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멋 흥 한국에 취하다
정목일 지음 / 청조사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재미 있다. 요즘 왕좌의 게임이라는 잔인한 판타지 소설에 넋을 놓고 빠져들어 읽으면서 과연 사람의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잆다.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속에 우리는 빠져들어 한숨 짓고, 울고, 웃고, 소름돋는 경험을 한다. 하지만, 수필이 전해주는 재미와 감동은 또 다르다. 물론,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역량만큼 중요한 것이  수필가의 필력이 아닐까 싶다. 그 필력의 깊이와 넓이에 따라 독자가 경험하는 재미와 감동은 처지차이일 수 있으니까. 

정목일 선생님이 40년간 수필을 써온 '수필의 대가' 라는 수식어를 가진 분이라는 것을 모르고 이 책을 골라들었다. 그저,  책표지에 보이는 백자 (책을 읽으면서 이것이 달항아리라는 것을 알았다) 와 오랜 시간 떠나와 살고 있는 고국의 느낌을 전해 받을 수 있겠다 싶어서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사실, 내가 어떤 책을 기대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그 기대를 넘어서기도 했고, 충족시키지 못했던 부분도 있다고 말해야겠다. 나는 하다 못해 흑백사진이라도 곁들여진 그런 포토에세이를 기대했었나보다. 사진 한장 없이 언급되는 익숙치 않은 물건들은 책을 내려놓고 중간 중간 포털 사이트를 이용해 검색을 해야했다. 이런 부분이 아쉽다는 말은 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잊고 있었던 고국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고, 내가 자라온 70~80년대, 내 부모님의 어린 시절과 한국의 역사를 순간순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글들은 마치 작은 소반일지언정 아주 정갈하게 담겨져 나온 한국의 음식 한상을 받은 것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수필이라는 장르를 언제 처음 접했을까? 초등학생 시절 호기심에 엿보았던 어머니의 책장에서였는지, 중학생이 되어 교과서에서 접했던 것인지 정확한 기억이 없다. 하지만, 수필이 전해주는 작지만 아름다운 떨림이 참 기분좋은 설레임으로 다가왔었는데, 정목일 선생님의 수필 한편 한편을 읽어내려가면서 한장이라도 더 빨리 읽고 싶어 안달하며 책장을 넘기는 소설과는 달리 꼭꼭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을 느끼게 되는 쌀밥마냥 읽고 또 읽고 읽다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며 감성에 빠져들고, 시간과 추억 속에 빠져드는 경험을 했다. 이것은 분명 수필을 읽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호사이리라.


우리가 가진 한국인 고유의 흥과 맛과 멋에 대해서 밋밋한듯 하지만 깊이가 있고, 수수한듯 보여도 정갈하고 본연의 광이 있는 달항아리처럼 아름다운 글로 오랜만에 고국을 기억하고 떠올리게 해주신 정목일 선생님과 그분의 필력에 감사할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