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76-77
"... 적어도 노벨상 심사위원단은 선생님의 작품을 읽지 않았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소. 하지만 심사위원들이 내 작품을 읽었다 해도 내 논리는 여전히 정당하오. 읽으면서도 읽지 않는 식으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니까. 꼭 인간 개구리들처럼 물 한 방울 안 튀기고 책의 강을 건너는 거지."
"예, 지난번 인터뷰 때 그런 말씀을 하셨죠."
"그런 사람들을 개구리 독자들이라고 하는 거요. 독자들 대부분이 그렇지. 그런데 나는 그 사실을 아주 뒤늦게 깨달았소. 내가 그렇게 순진하다오. 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책을 읽을 거라 생각했소. 나는 음식을 먹듯 책을 읽는다오. 무슨 뜻인고 하니, 내가 책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책이 나를 구성하는 것들 안으로 들어와서 그것들을 변화시킨다는 거지. 순대를 먹는 사람과 캐비어를 먹는 사람이 같을 수는 없잖소. 마찬가지로 칸트를 읽은 사람과 크노를 읽은 사람도 같을 수가 없지. 참, 이 경우 `사람` 이라는 말은 `나와 그외 몇몇사람들`로 해석 해야 하오.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루스트를 읽건 심농을 읽건 한결같은 상태로 책에서 빠져나오거든. 예전 상태에서 조금도 잃어버린 것 없이, 조금도 더 한 것 없이. 그냥 읽은거지. 그게 다요. 기껏해야 `무슨 내용인지` 아는 거고.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오. 지성인이라는 사람들한테 내가 몇 번이나 물어봤는지 아시오. `그 책이 당신을 변화시켰소?`라고 말이오. 글면 그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날 쳐다보는 거요. 꼭 이렇게 묻는 것 같았소. `왜 그 책 때문에 내가 변해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