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와 철학자
쟝 프랑스와 르벨 & 마티유 리카르 지음, 이용철 옮김 / 창작시대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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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불교를 서양 철학의 관점에서 비교, 분석하려는 서양의 철학자인 아버지와 불교수행에 정진하는 서양 승려인 아들과의 대담입니다.

아버지 장 프랑수아 르벨은 문학과 철학을 전공한 대학교수로서 비종교적, 무신론적 입장에 선 철학자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마티유 리카르는 분자생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과학자에서 티벳 불교의 승려로 변신한 인물입니다.

왜 불교에 입문하게 되었느냐는 아버지의 질문에서 대담은 시작합니다. 자신이 쌓았던 과학적 경력은 결코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은 자신의 삶의 우선순위에 따라, 보다 더 중요한 자신에 대한 본성을 깨닫기 위해 출가를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불교는 엄밀하게 말하면 종교가 아닙니다. 불교에는 신이 없습니다. 단지 깨달음을 얻은 부처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내적 진리를 발견함으로써 생겨나는 확고부동한 확신이라면, 불교 역시 종교입니다.

불교는 교리가 아닙니다. 원죄의식도, 신의 창조론도 없습니다. 단지 누구에게나 내재한 불성을 명상을 통하여 깨달을 뿐입니다. 불교는 자신의 본성을 찾아가는 '도' 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고통은 무엇일까요? 불교에서는 고통이 욕망, 집착, 증오, 자만, 질투, 무분별함 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부정적인 감정들은 '자아' 라는 개념에서 생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자아는 어떠한 실재도 갖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고통을 벗어나는 길이라고 합니다. 자신과 사물들의 궁극적인 본성을 발견하는 깨달음만이 우리로 하여금 자아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할 수 있으며,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명상을 권합니다.

왜 서양에서 불교가 그토록 관심을 불러일으킬까요? 서양 문명은 오래도록 역사적 발전과 기술의 진보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정신적 가치가 결여된 물질적 진보는 더 이상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진 않았습니다. 안락함이 결코 행복을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양은 존재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고, 서양은 소유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소유는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킵니다. 소유에 대한 욕망이 많아질수록 내적 변화에선 더 멀어지게 됩니다. 서양에선 더 새롭고 더 편리한 것을 추구하며 기술의 진보는 이루었습니다. 아울러 삶의 조건은 개선되었으나 존재의 질에 관한 문제는 소홀하게 된 것입니다.

개인은 더 이상 고유한 존재를 갖지 못하고 사회라는 기계의 한 부품으로서만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서양은 과학의 영역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철학이나 종교가더 이상 사람들을 위로할 수 없게 되었고 이 빈자리를 불교가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은 불교의 모든 종교를 초월한 진리에 대한 열린 시각이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불교는 결코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른 종교를 부정하지도, 믿기를 권하지도, 개종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질 높은 삶을 구가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존재에 내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며, 존재에 내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방법은 오직 우리 자신의 정신을 제대로 알고 변화시키는 일 뿐이라는 것이 승려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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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동문선 현대신서 50
피에르 쌍소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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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시골 도시 할것없이 휴대폰 ,인터넷...등등의 첨담 기기 로 인해 접촉의 기회가 무한정 열렸지만 개인의 외로움은 더커져 가는듯하다. 과학은 더 편리하게,더빠르게...라고 외치는 인간의 욕구를 따라 가기에 바쁘다. 빠름에 중독 되다보니... 시간은 돈이되고 사람들의 성격도 급해지고,혹은 포악해지고 인정은 더 메말라 간다. 그러나 바쁘고 빨라질수록 인간의 한구석엔 느림과 여유에 대한 생각이 향수병처럼 자리하고 있다.

바쁜 이 시대에 [느림에대한 의미]란 책은 삶의 다른 방식을 제시하고 있는, 인간다운 삶을 가치를 보여주는 고마운 책일 것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나는 느리다는 것이 정신과 육체적으로 어떤관찰을 가능케 하는가? 또는 어떤 발견을 가능케 하는가? 라는 의문을 풀수 있을거란 기대를 품었다.

이책의 저자 피에로 쌍소는 파스칼의 말을 서두에 인용한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한가지,고요한 방에 들어 앉아 휴식할줄 모르는데서 비롯된다.' 내 생각에도 현대인들의 불행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감당하지 못하는데 있다. 그러니 방안에 가만히 지내는건 휴식이 아니라 고통이다. 처음엔 ...피에로 쌍소가 어떤 사람 인지는 모르지만.. 느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니까 호감이 갔다.

그는또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언제 부터 내운명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기 시작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 보라고 충고 한다. 이정도면 훌륭한 책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이책을 기쁜 마음이 아닌 신경질 나는 마음으로 두번 읽어야 했다. (내가 책을 두번읽는 경우란 10년에 한번 정도 있는 희박한 일인데...^^)

쌍소는 이책을 써나가면서 자! 그러면 , 여기서 잠깐, 알다시피 ,그러니까...등등 마치 사람을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듯한 글을 쓴다. 그의 이 발랄한 글쓰기는 또한 많은 프랑스 도시이름과 거리이름 ,친구이름.... 또 그의 글쓰기에 영향을 끼쳤을 사람들 ...이를테면 파스칼, 장자끄, 샤르트르, 하나님 아버지, 예수, 앙드레 브로통, 조르주 페릭, 디드로, 알랭맹크, 마르크 기윰, 리쾨르, 바슐라르, 장 지오노, 루이 드 벨송, 샤를 줄리에, 시몬베유,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미켈란 젤로, 나폴레옹, 헤겔, 아르통, 베를로 퐁티, 줄리앙소렐, 필립메예르...등 을(빠진 이름이 있다면 미안!) 단순 거명하거나 그들의 말을 인용한다.

그의 글은 수다쟁이 처럼 발랄하나 깊이가 없고 몇군데 멋진표현을 발견할수 있음에도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끝없는 생각들이 마치 우리에갖힌 불안한 사슴들 처럼
이리뛰고 저리뛰고 있다. 내가 신경질 나는 이유는 바로 이점이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찬 으로 다음과 같은 그의 사고는 또 그의 한계가 될수밖에 없겠다. '그리스도에 힙입어 이세상을 가득채우고 강과 산들을 찬양 했던 모든 우상들을 세상으로 부터 몰아 냈다'

'하나님의 은총, 그때부터 세상은 우리의 적이 되기를 멈추었고,우리는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십사고 그분께 공손히 부탁만 하면 되었다.'

신앙(절대 적인 복종을 요하는...) 속에서는 상상력의 자유가 제한되고 사고의 무한정성이 발현될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발랄함과 섬세한 글쓰기는 스스로 묻고 답하고 때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자신의 뛰어난 사고의 능력?에 취해있는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는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하지만 행복하게 살수 있는방법은 안다고 말한다.

그것은 '끝임없는 수다와 쓸데 없는 일들을 하지 않는것' (아뿔사!나는 이미 그를 수다쟁이라고 표현 했다.) 그가 忙 中 閑 이니 動 中 定 이란 동양 사상을 알앗다면 그렇게 수다스럽지는 않았으리라. 나는 그에게 느림의 의미에 대한 공부를 위해서 [비파사나1,2]를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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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허스님의 차 - 아무도 말하지 않은 한국전통차의 참모습
지허 스님 지음 / 김영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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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차에대한 관심이 많아 이책이 나오는 즉시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차는 우리차가 아니고 지금 우리나라 녹차밭에서 기르는 차나무가 85% 이상이 일본 야부기다 차나무라는 이야기는 충격적입니다.
차를 좋아한다 하면서도 차를 몰라도 너무 몰랐던것 같습니다.우리 자생 차나무는 본성인, 이 ‘직근(直根)’성인데 일본 야부기다 차나무는 직근(直根)성을 거세하고 옆으로 뿌리가 자라는 ‘횡근(橫根)’성으로 변질된 차나무라고 합니다.그래서 야부기다 차나무는 비료와 농약 없이는 살수 없게되어서그영향으로 지금 일본에서는 녹차를 마시고 수전증환자가 증가해 양식있는 다인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량으로 야부기다종을 재배하고 있으므로 이런 건강문제가 크게 거론될 날이 멀지 않은듯 합니다.다도에 있어서도 초의선사가 <다신전>에서 “만들 때 정성을 다하고 저장할 때 건조하게 하며 마실 때 청결하게 하면 다도는 완성된다”고 말했듯이 본래 우리의 차문화는 검소하고 소박한 내용을 중요시하는 차문화였는데 지금은 형식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는 일본 다도(茶道)를 우리나라 다인들이 무작정 따라 배워 일본의 차문화가 우리 차문화로 둔갑하고 있는게 우리의 현실입니다.책제목 처럼 <아무도 말하지 않은 한국 전통차의 참모습>을 이책을 통해서 읽는 동안 가슴속으로 작설차 같은 시원한 바람이 일었습니다.그러나 옛날보다 인구가 훨씬 많아 졌고 차인구도 비례적으로 늘어난 현실에서 야부기다 차나무를 외면하면서 우리가 자생차나무로 만든 우리차를 마시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이런 문제는 차뿐만이 아니고 쌀,사과,배,옥수수,꽃등등 의 모든 농작물도 토종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인것입니다.즉 자본주의 시대에서 돈이 안되는 것은 도퇴시켜 버리고 오직
돈이되는 것만을 추구하게 되므로써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2004년에 쌀이 개방될지도 모르는 비참한 우리의 농촌의현실과 똑같은 처지인것입니다.그래서 아마 스님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해야했던 일반인이 었다면 지허스님 같은 분도 자생차를 지킬수있었을까 하는 의심도 드는 것입니다.그러나 어찌되었든 지금까지 우리차를 보존하며 더욱 우리의 자생차를 살려야 한더고 목소리를 높이는 지허스님이 있는것은 우리 민족을 위해서 참 다행한 일입니다. 이제라도 지허스님을 통해 문제 제기된 것들이 진정으로 우리차를 아끼고 사랑하는 다인들의 노력이 곳곳에서 이어지길 기원해 봅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것 이라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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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혜능과 셰익스피어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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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도에 나온 책인데 나는 어제 겨우 읽었다.전번에 김용옥의 금강경을 읽은 기억이 있어서 조금은 긍정적인 맘으로 책을 잡았다. 이책은 알고보니 한국 선불교의 대표적인 공안집인 <벽암록> 해설서다. 각종 화두에 대한 모음집인 <벽암론>을 김용옥이 강연한것을 정리한 것이다. <벽암론>은 또 달마·혜능·남전·조주 등 중 국 선종 선사들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깨달음을 놓고 펼치는 각 선사들의 독특한 성격과 삶이 다뤄진다.

김용옥은 화두란 깨달음을 전하기 위한 뗏목에 다름 아니며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 선택한 교육적 기획이 라고 갈파한다. 이런 김용옥의 날카로운 눈매에 고개를 끄덕 이면서도...그에게 손가락질하며 따지지 않을수 없는 것이 ..

화두란 사량할수 없는 성질의 것이고 그것을 해석하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 까지도 죽인다는 것을 옛선사들은 고구 정녕하게 타일렀는데도 그 알량한 추리로 화두를 해석하고 조사와 선사와 싸가지 없이 씹고 또씹는데....

물론 씹는 것이...거친입이 그의 매력?혹은 마력 임을 알면서도 가지 말아야 할길을 가고 있다는 염려를 놓을수 없었다. 뒤에는 자신은 모른다고 ..어렵다고 너스레를 떠는 것 까지 영~맘에 안든다. 이건 아주 독자를 가지고 놀겠다는 건방진 생각이다. 사나운 말..야생마가 될려고 의도적으로 애쓸 필요는 없다. 그냥 자연 스럽게 살아라!. 도~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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