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각자의 무게를 잠시 잊고 웃을 수 있도록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을 자처하는 것이다. 진지하고 냉소적인 아이들을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투이의 깊은 속을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이십대 초반에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대체해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쥡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
「딸이 태어난 후로는 그늘진 마음에도 빛이 들었다. 마음속 가장 차가운 구석도 딸애가 발을 디디면 따뜻하게 풀어졌다. 여자가 애써 세워둔 축대며 울타리들, 딸애의 손이 닿기만 했는데도 허물어지고, 그애의 웃음소리가 비가 되어 말라붙은 시내에 물이 흘렀다. 있는 마음 없는 마음을 다 주면서도 그 마음이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까봐 불안하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그저 그 마음 안에서, 따뜻했다.」
-마지막 소설 ‘비밀‘을 읽어 내려가면서 오래 가슴을 절이게 할 아픈 이야기가 전개될까봐 걱정하며 읽었다.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그 문장을 나도 모르게 엄지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서 울음을 참고 있는 내모습. 예상은 했지만 슥 스며들어오는 마지막 반전에 가슴이 먹먹하고 아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