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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졸업하다 - 닥종이 인형작가 김영희 에세이
김영희 지음 / 샘터사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내가 김영희씨를 처음
만난 것은 이십년전 봄, 친정어머니의 서재에서였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나이였고, 첫사랑을 잃고서 가슴 아픈 봄을
나고 있었다. 어머니의 서재 의자위에 펼쳐져 엎어져 있는 책을 보면서 제목이 뭐 저래? 했었다.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라니... 그렇게 시작된 김영희씨에 대한 애정은 내가 이태리에서 유학하던 시절, 독일 여행중 그녀를 찾아보겠다고 그녀가
사는 동네에까지 찾아갈 정도로 극성맞은 것이었다.
한
여자로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다른 사람과 새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이, 그것도 열네살의 나이차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선
사랑이라니...20대 초반에는 그녀의 새로운 사랑이 용감하고 멋진 행동이라 여겼었고, 내가 30대 초반, 30대 후반이 되어 결혼
생활 15년을 맞은 후에는 아마 그녀가 현실의 삶에서 도피성으로 택한 것이 아닌가 싶었더랬다. 그래도, 잘 살고 계시길 바랬었고
다섯 아이의 행보가 참으로 궁금했었더랬다.
<엄마
를 졸업하다>는 이제 일흔이 된 그녀가 홀로 empty nester (아이들이 자라 결혼이나 대학등의 이유로 집을 떠나고
남은 부모들을 지칭하는 단어이다)가 되어 써낸 에세이다. 안타깝게도 자세한 사정은 책에 있지 않지만, 여러가지 이유때문에 두번째
남편인 토마스와는 이혼을 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다섯 아이는 잘 자라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변호사가 되고, 결혼을 해서 노산으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큰딸 유진, 엄마의 만류로 그림 대신 피아노를 택했던 큰 아들 윤수는
한국인 유학생과 결혼하여 음악학원을 운영하며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화가의 삶을 살고 있고,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 있을줄 알았던
둘째 아들 장수는 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봄누리가 미혼모가 되었다는 소식에는 마치 사촌 여동생의 일이기라도 한양 깜짝 놀라기도
했고, 막내 프란츠의 소식엔 무엇보다도 가슴이 아팠다.
큰
아들 윤수와 나누는 대화중에 그런 말이 있다. '경제성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가슴에 와닿았다. 그리고, 더욱 더
내 가슴에 와닿은 것은 그녀가 전남편과의 헤어짐의 이유가 둘 사이에 언어의 끈이 없어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모국어에 대한 그녀의 느낌을 온 몸과 마음으로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안
타깝게도 큰 기대를 갖고 읽었던 이 책은 내 기대에 부응하지는 못했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들이 블로그를 하고 여러 SNS 를 통해
자신의 삶을 나누고,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는 것은 보이고 싶고, 보고 싶은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욕구때문이라고.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내 기대와는 달리 물 위에 떠다니는 기름방울처럼 수박 겉핥기만 한듯한 느낌의 책이었다. 예전의 책들 속에서 그녀가
엄마로서 아내로서 예술가로서의 삶을 진솔하게 펴낸 느낌을 내게 주었다면, 이번 책은 마치 예의를 차려야 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차
한잔 하면서 일상적이고 예의 바른 인사치레만 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늘 기도하는 마음이다. 새로운 사랑도 찾으시고, 다섯 아이의 엄마로서 예술가로서 늘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