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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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어른들이 어렸을 적 바라본 아버지, 어머니 모습들이, 오늘날 영상과 그림, 노래, 글들로 많이 나타난다. 그 때의 영화 스케치 같은 모습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온전히 담아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런 신경숙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작가님만의 고유한 이야기들이 부드럽고, 무척이나 깊게 담겼다.

어머니가 병세로 입원하시자, 홀로 눈물 흘리고 계신 아버지와 함께하기 위해 주인공이 기차를 오른다. 딸을 잃은 슬픔으로 그 동안 방문이 뜸했던 그 곳으로 말이다. 주인공이 커다란 슬픔에 신경 쓸 수 없었던 가족들의 이야기, 아버지의 이야기, 주변인들의 소식들을 발견하고 마주하는 내용이며, 아버지를 그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한 명의 사람으로 인식하며 바라보는 것을 이야기한다.

글 속에서의 아버지는 계속해서 자식들에게 미안함을 표현한다. [헌이 나기 전엔 아들놈만 셋이라 너그드를 아페 두면 겁이 덜컥 낫다. 학교도 지대로 안 댕긴 내가 이 아이들을 어찌 바로 키워내나 시퍼서 밤에 자다가도 가스미 눌리는 거 가터 벌떡 일어나 안곤 했다. p.200]처럼 말이다. 부모님이 없을 땐 큰 형이 어머니 아버지 같은 존재라며, 자식들의 숙제, 진로문제 등 많은 것들을 큰 아들에게 맡겼던 과거의 모습에, 혹 자신이 큰 아들에게 너무나도 무거운 부담의 짐을 얹은 것은 아닐까 미안해하고, 자신의 가난했던 환경이 학비를 덜내고, 취직이 잘되는 방향의 대학을 선택하게 무언의 압박감이 되지는 않았을까 끊임없이 계속해서 미안해하는 아버지의 말들과 행동이 보인다. 정작 자식들은 간단한 서운함이나 그 때만의 추억으로 남겨 꼭꼭 저장해뒀는데, 그들과 달리 계속해서 그 때를 떠올리며 돌이킬 수 없는 미안함을 보이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책 속의 한 장면으로 아들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야 20시간 남짓 걸리는 북아프리카로 일을 하러 갔을 때에, 아버지와 주고받은 편지들의 내용이 들리운다. 항상 아들 편지의 시작은 ‘그동안 무탈하셨는지요?’ 였고, 아버지의 편지에서는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하늘 아래 네가 건강하면 그것으로 되었다.’ 라는 말이 글의 끝자락을 맺었다. 아버지가 먼 타지에서 일하는 자신을 걱정할까봐, 미안해하실 일이 아닌데 미안함을 느끼실까, 그 무뚝뚝한 아들이 꾹꾹 눌러 정성으로 쓴 편지엔 아버지의 물방울이 닿아 적셨고, 형편이 넉넉지 못해 어릴 적 많은 것을 내주지 못했던 자신의 환경이 미안하여 계속해서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되내이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들의 편지들은 마치 나의 가족인 것처럼 이입되게 하여 깊은 울림을 불렀다.

과연 이뿐만일까, 아들, 딸들이 이야기하는 어릴 적 이야기들, 홍역에 걸렸던 어린 아기인 나를 유일하게 방치하지 않으시고, 방안에 홀로 뉘여있던 애를 병원에 데려다주신 게 아버지다. 대학에 떨어져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홀로 자전거를 가지고 떠난 무전여행에서 간첩으로 몰려 경찰서로 끌려간 자신을 간첩이 아니라고 증명하기 위해 가족사진과 서류, 학생증과 책가방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오신 분이 아버지 시다.라는 말들의 이야기에서 결국엔, 아버지 자체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좋았다. 아버지 또한 우리와 다름없는, 자신만의 긴 이야기들을 적어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줄 너무나도 좋은 말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의 한 이야기, 박무릉씨의 말에선 함께 한국 전쟁을 겪은 어릴 적의 아버지 이야기가 들려왔고, 이가 몇 번을 울컥이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박무릉씨에게서 들은 어렸던 아버지의 모습들을 통해, 그 시절의 아버지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 굉장히 부럽게 다가오기도 했고 말이다.

이렇게 책에선 주변인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들으며, 아버지를 여러 방면으로 바라보고, 가족들의 몰랐던 삶을 마주하며 다가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이 놓쳤던 지난날의 일들을 다시 찾기 위해, 또는 아버지를 그저 한 사람으로써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는 딸의 모습이 미래 내 모습과 함께 연상되어 되어,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버지가 점점 나이 드시고, 건강이 안 좋아지시며 수면장애로 인해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깬 그 순간에도 [현아, 어서 도망쳐! 여기엔 내가 있을 텐게 너는 어서 도망쳐.] 하시며 빨리 집에서 나가야 한다며, 먼저 대피시켜 지키려는 아버지의 다급한 모습과, 점점 죽음을 준비하시며 주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아버지의 모습은 눈물을 일으켰다. 아들, 딸들에게 남길 것들을 이야기하시며, 어릴 적 홀로 어두운 길을 걷길 무서워하는 주인공에게 “네가 밤길을 걸을 때면 네 왼쪽 어깨에 앉아 있겠다, 그러니 무엇이든 두려워 말아라” 라고 덤덤히 말하는 부분은 무척이나 큰 감동과, 이젠 살아서 지켜줄 수 없을 거라는 아버지의 생각이 담긴 듯 하여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눈물을 자아냈다.

나에게 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셨다. 눈을 뜨고 뭔가를 인식하니 아버지란 이름으로 항상 곁을 지켜주셨고, 묵묵히 기다려주셨다. 딱 어른이 될 때까지만, 아버지란 이름으로 바라보고, 그 이후 아버지를 스스로만의 삶을 가꾸고 계신 개별적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길 스스로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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