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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합치 - 예술과 실존의 근원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이근세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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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된 상황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이 편안하여 충족감을 느끼면, 거기서 정서적 만족감까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저자 프랑수아 줄리앙 교수의 <탈합치>에서는 이 상태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긴장감 없는 상태는 개선될 의지도, 움직일 이유도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생산력이 사라졌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결국엔 무기력한 상태로 빠진다. 이 상태를 완전히 포개진 ‘합치’라고 한다. 내적으로 퇴화되는 ‘합치’는 말만 들어도 알다시피 <탈합치> 속 역사, 회화, 문학, 삶에서 벗어나야 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저자가 신조어로 만든 ‘탈합치’라는 개념이다.

 <탈합치(脫合致)>를 단순하게 용어만 보자면 ‘서로 맞아 일치하는 것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 프랑수아 줄리앙은 이 상태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꽉 들어맞지 않는 상태, 새로운 가능성을 도출할 수 있는 모습이다. 현재 안착되고 정형화된 과거에서 벗어난 탈합치는 더 나은 변화를 위해서 꼭 필요했다. 이는 우리가 줄곧 말하던 개혁, 혁신, 선도, 새로운 사회를 이끌어 나갈 힘과 연관되었다. 아이디어나 작품 역시 마찬가지이다. 당대 유행하는 생각과 기법에 맞춘다면 흐름에 편승하여 인기를 끌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의 보장 수표에 그칠 뿐이다. 새로운 다음을 이끌어내기란 불가능했다. 이렇게 프랑수아 줄리앙은 선행하는 양식에 균열을 내야 새로움이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탈합치는 가능성을 새롭게 열었다. 그래서 인간은 합치하지 않는 존재였고, 실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탈합치는 우리와 멀리 있을까? 사회개혁과 혁명 같은 역사는 그때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우리가 느끼기에는 멀리 떨어진 추상적인 개념이었다. 하지만 프랑수아 줄리앙은 탈합치가 항상 극적이지 않다고 했다. 탈합치는 새로운 것을 다시 열어젖히는 개념이었지, 선행 역사의 흐름과 노골적으로 단절하며 새로운 시대를 드러내고자 하지 않는다는 말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탈합치는 혁명처럼 과감한 모습을 보이기 힘들었고, 내부적으로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생산력 없이 고착화되는 상황을 깨부수는 것이다. 스스로조차 몰랐던 과거를 해체하며 나타나는 탈합치는 삶 속에서 번번이 일어났다. 탈합치를 거쳐 미래가 다시 열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새로운 변화가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었기 때문에, 탈합치의 개념을 넘어서 어떻게 하면 탈합치를 할 수 있는지, 역사에서의 탈합치, 그 속에서의 우리들의 의식 등 더 깊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었다. 역사나 회화, 문학 외에도 성서에 접목시켜 보여주면서 탈합치라는 저자만의 개념을 알려주었다. 동서 철학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보고 싶을 때 다시 읽어도 좋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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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세트 - 전3권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외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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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편을 읽고 드는 생각은 '재미있다'였다. 맨 처음 이야기가 재미있으니 순식간에 다음 장으로 넘기게 한다. 책의 디자인, 교훈, 수상내역, 작가 등 책을 고르는 기준은 각자 다양할지도 모르지만, 쉽게 책장을 넘기려면 역시 재미가 있어야 한다.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은 여기에 부합하는 소설이다. 로알드 달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그리고 독자의 추측을 벗어나는 반전 있는 결말까지. 한두 편 읽고 나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내용을 짐작할 수 없던 소제목을 결말까지 보고 나면 그렇게 붙여진 이유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책장을 넘기게 한다. 뻔히 보이는 이야기가 아니라 흡입력 있는 전개를 끝까지 끌고 가는 작가의 이야기 솜씨는 단편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어떤 반전을 줄까 궁금해지고, 앉은 자리에서 몇 편을 읽게 만들 정도로 재미있었다.


단편선에서 그가 주로 다루는 소재는 도박과 내기, 속임수이기 때문에 독자는 금방 결말의 패턴을 읽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로알드 달은 그것마저 뛰어넘는 작가였다. 그와 동시에 결말을 틀어버리면서 대놓고 여러 인간들의 군상을 비판하기까지 한다. 내기에 눈이 먼 사람, 속이려다가 된통 제 꾀에 넘어간 사람 등 충분히 있을 법한 사람들을 꼬집는다. 이야기의 끝은 항상 깔끔하지 않다. 때로는 기묘하고 찜찜하게, 혹은 다시 생각했을 때 소름이 돋게, 무언가를 암시하는 결말은 특유의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더한다. 이렇게 쉽게 읽히는 이유는 재미와 작가의 이야기 능력도 있지만, 세련된 디자인과 요즘 시대에 맞는 번역도 한결 독서하기 편하게 했다.


로알드 달의 단편소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와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작가로만 보였던 그가 여기에서 어른들을 대상으로 반전 가득하고 섬뜩한, 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기존의 흐름과 다른 색다른 반전을 원했거나 부담감 없는 독서를 원한 사람들에게는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에서 흥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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