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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바람 - 일상의 순간을 소묘하는 80편의 아포리즘 에세이
노정숙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9월
평점 :
책을 받아들고 가만히 내려다보는 순간...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한숨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뭔가 가슴이
답답한 일이 있어 나오는 한숨도 있지만, 무엇인가 만족감을 갖게 하는 상황에 놓이거나 사람이나 물건을 만났을 때도 나오는게
한숨이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나는 책 표지만으로도 뭔가 만족감을 실은 한숨을 내뱉고 책장을 열 수가 있었다.
사람이 좋아서 시와 수필밭에서 논다고 자신을 표현한 저자 노정숙의 80편의 에세이로 가득한 이 책은 이 가을에 나에게 평온함과
함께, 여름내 잔뜩 들떴으나 어딘지 모르게 바짝 메말라 있던 감성을 촉촉하게 만들도록 도와주지 않았나 싶다.
나는 소설보다 에세이를 즐겨 읽는다. 작가의 상상력의 힘을 빌려 잘 짜여진 구성이 돋보이는 허구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물론
좋지만, 사람냄새 나는 에세이가 전하는 감동의 깊이는 소설의 그것과는 또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나, 가을 바람속에서 읽는
에세이라면 더더욱...
바람의 편력.
미안하다, 사랑.
백년학생.
사람 풍경.
이렇게 4부로 나뉘어진 책속에서 만나는 에세이들은 작은 새 한마리마냥 자그맣고 얇은 책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나게 되는
글들은 하나같이 짧지만 정겹다. 곁들여진 사진들은 글속에서 헤매던 나를 가만히 쉬게한다.
그리 다작을 하지도, 많은 양의 판매율을 올린 작가도 아니지만, 노정숙이라는 세글자. 작가의 이름이 내게는 충분히 각인되는
기회가 되었던 책은 솔직함과 진솔함이라는 재료를 맛깔나는 문체로 버무려서 사진과 함께 정갈하게 내어놓아 독자가 그저
오롯이 즐기고 포만감과 만족감이 섞인 한숨을 내쉬게 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누운 자에게 말 걸기' 속 언급된 운주사의 와불과 흑백의 겨울 사찰 사진이 가슴에 서늘하게 다가오는 것을 보니,
이렇게 좋은 책 한권과 함께 나의 향수병은 서서히 다가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