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소재원 지음 / 마레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한지 이십여년이 다되어간다. 연애때의 감정, 결혼초나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의 감정으로 남편을 바라보는 일보다는 작은 것에도 눈을 흘기는 나날이 이어지는 요즘이다. 고국을 떠나 산지도 역시 이십여년이 다되어 간다. 내 나라에 대한 감정 또한 마찬가지로 예전과는 달리 더욱더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좋고 자랑스러운 것들보다 부끄럽고 창피한 것들이 더더욱 눈에 띄는 요즘이다. 오늘은 친구의 사촌이 길거리에서 공연을 보다가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SNS 로 연락을 주고 받는 다른 친구를 통해 듣게 되었다.  하지만, 내 고국이 우리에게 남겨준 기억들중에 반드시 잊지말고 늘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그것을 젊디 젊은 신예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소재원씨를 통해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야기는 소원해진 부부관계의 두 기자가 각각 위안부였던 오순덕 할머니와 그녀의 정인이었던  서재철 할아버지를 취재하러 나서면서 시작된다. 일제 강점기 시절, 15세 소녀였던 오순덕 할머니와 한마을에 살았던 정혼자 서재철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민족이 삶이 던져 주는 고초란 고초들을 어떻게 겪어내었는지 알게 해준다.  그는 서로에게 순정을 받치기로 했던 몸 약한 소녀 오순덕을 위해 직접 의원이 되기로 하고, 의술을 익힌 후 강제 징용되어 만주로 끌려가고 그곳에서 나병을 얻는다. 그리고, 자신의 정혼자를 빨리 돌아오게 하려면 군수품공장에서 일을 해 돈을 벌면 된다는 꼬임에 넘어가 역시나 만주에 도착하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위안부 수용소. 그 곳에서 그녀는 죽기를 결심하지만 실패하고...결국은 같은 처지에 있는 소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감수하면서 하루 하루 고된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녀가 서재철에게 가진 순정에 대한 소문은 소녀들 사이에서 그녀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만큼 유명해진다. 


나병으로 소록도로 보내어져 생살이 뜯겨나가는 고통속에서 거세까지 당하고 모진 고초를 겪던 서재철은 그래도 그를 돌봐주는 노인과 그의 딸 덕분에 조금은 인간적인 대접을 받았으니 어쩌면 오순덕보다 나은 처지였다고 해야 하려나... 그렇게 서로에 대한 순정 하나만 믿고 평생 서로의 처지를 모른척 눈감아주며 편지 왕래를 하던 그들은 74년만에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가락지를 나눠끼며 오래전 약속했던 순정의 결실을 맺는다. 


책속의 묘사들은 실제적이다 못해 잔인하기 이루 말 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일본 강점기 시대의 다큐멘터리나 관련 자료들을 보면서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머리가 울리고 눈이 부을 정도로 울었나보다. 우리가 잊으면 안될 과거를 너무 쉬이 잊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과 더불어 여전히 일본과 한국 사이에 남겨진 그 잔인하고 힘든 숙제가 얼른 풀려, 살아계신 위안부 할머니들과 그 시대의 고초로 고생했던 이들의 한이 조금이라도 옅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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