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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짧은 소설 3 : 괴담 (워터프루프북) 민음사 워터프루프북
김희선 외 지음 / 민음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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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을 발견했을 때 꽤 신선한 기분이었다. 워터프루프 북이라는 컨셉은 선뜻 와닿지 않았지만, ‘장르인데다 미니픽션이라는 소위 순문학적이지 않은 꼬리표가 두 개나 붙어 있는데도 필진이 쟁쟁했기 때문이다. 김희선, 이유리, 임선우, 김엄지, 이장욱 소설가의 글을 하나의 작품집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취향에 따라서는 문지혁 작가의 글 역시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리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은 한국 문학판에서 앤솔로지가 가지는 의미에서부터 시작해보면 좋겠다. 앤솔로지의 사전적 의미는 전집, 선집이다. 요즘에는 적당히 뭔가를 모아놓으면 앤솔로지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한국문학에서는 조금 더 특수하게 하나의 컨셉으로 여러 작가가 모여 글을 쓰는 것을 주로 앤솔로지라고 한다. 다만 이런 정의는 꽤나 허울뿐인 것이었는데, 작가들이 최소한의 컨샙만을 간신히 지킨 채 자기 문학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괴담의 경우 괴담이라는 장르성이 강렬했던 탓이었을까, 비록 작품 사이의 편차가 작았던 것은 아니지만 모두 괴담을 쓰려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것이 상품으로서의 책의 가치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을 통해 직접 보여주었듯, 책은 가장 적은 정보만으로도 구매자가 자기가 무얼 사는지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상품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의 내용물에 관해서는 (그러니까 상품을 통해 얻게 될 효용의 관점에서) 가장 모호하다. 상품성이 높은 책은 어쩌면 표지나 디자인이 전달하는 컨셉이 그 책의 내용물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을 때이다.

 

괴담은 워터프루프 북이다. 한국말로 방수책. PVC에 넣어서 팔기에 허울뿐인 것인줄 알았는데, 표지 뒷장을 보니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워터프루프북은 본격 생활 방수 책으로, 스쿠버 수첩이나 방수 지도에 쓰이는 미네랄 페이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반신반의 하면서 책에 물을 조금씩 떨어뜨려 보았는데 정말로 젖지 않았다. 작정하고 물을 들이부어도 책은 멀쩡했다. 그러나 화장실에 두고 짬짬히 읽거나 여름 해수욕장에서 읽으라는 제작 의도가 아주 경쾌하게 전달되었다. 괴담하면 역시 여름, 그리고 미니픽션하면 짬 시간이다. 디자인적으로 이 책은 완벽에 가까운 것이다. 게다가 강렬하면서도 귀여운 표지와 80쪽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담한 두께마저도 책에 매력을 더한다.

 

다만 이런 컨셉에 비해 전체 작품 퀄리티에는 의문 부호가 붙기는 한다. 정말 좋은 작품이 있는가하면 이게 괴담이 맞나 싶은 것도 몇 개 있었다. 하지만 책 전체가 가지는 매력에 비하면 어쩌면 그건 사소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은 책-상품으로서 가치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품에 대한, 특히 미니픽션에 대한 평을 하지 않는 것은 미니픽션 문예지 선뜻으로서의 직무유기일 것이다. 이하, 작품에 관한 짧은 평을 붙인다.

 

<이것은 괴담이 아니다> - 역시 표제작에는 이유가 있다.

현실과 허구를 연결하여 뒤트는 흥미로운 메타픽션. 텍스트나 현실에 대한 메타가 아니라 글을 읽는 독자와 직접적으로 연결한다는 점이 크게 와닿았다. 좋은 컨셉 소설. 다만 독자 배려가 과해서 그런가 쓸데없이 더 설명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마지막 한 문단은 아예 빼는 게 옳다.

 

<민영이> - 밍밍하다.

쌓이는 서스펜스가 없어서 반전이 반전 같지가 않다. 결국 이야기에서 의미있게 쌓였다가 전복되는 정황이 적다. 이는 서술자의 평서술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다. 서술자가 뭔가 착각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정황이 보이더라도 전체적인 이야기 - 다른 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 사건이 전개되고 있으면 확실해보이는 사실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확실해 보이는 사실이 마지막에 뒤집히는 것에서 반전의 맛이 온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앞에 충실히 깔아두었어야 할 확실해 보이는 사실의 밀도 심각하게 얇다.

 

<따개비> - 갓유리님 찬양해.

사실 참신하다기보단 전통적. 이미지가 진부하기 때문에 따개비가 상처에서 자랄 거라는 건 쉽게 추측이 가능하다. 다만 마지막 선택이 말 그래도 이유리 작가님답다. 기묘하기 짝이 없는 그 따뜻함은 김애란 이후 한국문학이 보여주는 휴머니즘의 새로운 지평이 아닐까. 여하튼 이런 이유리 특유의 따스함이 있고, 글을 끌어가는 힘도 좋았다. 다만 괴담 특유의 참신성 부족이 아쉽다.

 

<> - 참신함으로만 따지면 1등인지도.

이미지 발상력은 훌륭하다. = 이의 연결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지만 설득력이 있다. 다만 그게 이라면 입이 어떻게 벌어져 있고 그 사이 땅은... 하는 의문은 든다. 배경이 아예 더 한적한 나라, 적어도 일본 외곽이면 좋았을 듯. 그래도 참신성에 점수를 준다.

 

<벚나무...> - 프로파간다에 줄 수 있는 점수는 0점 뿐입니다. 제발 발전을 좀 하세요;;

비윤리를 공포와 연결시키려는 과도한 비약. 그러니까 저런 자들이 아직도 떵떵거리면서 잘 산다는 게 포인트인데, 그렇다면 오히려 더 기묘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지 않나 싶다. 책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사실 책상이란 그냥 내력이나 이력일 뿐이고, 그래서 책상과 연결되어 있는 조금 기이한 이야기는 결국 별 것 아닌 고난으로 치부된다. 근데 과연 이게 공포인가? 비윤리자들이 세상에 있는 것을 공포스러워하는 요즘 세태가 나는 오히려 무섭다

 

<푸른 연못> - 뒤에서 2.

공포는 공포스럽고 기괴한 이미지로부터 온다. 말과 구조로만 공포를 설명할 수는 없다. 공포의 본질은 이해하지 못함이라는 측면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푸른 연못은 너무 그 구조에만 천척하여 공포를 잃었다.

 

<얼음과 달> - 개인적으로 최악이었다.

어거지다. 이렇게 작위적으로 이야기 두 개 깔아두고 이게 실재로 일어났습니다 짜잔하는 식의 전개는 너무 뻔하다. 이런 걸 하려면 장면에 강하게 몰입시켜서 장면의 힘으로 몰아쳐야 하는데, 이야기 두 개를 섞는 바람에 그것도 안 됐다. 어설픈 퓨전음식 먹는 기분.

 

<다른 음주> - 진짜 무서운 괴담은 가장 현실적인 거라고 했던가... 자차가 있었으면 더 무서웠을지도.

특유의 스피드감이랄까, 상횡 몰고 나가는 건 좋았다. 짧은 분량 안에서 할 말도 다 했다. 그러나 마지막 결론은 뜬금포다. 공백을 주는 방식으로 이런 건 너무 나쁘다. 외부 맥락의 의존성이 너무 커서 한 번에 안 온다.

 

<재회> - 안나 카레니나도 앞과 뒤로만 성립하지는 않는다.

장면이 주는 말초적 쾌감이랄까, 그런 건 있다. 그러나 이게 괴이한 이야기인 걸까...

 

<여름 나라> - 민영이와 함께 밍밍함 2번 타자.

온실 속 화초가 가질 법한 예비적 두려움. 하지만 이건 너무 개인적인 게 아닐까 싶다.

 

<변신> - 역시 이분은 자기 멋대로 할 줄 알았어.

, 스타일! 괴담으로서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문장의 힘이 엄청나다. 김엄지는 오늘도 김엄지다.

 

<당신의 등 뒤에서> - 이것이 짬바임을 보여준 대선배님.

뻔한 소재, 뻔한 이야기지만 그걸 뻔하게 쓰지 않았다. 게임에 함정이 있다는 거까지야 흔한데, 그 이후에도 다시금 게임을 반복하는 구도.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것. 거기에서 오는 묵직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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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한 일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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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분석으로 확장변주되는 창세기

 

이승우 소설가에게는 식물들의 사생활에서 한 번 실망한 경험이 있다그러나 2018년 김유정 문학상에서 접했던 소돔의 하룻밤은 괜찮은 소설이었고 그래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망설였다.

마케팅 때문이었다. "작가인생 40그 시간 속 궁극적 물음들"이라니거기다 "성경"이라니 맙소사그 문구를 보면 노년이 된 소설가가 인생의 깨달음이랍시고 온갖 폼을 잡으며 성경 해석을 늘어놓는 유사 소설을 상상하게 된다.

그럼에도 소돔의 하룻밤을 믿고 소설집을 구매했고다행히도 이 소설집은 위의 유사소설은 아니었다마케팅팀은 반성을 좀 할 필요가 있다.

 

단편집 전체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보기 드물게 연작소설의 장점을 잘 살린 축에 드는 소설집이었다꼭 이야기가 시간적으로 이어져서가 아니라 각 소설이 상호 연관을 맺으면서도 서로를 사소하게 부정하고 가능 세계를 확장하는 방식 때문이다또한 소설집 전체적으로 독특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좋았다.

다만 잘 된 소설과 방만하게 쓴 소설 사이의 퀄리티 차이가 심한데모든 작품이 고르게 좋았다면 훨씬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만했다는 점에서 아쉽다고 하겠다또한 작품해설에서는 좀 오버를 많이 했던데키르에케고르나 가타리와 씨름을 할 정도는 명백히 아니니 정신 좀 차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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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김금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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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이 소설집의 소설들이 현대 한국문학의 '감수성 혁명'이자 폭발적인 젊음이라고 할 법한 게 맞나?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대상은 '페퍼로니'가 아니라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이었어야 한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4/10)
-> 페퍼로니와 우리의 정체에 대해 소설은 설득을 포기한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는 족보작업에서 시작해서 포스트 세월호에서 끝난다. 그 과정의 한 가운데에 작가는 시골 강변에서 페퍼로니 피자와 맥주를 함께 마실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을 배치해 새로운 유형의 관계성과 사랑을 포착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우리’에 페퍼로니라는 이름을 붙이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는 막연한 이미지로 끝나버릴 뿐 페퍼로니는 소설 전체에 있어서 고작 ‘토핑’ 정도일 뿐이다. 우리 시대의 소위 새로운 감수성이 그 짭쪼름한 외국산 토핑이라는 데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3/10)
-> 이미지와 하고 싶은 말만 많은 지엽주의적인 소설. 서사는 완성되지 못했다.

얕기 짝이 없는 ‘깨달음’을 소설적 진실이랍시고 내세우는 허접함. 결국 마지막까지도 서사를 제대로 용접하지 못해서 인물을 억지로 말하게 함으로써 결말을 접붙인다. 유감스럽다고 하는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굉장히 많은 디테일이 들어가 있는데, 글쎄 디테일로 융단폭격을 가하듯이 뉴욕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서 도대체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에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대리만족인가? 이 소설은 유려한 문체로 쓰였지만 이야기로서 실패했다. 결말을 다들 갑작스럽게 느꼈을 텐데 그것은 이 소설이 서사에서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꼭 모든 소설에 서사가 필수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소설의 큰 줄기를 이주일이라는 기간 동안 두 여성의 동거로 잡은 이상 무언가 화학작용이 일어났어야만 한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작가는 갑자기 인스타 사진 같은 마무리를 황급히 지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말을 냈다고 완성적인 소설이 되는 건 아니다. 고작 SNS는 현실의 극단적인 과장이며 우리는 어떤 차별과 이해불가능성의 구도 속에서 함께 노을이나 보는 게 최선이라는 게 이 시대의 감수성이라고 할만 한가?


## 실버들 천만사(4/10)
-> 엄마와 딸의 유쾌한 야자타임.

엄마와 딸이 서로를 ~씨라고 부르는 방식과 대화를 주축으로 소설을 구성하는 방법, 무엇보다도 엄마의 이야기지만 신파로 흐르지 않은 것이 이 소설 최대의 강점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이 소설은 특유의 유쾌함과 따뜻함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이 마음을 흔들 정도의 심도를 형성하는 데는 실패한다. 대사가 주과 되면서도 다른 소설과 비슷한 분량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밀도 차이 때문이기도 하고, 코로나19와 얽힌 현재 상황에서 그 ‘야자타임’이 새롭게 읽힐 여지가 더 승화된 차원에서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결정적이다. 퍼텐셜은 좋았지만 아쉬운 소설.

##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6/10)
-> 한국판 플로리다 프로젝트

이 소설의 과단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한국 단편은 그 망할 거리두기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용감하다. 인물이 행동하는 것을 한국 소설에서는 오랜만에 봤다는 느낌마저 든다. 전체적인 의미망이 단조롭기는 하지만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의 감정선에 설득력이 있고, 서사의 밀도가 높다. 마지막에 ‘낙원 요양원’에 정말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정말 놀랐고 좋았다. 이 소설이 젏은 작가의 작품이었다면 감히 한국 문학의 기수라는 말을 썼을 지도 모르겠다.

## 내게 내가 나일 그때(5/10)
-> 또 하나의 최은미표 섬짓한 소설.

최은미에 관해 좋게 평하는 사람은 그녀를 한국의 이언 맥큐언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R-19의 상황과 특유의 섬짓함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언 맥큐언이기에는 너무 거리두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그녀의 빌드업 방식은 독특하지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투박함일 수 있다. 향토성이 짙게 묻어나는 나름의 시골 스릴러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면 이건 현대적으로 조금 더 잘 쓴 장화홍련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 들소(3/10)
-> 이 소설에 들소가 필요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어린 아이를 화자로 내세웠지만 그 효과라고 할만 한 것이 미미하다. 그냥 좀 더 자유로운 시점의 모르모트 관찰자 정도.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사유도 생각도 너무 잘해서 너무 부자연스럽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니까 너무 빠르게 슬픔을 배워버린 어린 아이가 느끼는 블루한 감정이 이 소설의 요체이다. 그래서 우리는 들소를 설명할 수 있다. 이 아이가 유일하게  피부로 느끼는 감정, 압박감의 요체, 그것이 들소이다. 그러나 들소는 와닿지 않는다. 이미 이 아이는 애초에 아이가 아니며 충분히 사유하고 있는 아이의 탈을 쓴 모르모트에 불과하다. 들소가 인형을 들이박는다고 슬퍼하기에 우리는 너무 현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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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89호 - 2020.가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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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의 문학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무릇(이런 단어를 2020년에 쓴다는 것이 상당히 조심스럽기는 해도) 신인이라면 패기로워야 하고 불완전할지언정 독특해야하고 무엇보다도 새로워야 한다. 이런 말을 요즘 시대에 하는 것이 오히려 구태의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 한국 문학의 씬(scene)은 기성 작가와 평론가가 신인을 '알 수 없는 내부기준'으로 수혈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새롭지 않은 신인이 등장하는 것은 현 씬의 나태함과 의지부족의 증거로 해석하는 것이 부당하지 않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신인 문학상 당선작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편집부와 심사위원에게 있다. 이 소설은 소설로서의 형태를 갖추고 있고, 나름 대상과의 거리두기를 하고 있으며, 문장력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거의 아무런 새로움도 없다는 문제가 있다. 이 소설은 레트로 감성의 "이름 없는 저 풀꽃처럼 센티멘털하게 흔들리는~"이라는 식의 노랫말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주제의식적으로 첨예해진 것도 없고 어떤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지도 못했다. 유일한 새로움은 '플렉스'가 나온다는 것 정도. 

PC주의와 주제적 심화를 감추기 위한 임시방편적 거리두기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카버의 망령에서 어서들 빠져나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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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킹 오레오 새소설 7
김홍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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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이 소설은 쉽게 읽힌다. 흔히 헐리우드식 기획이라고 말하는 하이 컨셉트 소설인데다가 전반적으로 문장이 짧고 사유보다는 재치를 소설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축하한다. 독자를  마지막까지 붙들어 놓았다. 그러나 책을 덮고 떠오르는 것은, 강렬하게 오레오를 피우는 이미지 단 하나 뿐이다. 그것이 무슨 의미이고 이 책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에 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정확히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총은 그저 총체적인 총으로서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등장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총에 관해서 이 소설이 시도하려고 했던 상징과 은유(설계도대로 총을 만들었지만 불발한다, ‘이라는 개념 혹은 이데올로기 그 자체가 게임을 주최했고 인간보다 거대한 층위에서 세상을 움직인다)에 관해서 길게 설명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건 이 평을 읽는 다른 독자의 수준을 무시하는 일이 될 것만 같다. 소설에서 총은 박민규가 일련의 단편 소설들을 통해 자본주의를 소비한 것과 정확히 같은 깊이에서 소비된다. 그저 거대하고 나쁜 것. 어째서 총과 같은 폭력적인 기제가 작동하고 거기에 어떤 인간과 인생의 매듭이 얽혀 있는지는 전혀 탐구되지 못한다. 어쩌면 이야말로 한국이 총기 청정국가라는 반증인지도 모르겠다. 강남 한복판에서 총 쏘는 걸 봤어야 알지.

박민규 작가에 관한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김홍 작가는 박민규와 상당히 닮은 스타일을 구사한다. 재치와 패러디를 주무기로 삼는다는 점이나 사건 중심으로 극을 끌어가며 허구인 게 분명한 뻥을 매력적으로 치는 걸 추구한다. 현재 이런 목소리는 문단에서 귀한 편이다. 우리네 작가들은 전반적으로 진지진지 열매라도 먹은 것처럼 글을 쓰고 자꾸만 윤리에 집착하는 경향이 요즘 많이 목격된다. 장르색을 강하게 끌어안고 나름대로 하이스트 영화와 비슷한 컨셉을 잡은 것도 좋았다. 그러나 섣불리 응원의 말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건 아무래도 을 가지고 시도한 전체적인 은유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은 아닐까. 무엇보다도 오레오가 마약의 기제가 되는 이미지가 총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굉장히 마음에 드는 이미지인데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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