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
톰 행크스 지음, 부희령 옮김 / 책세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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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물 노동자가 쓴 소설과 유명 배우가 쓴 소설이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저자의 직업이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실 때문에 그들의 글이 폄하될 수도 있고 반대로 부풀려 평가받을 수도 있다. 작가도 아니면서 어느 정도로 썼나 한번 보자며 삐딱한 눈으로 책을 읽는 독자도 있겠고, 글쓰기가 본업도 아닌데 이토록 훌륭하게 글을 쓸 수 있냐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독자도 있을 거 같다.

배우 톰 행크스(Tom Hanks)가 단편 소설집 <<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펴냈다. ‘오스카상을 수상한 세계적 배우의 생애 첫 소설집’이란 홍보 문구가 두드러져 보인다. 책을 읽기 전에 책을 대하는 내 마음부터 분명히 해 두고 읽어야지 싶어, 그저 ‘한 사람이 쓴 소설 한 권’을 읽는다는 마음가짐을 갖기로 했다. 책 띠지와 책 날개에 나와있는 그의 얼굴 사진을 일부러 못 본 체 할 수는 없겠으나 최소한 ‘배우가 쓴 글’이란 생각은 좀 내려놓고 책을 읽어 나갔다.

단편 소설집의 이야기는 다 제각각인 듯 보이나, 여러 이야기 속에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나 있거나 숨겨진 작가의 무의식이 베어나 있기도 하다. 이런 흐름들을 찾아가며 책을 읽을 때 그 재미는 훨씬 크다. 이 책 <<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는 시간적 배경이 도드라져 보였다. 한정된 시간을 혹은 그 시간 너머를 상상하다 보면 이야기는 더 깊어졌다.

<석 주 만에 나가떨어지다>에서 완벽하게 다른 성향을 가진 두 남녀의 연애는 ‘첫 번째 날’부터 정확하게 ‘스물한 번째 날’까지만 이어진다. 21일 동안 일어난 사건들이 독자에게 보고되고 우리는 아슬아슬한 그들의 연애를 지켜본다. <특별한 주말>에서는 아빠, 새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열살 소년이 생일이 낀 주말 동안 자신을 낳아준 엄마와 특별한 시간을 가진다. 그 주말 이전과 이후의 아이의 삶에 대해서는 독자가 상상할 뿐이다.

<그린스트리트에서 보낸 한 달>은 이혼 후, 아이 셋을 데리고 어떤 동네로 이사온 여자가 새 환경에서 지내는 한 달 동안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주변인들을 경계하며 한 달을 보내다가 결국 마음을 해제하게 된다. <내 마음의 명상록>에서는 놈팡이와 사귀다 헤어진 여자가 벼룩시장에서 타자기 한 대를 산다. 거기에 붙은 ‘이것은 내 마음의 명상록입니다’라는 글귀를 보고 30년 전과 현재를 연결시키며 어떤 의미를 알아가려고 한다. <과거는 중요하다>에는 시간 여행 장비를 통해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를 즐기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과거에 머물 수 있는 22시간을 지나치면서 겪게 되는 엄청난 결말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석 주, 주말, 한 달, 30년 전과 현재, 1939년의 과거. 이 모든 시간은 스토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시간이 단지 길고 짧다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고, 각 시간의 의미가 인물들마다 다르게 작용한다. ‘석 주, 21일’ 간의 연애는 짧아 보이나 둘은 이별을 결정하기에 충분한 시간임을 안다. ‘주말’ 동안 황송한 대우를 받은 아이에게 사흘은 앞으로 지루한 일상을 살아낼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평범한 친절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여자는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낸 후,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신한다. ‘30년 전’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음소 하나 하나 꾹꾹 눌러 쳤을 것 같은 타자기는 현재로 이어져 자신의 삶을 타자하고 있다. 타임워프를 하라면 반드시 ‘1939년’이어야 했던 주인공은 과거가 너무 소중했기에 현재를 소홀히 여길 수밖에 없었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말았다.

톰 행크스는 타자기의 열렬한 애호가로 수집한 타자기만도 백 대가 넘는다고 한다. 글을 쓸 때도 타자기로 쓴다고 하니 이 책 <<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제목은 옳다. 만약 책 제목이 ‘톰 헹크스가 들려주는 이야기’였다면 배우 톰 헹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책을 읽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럽게 ‘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이기에 우리는 톰 헹크스를 상상하기보다 타자 자판 위에 놓인 그의 손가락을 떠올리게 되고, 더 나아가 그 손끝에서 완성된 한 작가의 소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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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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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 돈이면 책 두 권은 살 수 있을 텐데.”
언제부터인가 무엇을 사려고 돈을 지불해야할 때 그 돈으로 책을 산다면 몇 권은 살 수 있겠다며 환산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여기에는 다른 걸 사는 것보다 책을 사는 데 드는 돈은 아깝지 않다는 뜻이 숨어 있다. 그만큼 책의 가치를 높이 산다는 것이다.

여기 나보다 훨씬 책을 사랑하고 아낀 사람이 있다. 그의 서재는 개인 도서관과 같아 3만 5천여 권의 방대한 책이 꽂혀 있다. 이 서재를 살펴보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랍어와 같은 언어 별로 책을 분류해 놓았고, 어릴 적 추억이 어려있는 그림형제의 <<동화집>>은 귀중한 책으로 자리하고, 사전 들을 모아놓은 곳은 특별히 서재의 주인이 애호하는 공간이 된다.
이렇게 멋진 서재의 주인은 바로 알베르토 망겔이다. 그는 현재 아르헨티나 국립 도서관의 관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이 책 <<서재를 떠나보내며>>는 단칸방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자신의 서재를 정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책을 싸면서 떠오르는 상념과 감정을 쓴 책이다.

한 사람이 읽고(또는 읽으려고) 꽂아 둔 책장의 책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책의 주인이 갖고 있는 가치관, 관심사는 물론이고 그를 자라게 한 힘이 되는 원천과 경험(흔히 말하는 간접 경험)의 배경까지 훑어 볼 수 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서재는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말해 준다. 망겔 또한 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애독서 목록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으며 또 그 사람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여부도 미리 알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서재는 일종의 자서전이다”(8쪽).

이사를 많이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삿짐센터 사람들로부터 가장 홀대받는 것이 책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책은 그저 무거운 짐일뿐이다. 그런데 저자는 책을 풀어 서가에 꽂는 일과 책을 싸서 상자에 담는 일을 이렇게 표현한다.
“책 풀기가 소란스럽고 무질서하게 부활한 책 더미를 개인적 미덕과 변덕스러운 악덕에 따라 서가에 위치시키는 것이라면, 책 싸기는 이름 없는 공동묘지에 책들을 집어넣어 그들의 주소를 서가라는 2차원에서 상자라는 3차원으로 바꿔주는 것이다”(58쪽).
공동묘지로 직행한 책이 언젠가는 부활할 날이 오겠으나 책을 싸고 있는 저자는 슬픈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다.

책을 싸며 부른 ‘비가’에는 망겔이 지금껏 읽어 온 책이 소환된다. 카프카의 <<변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단테의 <<신곡>>, 브로드웨이의 노점상에서 수집한 책 중 <<웨일스의 시>> 등등 방대한 책이 저자의 심오한 지식과 만나 깊은 이야기가 된다. 저자는 서재를 떠나보내는 일이 마치 자신의 독서 행위를 끝내는 것처럼 느껴졌던지 자신의 읽기와 삶에 대해 마무리하는 듯한 통찰의 글을 펼쳐 보인다.
결코 쉬운 이야기는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는데 다행스럽게 옮긴이가 많은 부분에서 ‘주’를 소상히 달아 주었다. 역자가 책의 전면에 드러나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데 너무도 친절하게 도움을 주어서 고맙기까지 했다.

내 책장에 꽂힌 책들을 손으로 훑어 본다. 어떤 책에서 손가락은 멈추고 제목의 글자 하나씩을 쓰다듬는다. 그 책을 읽었던 장면이 떠오르며 그때 느꼈던 감정도 어렴풋이 스친다. 꺼내 펼쳐보면 어김없이 줄이 그어져 있고 여백의 메모도 눈에 띈다. 과거의 책은 현재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 읽는 책은 훗날 또 다른 나를 완성해 갈 것이다.
알베르토 망겔은 서재를 떠나보내며 비가를 불렀으나, 곧 국립 도서관 관장이 되어 개인 서재보다 더 훌륭한 도서관 서재를 얻게 되었다. 그처럼 우리의 책이 기억 저편 상자 속에 갇혀 버린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생명력있게 부활하는 책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으리란 소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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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냉이 - 개정판 평화그림책 10
권정생 시,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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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외가는 안동이다. 몇 해 전에 외가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권정생 선생님이 사셨던 집을 찾았다. 우리 가족은 그집 마당을 들어서면서부터 할 말을 잊었다. 집이라고 해봐야 허름하고 작은 흙집 하나 덩그러니 있고 한 편에 옛날 화장실이 전부였다. 그래도 누군가의 발길이 이어지는지 마당 한쪽에는 부추가 자라고 있었고 시든 꽃 한다발이 방문 앞에 놓여 있었다. 문틈으로 엿본 방은 자그만했고 선생님의 사진과 앉은뱅이 책상이 보였다. 손을 펼쳐 네모를 그릴 수 있을 만큼 작은 창문 하나 나 있는 그 초라한 방에서 선생님이 사셨다. 이런 환경에서 저토록 맑고 진실된 글을 쓰셨다니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강냉이》는 권정생 선생님이 어릴 때 쓴 시로, 입말을 그대로 살려 쓴 시다.
“내 혼차
모퉁이저꺼짐두고왔빈
강낭생각했다”
내게는 익숙한 말이라 바로 이해되었다. 아이는 시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 뒤쪽에 표준어로 바꾼 시를 읽고서야 이해되었다 한다. 안동에서는 이런 말을 쓴다며 생생히 그 방언으로 읽어줬더니 신기해 한다.

전쟁 통에 피난와서는 집모퉁이에 심어놓은 강냉이를 생각한다. 이제는 제법 많이 자랐을텐데 저 혼자 외로이 있을 강냉이를 떠올린다.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 하나 쓰지 않은 시인데 슬프고 먹먹하고 애틋하고 아련한 감정이 올라온다. 아울러 전쟁에 대해 들은 그 어떤 설명보다 전쟁이 피부로 느껴온다. 어린이 권정생이 쓴 시는 이토록 생생하다. 여기에 어우러진 그림은 또 어떠한가. 굵은 선에 거친 채색은 힘이 느껴지고 그림만으로도 전쟁이 주는 비극이 잘 전해온다.

‘강냉이’ 이야기를 짧게 시로 썼을 뿐인데 그 감동은 어마어마하다. 권정생 선생님의 삶이 녹아있고, 민족의 아픔이 서려있어 그렇다. 소년 권정생을 시로 만나는 경험은 한 번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 두고두고 꺼내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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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렁코 하영이 사계절 저학년문고 16
조성자 지음, 정문주 그림 / 사계절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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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딸아이에게 <<벌렁코 하영이>>를 읽으라고 건네주며 "<<친구 몰래>> 쓴 분이 쓴 책이야." 했더니 "우와~ 이 책도 재밌겠다." 한다. 아이들에게 인기있는 조성자 작가가 쓴 책이라 아이도 나도 즐겁게 읽었다.

갑작스레 '벌렁코 하영이' 앞에 큰 어려움이 닥친다. 반지하에 세들면서 만나게 된 집주인은 '고양이를 잡아 먹는다는 할머니' 였다. 빨간 눈에 고약한 성격에 늘 혼자인 할머니를 두고 말들이 많다.하지만 하영이와 엄마는 할머니에게 다가가고 할머니가 품고 있는 비밀을 알게 된다.

하영이 모녀가 할머니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되고 이해하기 시작하자, 할머니도 변하게 된다. 오랫 동안 꽁꽁 감싸둔 아픔을 겉으로 드러내자 할머니는 다른 사람이 된다. 아니 본래 모습으로 조금씩 돌아간다.

딸 아이에게 "고양이 할머니는 왜 그렇게 고약하게 살았을까?" 묻자 그 사연을 술술 이야기한다. 누구나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이나 아픔이 있다. 너무 힘들어서 드러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받으며 살 수도 있다. 이런 얘기를 덧붙이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더 이야기하면 생각할 여지를 뺏는 거 같아 그 정도에서 끝냈다. 나머지는 아이 스스로 느끼길 바란다.

<<벌렁코 하영이>>는 무거운 이야기를 심각하게 그리지 않고 아이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주어 좋았다. 아이와 함께 읽고 사람들 속에 품은 이야기에 대해 나누어 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더없이 멋진 책읽기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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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촛불이다 - 광장에서 함께한 1700만의 목소리
장윤선 지음 / 창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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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가을부터 몇 달 동안 촛불을 들었던 순간들은 한낱 추억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바꾼 역사의 큰 흐름이었음을 안다. 광장에서 함께한 1700만의 목소리를 담고 그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은 소중하다. 촛불을 든 국민이 쓴 새로운 역사의 의미를 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촛불이다>>저자 장윤선 기자는 스무 번 이상의 촛불 집회를 모두 참석해서 취재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기록물보다 이 책에서 그 현장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초등학생부터 청소년 등 모든 연령층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고, 집회에서 외치는 시민들의 발언을 담았다. 집회마다 독특했던 분위기를 스케치했으며 뒷이야기도 흥미있게 전한다.

책은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탄핵 공판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긴장감 돌던 아침부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던 그날이 떠오른다. ‘100만 광화문 촛불’과 ‘촛불과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다’에서 촛불 집회는 생생하게 묘사되고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났다. ‘우리가 촛불이다’ 이 소제목이 마음에 든다. 촛불 집회에 개근한 이, 최순실을 향해 “염병하네” 한 마디로 국민을 대표해 시원하게 한 방 날려준 청소노동자, 커피와 간식 또는 스테이크를 쏜 이, 헌법책과 스티커를 무료로 나눠준 이, 집회 후 쓰레기를 치우고 경찰버스에 붙은 스티커를 떼는 이들. 이 모두가 촛불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수구 꼴통의 산지, 대구에서도 촛불은 뜨겁게 활활 타올랐다. 집회에 참석할 때 늘 아이를 데리고 갔다. 일곱 살 짜리가 가서 보고, 듣고, 겪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산 역사 속에 있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아이가 들었던 촛불이 어떤 의미였을는지 아이는 자라면서 더 깊이 알아갈 것이다. 역사를 쓰고 그 흐름을 바꾸는 자들은 아이와 나처럼 촛불을 높이 들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시민들임을 한번 더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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