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상담소
작은것이 아름답다 지음 / 작은것이아름답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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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름 환경단체에서 이년 여 가까이 일을 해오며, 어줍 잖지만 사람들의 '녹색 궁금증'에 답해왔다. 난데없이 사무실 전화를 통해 석면을 어떻게 해야 되냐, 무슨 생리대가 안전하냐, 플라스틱의 어떤 소재가 더 낫냐 등등 분야를 망라한 질문들에 당황하지 않은 ''하며 줄줄 답을 늘어놓곤 했다. 그러나 일에 치이고 삶에 치이면서 그야말로 '고인물'이 되어갔다. 기계처럼 나오는 답은 맥아리 없이 얕고 재미가 없었다. 공부하지 않고 대충 뉴스로, 주변에서 접한 얘기를 읊는 것 뿐이었다. 일을 관두고 나니 더더욱 그러한 요즘이었다. 가족들 사이에서 '환경꾼'이라고 비아냥 받으며 완강하게 밀고나갔던 내 녹색 태도 역시 서서히 흐려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받아든 녹색상담소. 내가 다 아는 내용 아냐? 거만하게 책을 펼쳐들었지만 이럴 수가. 모르는 것, 잘못 알았던 것, 헷갈렸던 것들이 나를 비웃으며 담겨있었다. 휴지를 당연히 변기에 넣어야한다고 생각했건만 수질오염을 야기시킬 수 있음을, 매일 지나며 보는 가로수의 정체가 이런 것이었음을, 고속열차가 비행기만큼이나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작은 방사능 측정기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등등 '이게 이렇다니!' 꺠달으며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웃으며 답을 해주는 마치 상담사와 마주앉은 듯한 착각에 빠졌다.

 

상담사는 매우 친절하게 모르는게 죄가 아니었음을, 어떻게 하면 된다는 것을 상냥히 알려준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인지 탁 꼬집어준다. 애써 '이정도는 괜찮지 않을까'라고 교묘히 '덜 녹색' 적인 곳으로 빠져나가려는 상담자에게 그건 녹색이 아니라고 따끔히 지적해준다. 휴지를 아예 안써보는건 어떨지, 에어컨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시원해지는건 어떨지, 꼭 종이를 사용해 인쇄를 해야만 하는지 되물어본다. 상담자가 되어 다시 생각해본다. 맞아, 안쓰면 되는거잖아. 안써도 되는거잖아.

 

플라스틱이 고래뱃속에서 튀어나오고 유전자 조작 식품이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고, 미세먼지가 문제라면서도 발전소가 멈추지 않는 이때. 더 나은 소비, 적당한 타협을 통한 녹색의 껍질뿐인 포장이 만연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제대로 된 녹색 상담소가 차려지니 매우 반갑다. 4대강 열린 보처럼 내 안의 녹색 고인물을 흐르는 강으로 바꿔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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