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느린 만화가게 - 생태환경만화모음집
'작은 것이 아름답다' 편집부 지음 / 작은것이아름답다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크고 빠른 지금.

서울에서 나고 자란 시간은 즐겁지만은 않았다. 놀데라고는 학교 운동장 뿐, 골목길은 늘 차가 오고다녔고 동네 놀이터는 그 많은 아이들을 담기엔 좁아 터지기 일쑤였다. 감옥같은 학교와 학원, 독서실을 오고가야만했던 암울한 청소년기를 벗어나 좀 더 많은 걸 볼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을 가지게 되자 그제야 보였다. 내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것들이 모두 너무 크고 빠르단걸.

많은 사람들을 빽빽하게 몰아넣기 위해 아파트 단지는 거대해져갔고, 골목으로 들어오는 차는 어릴때보다 더 많고 빨라졌다. 발맞춰 내 목표 역시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살아야만 할 것 같고, 내 생활 역시 바삐 움직여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이따금씩 교외라도 나가면 숨이 트였다. 아,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곳.

거대하고 빠른 수많은 걸 다시한번 재현해주는 그저그런 티비 프로그램과 영상, 언론, 영화, 책이 너무나 많다. 이미 매일매일 느끼는 그 숨막힘을 다시한번 여유시간에도 느끼고있자면 진절머리가 났다. 그들이 제시하는 창구는 더 거대하고 더 빠른 것들이였으니까.

그런의미에서 <작고 느린 만화가게>는 작고, 느리다.

내가 잊고 있던, 아니 모른척 하던 작은 것들. 느린 시간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말 소박하고 담담하게. 나와는 다른 삶이라고 여기고 먼 훗날 언젠가의 꿈으로만 남겨진 그 작고 느린 생활이 바로 여기있다고 이야기해주는 위로. 거대하고 빠른 도시에서 무시당하고 지나쳐버렸던 것들이 이 작은 책 한권에 한장한장 담긴 걸 보면 어여뻐서 소중히 여기고 싶을 정도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엄청난 감동과 새로움을 느꼈다기보다는 다 읽고 덮은 후 그 다음날. 다시 거대하고 빠른 도시에 흐름에 들어가며 울컥해졌다. 그래, 여기서 작고 느린걸 그리워하고 매만지고 싶은 내가 잘못된게 아니야. 당장 모든걸 뒤엎진 못하더라도 내가 가진 마음 한켠의 작고 느린 소망이 나 여기있어, 라고 오랜만에 노크를 해주었다. 참, 고마운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