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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시대 - 세계사의 전환과 중화세계의 귀환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의 삶은 서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장 내 몸에 걸친 것들을 살펴 보면 옷, 신발, 모자, 시계, 목걸이 할 것 없이 불과 120여년 전에 처음 이 땅에 들어온 것들 투성이다. 가마를 타던 이 땅의 사람들이 지금은 서양에서 처음 만든 자동차를 타고 있다. 구멍을 다섯 개 뚫은 한지로 된 책들은 이제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다. 천 년 이상 한문으로 된 문장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자신의 사상을 펼쳤지만 그 후손들인 우리들 대부분은 그것을 소리내어 읽어내지도 못한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전방위적인 전통의 단절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잘먹고 잘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사태의 출발점은 ‘서세동점’이라는 근대사의 엄청난 사건에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500년간 이 땅에 살던 최고 엘리트들이 평생을 걸고 연구했던 유학은 일시에 야만의 대표성을 띠고 우리의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잊혀지는 정도가 아니라 무슨 문제만 생기면 조상들이 미개하고 야만적인 유학에 정신을 파느라 개방이 늦어져서 그렇게 됐다는 성토가 정설처럼 받아들여진다. 거기엔 서양은 우월하고 동양은 열등하다는 오리엔탈리즘이 바탕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서양화, 서구화를 향해 쉴새 없이 달려왔다. 90년대 중반에 한창 유행했던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라는 구호도 미개한 동양을 벗어던지고 앞선 서양 문명에 당당하게 동참하자는 외침으로 들린다. 정치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87년 민주화 운동의 성공 이후 한국인들은 산업근대화와 정치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찼다. 이 역시 열등감에 근거한 서양 따라잡기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이병한 씨는 당당하게 민주주의는 인류의 종착역이 아니며 민주주의야말로 인류 전체 역사에서 아주 일시적인 예외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늘날 서구의 번영은 민주주의 때문이 아니라 식민지 지배와 그로 인한 약탈 덕분이었다고 강변한다. 그는 서구 민주주의가 그리스에서 아주 잠깐 꽃피웠다가 2,500년간 자취를 감췄었다는 사실과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가장 안정적으로 기능했던 정치체제가 천하에 기반한 중화질서였다는 점을 예리하게 끄집어낸다.
일관된 흐름으로 작성된 학술서적이 아니라서 독해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이병한 씨의 주장을 아주 거칠게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중화질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정치체제였으며 그것을 뒷받침한 유교 사상은 유럽에 전파되어 전제군주를 계몽군주로 뒤바꿀 정도로 콘텐츠 면에서 손색이 없었다. 다만 근대의 짧은 시기에 서양의 산업혁명은 백인에 의한 약탈 경제(자본주의)를 성립시켰고 그 약탈을 정당화하는 장치가 민주주의였을 뿐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인류의 종착역이 아니며 조만간 백인 중심의 약탈 경제의 붕괴와 함께 새로운 정치 체제가 등장할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경멸하고 무시해왔던 중화질서일 가능성이 크다.
일단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데는 성공했다. 서양식 복장과 서양식 어휘, 서양 영화, 서양 음식, 서양 문자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에게 그 미개하고 야만적인 중화질서가 다시 찾아온다니! 놀랠 노자다. 더구나 아시아 유럽을 넘나드는 저자의 활동 범위가 주는 설득력 또한 매우 크다. 중국의 양회가 열릴 동안 북경에 머무르고 있었다니!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것 같은 기분을 준다는 점이다. 의문이 생길 때마다 연필로 필기를 하며 읽었지만 워낙 하나의 관련 논리들이 책 안의 이 글 저 글에 산재(散在)해 있고 논리 자체가 난마처럼 얽혀 있어서 독자로서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 찾아내기 힘들었다. 처음엔 세 가지 큰 주제로 나누어 저자의 논리를 정리하고 그에 대한 나의 의문점이나 반박을 제시하려 했으나 두서없이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저자의 논리를 정리하는 일 자체가 고된 노동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저자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시간에 따른 순서를 무시한 채 주제별로 모아놓으면서 생긴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한 이유로 여기에선 민주주의에 관한 쟁점만을 대상으로 논의를 해보려 한다.
저자의 말대로 분명히 중화질서는 하, 은, 주 삼대 이래 아편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동아시아 지역에서 통용되었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에 비하면 정말 일천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로부터 ‘중화질서로 반전할 것이다.’ 혹은 ‘중화질서로 반전해야 한다.’는 예측이나 당위가 도출된다는 것은 나를 무척 당혹케 했다. 그런 식이면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만민평등사상이 역사에 등장한 건 불과 몇 백년 전이고 훨씬 더 오랜 기간 노예제가 존속했으므로 결국 인류는 다시 노예제로 돌아갈 것이다. 혹은 돌아가야 한다는 논리가 나와도 할 말이 없다. 오래되면 성공인가?
물론 저자의 논리는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보편적 민주주의란 것이 서구에 의해 만들어진 서구 우월주의의 한 돌출된 모습이라는 것과 근대 경제 발전은 사실 식민지 지배와 약탈 때문이지 민주주의와 필연적 관계가 없다는 지적은 따끔하게 느껴진다. 즉, 서양식 보편적 민주주의를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할 이유는 없으며 각 국가와 지역마다 역사적 맥락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풍토에 맞는 복수의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움츠러든다. 첫째, 그런 얘기는 왠지 익숙하다. ‘한국적 민주주의’. 바로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보편적)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과 학생에게 박정희는 유신 헌법을 내밀며 “이것이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강변했다. 사실상 변태적 강변이었다. 둘째, 민주주의가 보편성을 띠는 이유가 서양의 우월주의와 식민지 약탈 경제의 폭력성을 은폐하려는 목적을 띠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보편적 민주주의엔 순기능이 있다. 바로 모든 인간은 동등하며 평등하다는 이상과 이념을 그 보편적 민주주의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가 혼동하는 것은 이상과 현실이다. 현실의 사태를 근거로 반전을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이상도 이야기해야 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민주주의가 진실로 자본주의 식민지 약탈 경제를 은폐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해도 우리가 민주주의에서 희망을 거는 부분은 그러한 현실이 있지 않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가치는 그것이 지향하는 이상에 있다고 할 것이다. 비록 그 이상이 지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라 하더라도 민주주의는 결국 모든 역사와 지역, 국가, 민족을 넘어서 하나의 형태로 드러나며 하나로 수렴된다고 말할 때 우리는 모든 인간이 과연 똑같고 동등하고 평등하구나! 라는 환희를 느끼게 된다. 저자는 그것을 저잣거리 개밥그릇 차버리듯이 가볍게 걷어 차버렸다.
저자가 중화질서로의 회귀(반전?)를 이야기하는 근거는 또 있다. 베스트팔렌(1648) 체제로 형성된 국제법과 근대적 주권 사상이 전세계에 폭력적, 일방적으로 적용되면서 국제질서가 국가간의 규모의 차이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구 13억의 중국과 인구 2천만의 스리랑카가 주권 국가로서 대등한 권리를 행사할 때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13억의 삶과 2천만의 삶이 동등하게 다루어지는 현실에 대해 저자는 부당함을 토로한다.
사실 분명히 생각해볼 문제이다. 국민주권시대라면 더 많은 국민을 가진 국가가 더 큰 주권을 갖는 게 맞는 것 같다. 특히 공리주의 관점에서 보아도 더 큰 국가에게 더 큰 주권을 인정할 때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 부합할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문제점으로부터 “중화질서로의 반전”을 이야기하는 것은 넌센스다.
과거 봉건시대의 조공과 책봉의 관계는 왕조와 왕조 사이에서 이루어졌을 뿐 백성의 수와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내가 보기에 중화질서를 떠받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백성의 수가 아니라 중국이 생산해내는 문화적 컨텐츠와 철학 사상인 것 같다. 물론 역사를 통틀어 중국이 주변국에 비해 월등히 인구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어떤 문헌에도 중국의 종주국 지위를 인구수에서 도출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중화와 야만을 가르는 기준이 인구수가 아닌 공맹의 도에 있었기에 조선의 사대부들은 소중화를 말할 수 있었다.
따라서 “중화질서로의 반전”을 말하려면 다시 중국의 문화 컨텐츠와 철학 사상이 세계 중심으로 우뚝 선다는 전제 조건부터 충족되어야 한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최근 중국 당국이 공자학당을 전세계에 세우고 유학을 국가적으로 연구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잘 설명된다. 저자는 이 연결 고리를 아예 통째로 누락해 버렸다.
다시 저자의 주장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13억과 2천만의 삶을 1:1의 주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혁신적인 주장의 바탕에 깔린 개인주의 사상을 읽어낼 수 있었다. 각 개인의 존엄함을 인정해야 13억이 2천만보다 더 비중이 크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저자는 역사 발전의 방향이 개인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는 통념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민주주의가 개인의 가치를 발견해내고 그것을 정치 시스템으로 구성해 내는 정치 이념이었다는 점만은 높이 평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다양한 형태의 민주주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저자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지니려면 ‘개인’의 존엄함을 보장하는 정치이념이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선언은 가능하다. 그리고 그러한 선언이 이루어지는 순간 다양한 형태의 민주주의라는 말은 존재 의의를 상실한다. 그냥 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부르면 된다.
쉽게 말하면 저자는 의도한 것은 아닐지언정 자신이 인정하고 있는 개인의 가치와 존엄을 오늘날 현실에 살려놓은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라는 사실은 도외시하고 그것을 식민지 약탈 경제를 은폐하려는 도구인 것처럼 왜곡하려 시도했다. 보편적 가치인 ‘개인’을 인정하는 순간 역사와 지역을 반영한 다양한 민주주의 따위는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이슬람의 여성 매매를 문화라는 이름으로 긍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정리하자면 저자의 말대로 오늘날 민주주의가 한계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과거 동아시아에 존재했던 중화질서와 유사한 형태로 수렴될 가능성이 있다고는 해도 본질적으로 봉건 시대의 중화질서와 앞으로 찾아올 그것과 유사한 새로운 정치체제는 완전히 다르다. 저자의 오해를 여러 곳에서 숱하게 확인할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중요한 몇 가지만 언급하기로 한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저자가 유학의 여러 개념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수신제가(修身齊家)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이분법적으로 적용하여 개인과 사회를 구분한다. 이것은 서양 문화가 유입된 근대 이후의 독법일 뿐 결코 유학에서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다. 나는 가정의 구성원이자 국가와 천하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내 몸을 닦는 것은 곳 가정을 닦는 것이고 나아가 천하를 닦는 것이다. 수신(修身)이 곧 제가(齊家)이며 곧 치국(治國)이며 평천하(平天下)다. 그러므로 유학에선 개인의 수양이 곧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다. 그 원리가 거경궁리(居敬窮理)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유학에서 정치(政治)란 공적 영역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적이면서 동시에 사적이었다. 왜 임금에게 그토록 경연을 강조했는지 모르겠는가.
중화질서로의 반전이 결국 유학 개념에 대한 오독을 전제로 한다면 그것은 반전이 아니라 왜곡과 혼란일 수 있다. 왜냐하면 중화질서라는 껍데기를 입은 서양 정치이념 및 정치철학의 적용에 지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의(仁義)에 대한 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유학에선 “군신 간에는 오직 ‘의(義)’가 있을 뿐이었다(p204)”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仁과 義는 분리할 수 없는 개념으로 이 둘이 태극의 음과 양처럼 조화되고 어울려야 비로소 현실을 바르게 하는데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仁義를 내적으로 인식하는 영역이 知이고 그것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영역이 禮이다. 이렇게 仁義禮知가 완성된다. 義와 利를 대척점에 놓는 것은 맹자에서 연유한 것인데 그 논리는 왕조 중심의 관점에서 백성 중심의 관점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맥락에서 나왔다. 맹자에서 利는 왕조・군주 중심의 사고방식을 대표하는 개념이었으므로 국회의원과 유권자가 利로 연결되었다는 저자의 해설은 利를 정확히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맹자의 利는 왕조・군주의 利일 뿐이고 저자가 말하는 利는 유권자와 국회의원을 모두 만족시키는 利이다. 이 둘은 같은 글자이지만 내포하는 의미와 맥락은 완전히 다르다.
중화질서가 민주주의라는 예외적 현상을 거쳐 다시 중화질서로 반전한다는 설명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논점이 많다. 전자의 중화질서에는 ‘개인’이 담겨 있지 않지만 후자의 중화질서에는 명백히 ‘개인’ 담겨 있다. 그건 분명 민주주의의 공헌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반전이 아니라 바로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적 발전이다. 반전이라는 단어에 매몰되어(혹은 매혹되어) 사태의 본질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닐지 저자에게 진지하게 반문한다.
그러므로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새로 도래할 중화질서(이렇게 이름 붙이는 게 적당할지는 별개의 논의로 친다)는 단순히 과거의 중화질서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저자의 직관이 탁월하여 정확하다면 봉건 중화질서와 민주주의를 모두 겪은 문화권에서 바로 그 새로운 중화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겠는가? 바로 한국이 아닌가? 민주주의를 경험해보지도 않은 중국 학자들이 미국에 모여 민주주의 이후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논의한다는 소식을 비판적으로 전하지 못하는 저자에게 안타까움을 전한다.
우리는 중화질서와 민주주의를 모두 경험해 본 역사적 자원이 있다. 그 사실로부터 새로 다가올 시대를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 한다. 그것은 반전의 시대가 아니라 법고창신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