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정원
최영미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97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와 90년대 초를 학업과 입시, 대학생활로 보낸 후에 한국을 떠나 유학길에 올랐고, 그 후로는 세계 이곳 저곳에서 일을 하다가 외국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게 된 나로서 사실 한국의 근현대사, 특히 민주화 관련 역사는 어찌 보면 유럽역사나 북미역사보다 더 멀게 느껴지고 낯선 것이 개인적으로 안타깝고, 조금은 부끄럽게 느끼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더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시인이라는 것도, 이것이 불과 두번째 장편소설이라는 것도 책을 접하면서야 알게되었지만, 저자의 필력과 간혹 차갑다고 느껴질만큼 담담하게 그려낸 듯한 글을 통해 저자에 대한 호기심도 갖게 되었으니,  그녀의 첫 소설도 언젠가 한 번 찾아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내 어린 시절을 회고해 본다. 


1970년대 후반의 어느 날, 당시 창경궁인지 창덕궁에 있는 동물원으로 부모님과 함께 나들이를 나갔다가 뜻하지 않게 마주했던 시민들과 청년들이 경찰, 군인과 대치하던 모습, 고함과 함성을 시작으로 당시 길을 마주하고 있던 대학교의 대학생들 오빠 언니들이 내가 다니던 중학교 담장까지 길게 이어붙여 놓았던 광주 항쟁당시의 처참한 모습과 흔적이 담긴 사진을 보고 며칠 몇날을 악몽을 꾸던 일. 그래도, 간혹 그 대학교 학생들의 데모로 매캐한 최류탄 연기에 눈물 콧물을 빼면서도 일찍 학교문을 나설 수 있다고 좋아했던 철없던 마음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대학생활에서 민주화나 데모는 내 관심밖이었다. 마치 애린이 바랐던 것처럼 나는 그 당시에 치장을 하고, 한껏 대학생활을 즐기고, 수험생으로 사는 동안 하지 못한 것들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이야기의 주인공인 애린이 S 대의 대학생으로 삶을 살았던 80년대. 그런 그녀가 모교를 방문하면서 회고해보는 그 당시의 일련의 사건들과 삶을 통해 나는 90년대와는 또 다른 80년대의 대학생들의 일상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조금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이것이 허구라고 밝혔지만, 과연 자전적인 내용이 일체 존재하지 않는 백퍼센트 순수 허구일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아버지의 뜻대로 열심히 공부해 한국의 최고 대학에 입학한 그녀는 자신이 꿈꿨던 것과는 다른 대학 생활에 빠져들게 되고, 독재적이고 폭력적인 선배의 본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신을 변화시켜가며 학생운동에 빠져들고, 부모의 뜻을 어겨가며 결국 그와 동거까지 하게 되지만 그가 그녀에게 안긴 것은 여자로서 경험하지 말아야 할 고통들 뿐. 결국, 그녀는 독재적인 그를 떠나 자신의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흑도 아니고, 백도 아닌 회색적인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는 그녀를 통해 내가 잊고 지냈던 시간을 떠올려 보면서 과연 이 세상에 정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여전히 세상 모든 것을 흑백으로 나누며 사는 걸까 궁금함이 생긴다. 이만큼이라도 살아보니, 세상엔 흑과 백보다 회색이 더 많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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