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냉이 - 개정판 평화그림책 10
권정생 시,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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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외가는 안동이다. 몇 해 전에 외가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권정생 선생님이 사셨던 집을 찾았다. 우리 가족은 그집 마당을 들어서면서부터 할 말을 잊었다. 집이라고 해봐야 허름하고 작은 흙집 하나 덩그러니 있고 한 편에 옛날 화장실이 전부였다. 그래도 누군가의 발길이 이어지는지 마당 한쪽에는 부추가 자라고 있었고 시든 꽃 한다발이 방문 앞에 놓여 있었다. 문틈으로 엿본 방은 자그만했고 선생님의 사진과 앉은뱅이 책상이 보였다. 손을 펼쳐 네모를 그릴 수 있을 만큼 작은 창문 하나 나 있는 그 초라한 방에서 선생님이 사셨다. 이런 환경에서 저토록 맑고 진실된 글을 쓰셨다니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강냉이》는 권정생 선생님이 어릴 때 쓴 시로, 입말을 그대로 살려 쓴 시다.
“내 혼차
모퉁이저꺼짐두고왔빈
강낭생각했다”
내게는 익숙한 말이라 바로 이해되었다. 아이는 시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 뒤쪽에 표준어로 바꾼 시를 읽고서야 이해되었다 한다. 안동에서는 이런 말을 쓴다며 생생히 그 방언으로 읽어줬더니 신기해 한다.

전쟁 통에 피난와서는 집모퉁이에 심어놓은 강냉이를 생각한다. 이제는 제법 많이 자랐을텐데 저 혼자 외로이 있을 강냉이를 떠올린다.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 하나 쓰지 않은 시인데 슬프고 먹먹하고 애틋하고 아련한 감정이 올라온다. 아울러 전쟁에 대해 들은 그 어떤 설명보다 전쟁이 피부로 느껴온다. 어린이 권정생이 쓴 시는 이토록 생생하다. 여기에 어우러진 그림은 또 어떠한가. 굵은 선에 거친 채색은 힘이 느껴지고 그림만으로도 전쟁이 주는 비극이 잘 전해온다.

‘강냉이’ 이야기를 짧게 시로 썼을 뿐인데 그 감동은 어마어마하다. 권정생 선생님의 삶이 녹아있고, 민족의 아픔이 서려있어 그렇다. 소년 권정생을 시로 만나는 경험은 한 번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 두고두고 꺼내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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